DAY 6 세 번째 이야기
누구든 아이슬란드를 검색하면 한 번은 보게 될 건물. 바로 이 할그림스 키르캬이다.
레이캬비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이곳은 ‘키르캬(Kirkja)’. 그러니까 교회다. 성직자이자 시인인 할그리무르 페튀르손(Hallgrímur Pétursson)의 이름에서 온 할그림스 키르캬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주상절리의 모습을 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교회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최상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약 만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면 꼭대기에 올라 레이캬비크 시내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천둥의 신이자 슈퍼 히어로인 토르의 고향, 아스가르드 궁전이 이 할그림스 키르캬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고 하니 영화 속에서 그 흔적을 찾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생경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깃발을 따라 관광지를 순회하는 여행객 무리에 통화를 하며 지나가는 아이슬란드 사람들, 거리마다 있는 가게들까지. 이렇게 북적북적한 아이슬란드는 도착한 날의 공항을 제외하고는 처음인 것 같다. 여기 온 첫날부터 온갖 거친 날씨들과 싸우고, 지구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빙하와 산맥만 보다 이런 정상적인(?) 관광지 풍경이라니.
어쩌면 그간 다른 행성을 유영하다 드디어 지구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다. 자연 속 아이슬란드도 멋지긴 하지만 여유로운 유럽 도시의 아이슬란드도 매력적이다. 상반된 기분을 만끽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레이캬비크에서 정신없이 쇼핑을 하다가 일행과 헤어졌을 때! 혹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몰라 멘붕이 왔다면? 걱정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할그림스 키르캬가 길을 알려 줄 테니.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할그림스 키르캬는 어떤 곳에서도 건물의 꼭대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자체로 랜드마크이기 때문에 주변으로 길거리 포차나 가게가 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레이캬비크를 여행할 때만큼은 길 잃은 걱정 NONONO! 북극성 같은 할그림스 키르캬가 당신의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중심가인 할그림스 키르캬에서 항구까지 쭉 걸어 내려왔다. 레이캬비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하르파(Harpa)이다.
할그림스 키르캬가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닮았다면, 하르파는 아이슬란드의 도시를 닮았다. 현무암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진 건물이지만, 육각형의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외관만 본다면 지구에 잘못 착륙한 비행선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게다가 해가 움직일 때마다 각기 다르게 반짝이는 유리창은 우주 속에서 반짝이는 별무리를 본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 반사되는 빛이 강해 하르파 건물 앞은 다양한 컬러의 빛 무리가 아스팔트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갬성샷 놓칠 우리들이 아니지. 반짝이는 바닥을 배경으로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하르파 내부를 탐방해보기로 했다.
건축, 디자인, 그리고 미디어 아트가 결합되어 2011년 완공된 이곳 하르파는 콘서트 홀이 있어 레이캬비크의 공연뿐만 아니라 콘퍼런스 센터로도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도착한 날에도 교향악부터 발레까지 다채로운 문화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반가운 만남도 있었으니! 바로 건물 내부에서 LG TV를 광고하는 전시물들이 있던 것.
반나절을 날아야 겨우 올 수 있는 타향에서 우리나라 광고물을 볼 줄이야. 감동 또 감동. 요즘 한국 브랜드며 아이돌이며 전 세계에서 그렇게 인기라는데. 한국 프로그램이 유럽에서 흥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이왕이면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이 그렇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는 작은 마음을 품으며 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작가 SAYs, 골목길 예찬
사실 내가 골목길을 사랑하는 이유는 나의 치명적인 약점(?)과도 이어져있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지독한 길치다. 한 번 건물을 들어갔다 나오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건 기본이요,
태어났을 때부터 30년을 살아온 동네도 간혹 길을 헷갈려 돌아간 적도 있다.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면 적어도 1시간은 여유를 더해 집을 나서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한국도 이 정도인데 외국은 다를쏘냐. 그동안 여행했던 해외의 도시에서도 역시 본능(?)에 충실하게
이곳저곳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도시를 누비다 골목길을 발견한 순간, 지금껏 보지 못했던 풍경이 등장한다. 창문 밖 널어놓은 빨랫감을 통해, 문 앞에 내어놓은 작은 화분에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다행히 레이캬비크 시내는 복잡하지 않은 편이라 길을 잘못 들어도 금세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랜드마크인 할그림스 키르캬가 어디서든 보이기 때문에 이 교회 꼭대기 하나 믿고 열심히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운전자 자리를 지키는 곰돌이 인형도, 예쁜 벽화도 너무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평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먼저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잘못된 걸음이건, 호기심이건 시작은 중요하지 않다. 딱 한 걸음만 더 내딛는다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여행이 더 풍성해지는 이유이자,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