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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May 07. 2018

키워드 프로젝트 - 3. 수도

남미 내 사회적 불균형과 격차, 그리고 남미 특유의 다양성이 드러나는 곳

위에서 바라본 칠레 산티아고의 전경. 산티아고는 언덕이 많아 전망을 구경하기가 좋다. 


칠레 대통령 궁 앞. 사실 겉으로 보면 이곳이 유럽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없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보아야 알 수 있다.산티아고 베야비스타 구역의 힙플레이스. 중남미 수도라고 못사는 그런 이미지만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칠레하면 역시 과일. 싸고 맛있다!
칠레 대통령 궁 앞. 사실 겉으로 보면 이곳이 유럽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없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보아야 알 수 있다.산티아고 베야비스타 구역의 힙플레이스. 중남미 수도라고 못사는 그런 이미지만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칠레하면 역시 과일. 싸고 맛있다!



남미에 2년 가까이 있으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조금씩 여행을 다녔고, 그러는 틈에 페루 리마 뿐만 아니라 이곳의 각 나라 수도들, 혹은 수도 급으로 여겨지는 대도시 (예를 들어 브라질 상파울루 등) 들을 몇 곳 가 보았다. 


마치 유럽을 연상케하는 많은 성당과 식민지풍의 높은 건물들. 

여느 세계적인 도시와 다를 바가 없는 빌딩숲 도심의 풍경. 

이런 풍경을 보며 늘 생각한다.



내가 가본 중남미 수도 중에서 가장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고 또 예뻤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을 보면 여기가 이탈리아풍의 작은 유럽같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싸고 맛있다고 정말이지 매일 실컷 먹었던 소고기.
20세기 초반만 해도 세계 5대의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오래된 영화를 상징하는 엘 아테네오 서점. 원래 이곳은 극장이었지만 이후 서점으로 개조해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직 내가 사는 남미 나라들의 모든 수도를 가보진 못했지만, 지금껏 내가 가본 중남미 수도들은 대부분 그랬다.

경제수준이 뒤쳐지는 남미 국가의 수도라고 해서, 여느 수도 도심지들의 풍경은 서울이나 뉴욕, 혹은 유럽의 중세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스스로에게 늘 물었다.


이곳이 정말 내가 그동안 상상하던 중남미인가?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중남미는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여기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다소 초췌한 몰골이라도 발견하길 원했단 말인가?  


나는 도대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것일까.






한국에서도 경남의 작은 도시에 태어나 살았던 사람으로서, 사실 그렇게 대도시를 마구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대도시가 주는 특유의 편리함은 마다하지 않는 정도로. 그렇게만 살아왔다.

한국에서도 서울 공화국이다 뭐다 말이 많고 지방은 확실히 대도시들에 비해 문화적 혜택이 적은 편이지만 - 한국은 일단 땅덩어리가 작고 교통이 편리해 마음이 내키면 주말 등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 문화적 혜택들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남미의 경우는 달랐다. 

다들 땅 크기가 크다보니 이동 시간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고 (여기서의 내 최고 이동시간 기록은 아르헨 남부에서 중남부까지 35시간 동안 버스만 타기, 비행기를 적절히 타도 브라질 북부 아마존에서 중서부의 다른 정글까지 편도로 이동하는데 18시간 등이다 -_-;;), 거의 모든 재화와 혜택과 서비스는 오로지 수도와 대도시 몇 곳에만 몰려있는 정도라 여기 국민들도 뭔가 좋은 물건을 사고 싶다라거나, 공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러 수도, 혹은 대도시로 올라가는 일이 아주 빈번하더라. 그래서 여기도 한국과 비슷하게 수도 주변에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몰려살거나, 비행기 노선이 수도 노선에 집중되어 있다.



전세계 어디의 대도시와 다 마찬가지로 - 사람이 이렇게 모여살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치안이 불안하고 빈부격차가 극심한 이곳에서는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한달에 30만원도 못 버는 사람과 하루에 30만원은 쉽게 버는 사람들을 나눈 비율이 생각보다 크지 않게 공존하는 남미라는 이 대륙. 남미 부자들의 자산규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금수저는 저리가라인 다이아몬드 수저와, 흙수저보다 못한 쿠킹호일 알루미늄 수저가 공존하는 것을 시내 한복판 같은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몇 세대를 넘어 몇 세기 동안 되물림된 가난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고, 가난한 시골에서 무작정 올라온 사람들은 기술도 없고 지식도 없으니 범죄나 마약에 쉽게 빠져들기도 하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며, 쓰레기통을 무작정 뒤지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대낮의 거리에서 강도를 당하거나 납치를 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에 (실제로 내 친구들에게도 일어났던 일이다), 이곳의 잘 사는 부자들은 그래서 부지런히 영어를 배우고, 일종의 보험처럼 외국의 시민권을 따두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하면 그동안 모았던 자산을 들고 기꺼이 이 불안한 곳을 떠나기 위해서.

 





내가 2016년 8월에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 현지 적응 겸 해결되지 않은 MOU와 비자 등을 기다리느라 리마에만 두 달 가까이 머물렀다. 모든게 모여있는 수도라고 해도 - 모든 개도국이 그렇듯 나라 자체가 시스템이 미비하고 실행주체가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산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리마에 살아본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길, 너무나 불균형적인 곳이라고 한다.

최첨단 기술과 집에 수도도 안되는 원시적임을 한번에 볼 수 있는 리마. 

사실 중남미 대도시의 모든 문제이긴 하겠지만 - 리마는 특히 인구 규모와 소득 수준 대비해서 너무나 많은 고급 쇼핑몰들이 밀집해 있고, 그 물가도 이 사람들의 평균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너무나 말도 안되게 비싼 편이다. 

같은 리마 하늘에 산다고 해도,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경우는 평생 리마 내 부촌인 미라플로레스나 산 이시드로, 혹은 더 외곽의 고급주택가에 사는 사람을 평생 만나보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통계까지 있다고 하니 참 안타까울 뿐이다.






어두운 이야기를 벗어나 조금 더 밝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중남미는 식민지 이후엔 결국 각 나라에서 몰려온 이민자들로 나라를 재구성한 곳이다. 그러다보니 원래부터 존재해 왔던 원주민의 요리,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요리, 다양한 이민자들로 인해 전파된 그들 나라의 전통 요리가 모두 모여 특색있는 요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약간 인종차별적이지만) 20세기 중반 정도까지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독일 등 유럽계 이민을 최우선으로, 그리고 남유럽계와 외모가 거의 흡사한 레반트 지역 (레바논, 시리아) 이민 정도만 받았던 아르헨티나 (국민의 무려 50퍼센트 정도가 이탈리아계라는 통계가 있어 우스개소리로 이탈리아 2중대라는 말도 있다) 와 우루과이, 칠레 등과는 달리 브라질과 페루는 처음부터 중국계와 일본계로 대변되는 황인 이민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실제로 아시아계가 많기로 유명한데, 브라질의 경우는 일본 밖에서 일본계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이고 (특히 상파울루를 보면 많은 일본계 이민자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쿠리치바 시의 중앙시장에서 일본계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손수 재배하신 일식에 쓰이는 농수산물을 많이 파시는 것을 목격했다) 페루의 경우도 비공식적이지만 아시아계가 150만 정도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는데 물론, 이들 인구는 주로 수도 리마에 밀집되어 있다고 한다. 


여튼 이런 사정이다보니 이 두 나라의 요리는 동북아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페루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중국 퓨전 요리집인 "치파"는 중국 요리인 차우판 (볶음밥) 의 발음이 변형된 것으로, 중국 요리와 페루 요리의 퓨전음식이며 싸고 배부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 수도 위주로 있던 것이 차츰차츰 다른 도시까지 전파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브라질의 경우에는 어디를 가도 일식집이 눈에 띄는데, 이는 브라질 여행이나 장기 체류하는 분들에게 한식 다음으로 그나마 가뭄의 단비가 되어준다.


 


페루 수도 리마의 경우 미식 도시로 아주 유명한데,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양권 여행객의 경우 40퍼센트 정도가 리마 방문 이유를 "미식 탐험"으로 꼽았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우연히 르 코르동 블루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세계 각국을 탐방하며 요리를 연구하는 한국 남학생을 만났는데, 이 분이 말하길 라틴 아메리카쪽에서는 멕시코시티와 리마가 요리로 가장 유명해서 학생들이 요리를 연구하기 위해 꼭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단다. 시에라 고산지방, 셀바 정글지방, 코스타 해안지방 이 세 지역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페루이기에 다양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이후 리마에 온 이민자들의 요리 문화까지 들어왔으니 리마는 미식 도시가 되기에 적합한 환경인 것이다.


 특히 리마는 남미에서도 손꼽히게 미슐랭 가이드 식당들이 많기로도 유명한데, 나 역시 없는 돈을 모두 털어 가보고 싶었지만 이 모두가 비싼 건 둘째치고 예약을 몇 달 전부터 재빠르게 해야해서 일단 포기를 했다.... ㅠㅠ (그래도 페루를 떠나기 전에는 운이 좋아 한 번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번은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친구네 부부가 나에게 "브라질을 대표하는 단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친구 마리아나에게 다시 다른 외국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냐고 되물으니 보통 '범죄', '불안한 치안' '위험' '열정' '삼바' 등으로 대답했다고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다양성"이라고 대답을 했고, 내 대답을 들은 친구네 부부는 나의 대답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 박수까지 쳐주며 네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정말 좋아했다. 



"다양성"

사실 이는 브라질 뿐만 아니라, 모든 중남미에 해당이 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현대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은 사회문화적 다양성이다.

그리고 그 단면은 각 나라 수도들에서 가장 밀집된 형태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상파울루에서 그나마 제일 안전한 구역으로 여겨지는 파울리스타 대로 주변. 그래도 대낮에 옆구리에 슬그머니 칼을 들이대고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주변. 나는 밤에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여기 근처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나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위협적으로 구걸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우루과이는 원래 브라질의 시스플라티나 주였기 때문에 포르투갈 식민지 특유의 느낌도 남아있고, 독립 때부터는 아르헨티나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 영향도 많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나라다
몬테비데오의 귀여운 그래피티. 이 바리오 (스페인어로 구역, 혹은 빈민촌) 근처에는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인 흑인들의 밀집구역이었다.
바다처럼 보이는 라 플라타강을 끼고 해안(?) 산책 도로가 있고, 그 마지막엔 헐리우드처럼 몬테비데오 사인이 있다. 남미 어느 곳이든 이런 구조물이 있으니 한번 꼭 찾아볼 것.



사실상의 단일문화권인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온 외국인이기에 이 다양성을 고작 몇 년만에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 복잡하고 뒤엉킨 라틴아메리카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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