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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Apr 27. 2018

키워드 프로젝트 - 1. 식민지

남미/페루생활 정산기념 키워드 프로젝트 시작, 이곳의 과거이자 현재



센트로 데 리마 구역에 자리한 리마 대성당. 이곳에 잉카 문명을 말살했던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유해가 묻혀있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앞세운 일본제국에 의해 시작된 약 40년 가까이 무서운 식민지배를 당하며 국토와 국민 모두 그들에 의해 유린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를 넘어 - 분명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 갑자기 바다를 건너 나타난, 흰 피부를 한 사람들에 의해 온 땅이 식민지가 되었고, 자그마치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수탈당하고 철저히 지배당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내가 중남미에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을 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부모님은 선물로 책을 많이 사주셨었는데, 그들 중에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 등으로 대변되는 중남미의 문명에 관한 책이 한 권 있었다. 

그 책에는 그들이 이룩한 휘황찬란한 문명과 그들의 전통 의식, 그리고 대표 건축물과 보물들이 빠짐없이 소개되어 있었고, 그 책에 빠져든 난 어쩌면 내 평생 가 볼일이 없을 지도 모르는 머나먼 남반구의 오래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해 읽었다. 

신비하고 오싹하고, 또 미스테리한 - 이렇게나 멋진 그들의 역사는 당시 어린 나에게 있어 오래오래 지속되어야 마땅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읽고 읽고 또 읽어 보아도 책에 쓰인 아즈텍과 잉카 챕터의 마지막 부분은 "이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멸망당했다" 였다. 어린 나는 궁금했다. 

과연 그 문장 뒤에 쓰이지 않은 뒷이야기는,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들이었을까.



그리고 그 잉카의 나라 페루.

페루는 내가 2년 전 교원해외파견사업 지원 당시, 내 스스로 지망을 해서 온 곳이었다. 

당시의 나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곳에서 또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었기에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길 원했고, 가능하다면 내가 어렸을 적부터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남미로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코스타(해안), 시에라(고산), 셀바(정글) 이렇게 3가지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나라이자 남미에서 3번째로 큰 나라. 흔히 마추픽추로 대표되는 잉카 문명의 나라. 스페인 군인들이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함락한 이후부터 시작된 기나긴 식민지 역사로 인해 전국민이 스페인어를 쓰지만, 여전히 잉카 제국 시절의 언어였던 케추아어나 볼리비아 쪽과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 쓰는 아이마라어 사용자도 많이 남아있으며 지역마다 전통과 문화가 다양하다는 문화다양성의 나라.

그동안 읽어왔던 역사와 지리책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와 세계지리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서 중남미땅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식으로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 어렸을 적부터 여전히 궁금했던 - 내가 그토록 반복해서 읽었던 책 마지막 부분의 진짜 이야기를 알고 싶기도 했다. 






약 2년 전, 2016년 8월 말 - 페루에 처음 발을 디딘 날, 주페루 대사관의 담당 영사님께서 마중을 나오셨고, 나보다 3년 가까이 먼저 오셨던 영사님을 통해 이런 저런 페루 살이 이야기를 들어가며 대사관으로 이동했다.


지형적인 특징으로 인한 리마 특유의 우울한 하늘과, 오래된 자동차들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함께 엮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항 주변인 카야오 지역은 굉장히 지저분했고, (이곳은 페루 최고의 우범지대 중 하나이다. 함부로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가짜택시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공항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공항 주변에서 현지인들이 강도를 당하는 장면을 두 번이나 라이브로 본 적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친 풍경은 내가 지금껏 다른 개발도상국들을 여행할 때마다 익숙하게 본 장면같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대다수가 인디오 (스페인어로는 인디헤나라고 한다) 계 혹은 흑인계였으며 그들의 얼굴빛도한 남루한 먼지 색이 새카맣게 내려앉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대사관 쪽으로 이동할 수록 풍경이 달라졌고, 전통적인 부촌이라는 대사관 근처의 산 이시드로 지역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사설경비가 있으며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살기 좋아보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리마에서 한동안 체류하게 되면서 자주 오게 된 - 리마에서 가장 안전해서 외국인들도 많이 산다는 - 신흥부촌 미라플로레스 지역은 곳곳에 꽃과 나무로 장식된 예쁜 정원이 어우려져 참 살기에 쾌적해보였고, 쇼핑몰이나 편의 시설도 많아 한국의 웬만한 동네들만큼이나 세련되었기에 이곳이 개발도상국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곳들에서 방문객이 아닌 아닌, 아침에 러닝을 뛰거나 밤중에 개를 끌고 천천히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나오는 진짜 주민들은 대다수가 피부색이 희며 먼지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다.


나는 그렇게 - 여기서는 무엇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첫 만남 이후에도 대사관 분들과 만나서 미팅을 진행하고 여러 면담을 할 기회가 종종 생겼는데, 그중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일화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앞서 말했듯 산 이시드로 지역은 전통적인 부촌으로, 페닌술라르 (식민시절 스페인 본토에서 온 사람들을 지칭) 들의 후예인 스페인계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 지금이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 마치 18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이상한 식민시절 관습에 젖어 자신이 아는 백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대놓고 하대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게도) 꽤 존재한다고 했다. 그들의 특징은 하인이나 가정부들을 상시에 데리고 다닌다는 것인데, 그 모두가 인디헤나 아니면 흑인계란다. 그들은 뻣뻣한 메이드복을 입고, 고용주의 옆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들의 지시를 하나하나 수행하는데, 고용주의 말을 들을 때에는 무릎을 구부리는 등 공손한 자세로 들어야하며 - 심지어 그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하인들은 입도 열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죄다 순응하며 따르는 그들의 태도였다고 했다. 



Hacienda (아시엔다) 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중남미에서는 주로 흑인 노예를 기반으로 플랜테이션 농장을 말한다. 이카 주 친차 지역의 유명한 아시엔다 유적지.


작년에 코아르를 졸업한, 내가 참 아끼던 제자 마릿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 안타까웠다. 

부모님께서는 쿠스코 외곽 출신으로 원주민들의 언어인 케추아어가 모국어인 분이신데, 가난을 견디지 못해 (페루에서 시에라 지역의 가난과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미래의 자식들에게는 보다 나은 삶을 물려주고자 마릿사가 태어나기 전에 외지인 아레키파로 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서툰 스페인어와 그들의 외모와 피부색, 그리고 이름에서 알 수 있는 "인디헤나"라는 사실은 - 그들로 하여금 절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꺼려하는 힘든 노동을 전전하며 푼돈을 벌어야 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사회적 차별을 당하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봐온 마릿사의 마음에는 - 여전히 사회적 인식 수준이 식민 시대에 머물러 있는 페루 사회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었고, 그 화는 그 아이로 하여금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했다.


마릿사가 이 이야기를 꺼낸 날은, 그 아이가 이 나라 최고 법대에 4년 장학생으로 합격한 날이었고, 마릿사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한 번도 자세하게 말한 적이 없다는 가족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나왔다. 



이 땅의 원주민들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던 식민지 시절도,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제도도 사라진지 200년 전인데도 이 나라에는 아직 과거의 망령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리마를 대표하는 미술관. 고대의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부터 근대의 역사까지 짧은 시간안에 페루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내부는 깔끔하고 설명도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 언어로 잘 설명이 되어있다. 



가장 소름이 돋았던 작품 중 하나. 역대 잉카의 왕들 초상화 모음인데, 가장 마지막 파차쿠텍 황제 이후에는 스페인 정복자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구석)
위 작품과 비슷한 역대 이 땅의 지도자들의 초상화. 아래 줄을 보면 스페인에서 온 식민 총독들이 그려져 있다. 


미술관에서 식민 시대 순간부터 쏟아져 나오는 종교화들. 가톨릭은 남미의 식민지화를 가속화 시키는 첨병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나갔다. 



근현대 미술 작품. 이 중남미땅의 원래 주인인 남미 원주민, 정복자이자 지배계층인 스페인계 백인, 그리고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계 흑인 이 셋이 페루 땅에서 공존하고 있다.





나의 남미 파견 생활이 길어지면서 다양한 남미 출신의 친구들을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친구들 말로는 이곳에서 피부가 희다는 것은 - 일종의 지배 계급과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누가 보아도 백인이 아니고 인디헤나이지만 - 자기의 먼 조상 중 한 사람으로 인해 피 한 방울이라도 백인의 피가 섞였다면, 자기는 백인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그래야 사회적 계급이 올라간다고 믿는다.


나와 친구들은 이런 문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친구들 말로는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들조차 이 중남미땅에서 "순수 백인"이란 게 존재하긴 하냐며 코웃음을 치는 마당에 말이다. 식민 지배의 종말 및 독립 이후에는 각 나라에서 몰려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새롭게 나라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되었고, 그렇게 모자이크처럼 중남미 나라들을 형성했기 때문에 사실 나의 친구들은 everywhere 에서 온 셈이 된다. 그러나 식민지 경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모두들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일제 치하의 역사를 여전히 부정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내 한국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나라 페루를 비롯한 대다수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남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스페인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지만 포르투갈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다들 기억하기엔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식민 기간이 너무도 길었으며, 그 긴긴 시간 동안 우리 모두는 이미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것이 남긴 후유증은 컸는데, 친구들의 의견으로는 아무리 우리가 독립을 한지 200년이 되어간다 하더라도 - 여전히 사람들은 식민지 과거에 얽매여 있다고 한다. 식민 시절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금지였고, 항의를 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도 없이 오히려 즉결처분으로 처형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그래서 남미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도 이에 대해 항의하기 보다는 보통 참는다고 한다. 정말 불합리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것에는 사회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사람들이 그러질 않으니 사회가 발전이 늦고 더딘 것 같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들은 - 한국에 관심이 많다 -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탄핵과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너무나 부러워 했었다.)





페루는 고대 문명과 원주민 문화의 이미지로 관광을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TV나 신문 등 생활 속 광고에서는 인구의 15% 정도인 백인계 모델들만 볼 수 있다. 




지금은 21세기이지만 여전히, 상처투성이인 500여년 전의 식민지 시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슬픈 사실을 이해하고 난 뒤에야, 남미는 도대체 왜 이렇게 모순덩어리에 다이나믹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지 스스로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센트로 데 리마 아르마스 광장 옆 대통령궁. 사실 이 저택은 쿠스코를 정복하고 잉카를 멸망시키고 식민시대를 연 페루 부왕청 초대 총독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집이었다. 평소에 들어가기 어려운 리마 대성당 안에는 그 피사로의 무덤이 존재하고 있다.



대통령궁 옆에 자리한 리마 대성당.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이 곳에 피사로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평소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 리마 대성당과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겨우 찾아낸 피사로의 무덤. 
대통령궁 옆에 자리한 리마 대성당.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이 곳에 피사로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평소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 리마 대성당과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겨우 찾아낸 피사로의 무덤. 
피사로의 무덤 위에 자리한 "스페인 정복자 군인들과 원주민들의 조우"를 그린 모자이크 벽화. 그러나 내겐 기본적으로 그림의 시선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다.



식민 지배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가톨릭을 이용했고, 그래서 이 땅에서는 정말 척박한 시골에서도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된 식민 지배는 인종과 피부색에 따른 사회적 계급을 철저히 분화시켰고, 이 계급은 독립 이후에 경제적 계급으로 고착화가 되어 - 현재 남미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인  "빈부 격차"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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