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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Apr 28. 2018

키워드 프로젝트 - 2. 빈부격차

기나긴 식민 시절부터 이어진 중남미의 빈부격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래에 빈민촌이 즐비한 초리요스 언덕 전망대. 미라플로레스 라르코마르 쇼핑몰에서 보이는 거대 예수상이 있는 곳이다. 여길 무턱대고 트레킹해서 올라가다간 강도를 만나기 십상이다.



이곳 남미 페루에 오기 전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 지인들을 통해 익히 들었던 걱정은, 무엇보다도 치안에 대한 것이었다.

잉카 마추픽추 유적지나 이과수 폭포, 아마존 정글이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와 우유니 사막 등 소문난 남미의 여행지를 보게 된다고 부러워 하는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 그것보다는 모두가 나의 남미 페루행에 강한 의문을 표했다. 


"넌 왜 굳이 위험한 그 곳을 선택해서 가는거냐?" 

"거기는 강도 소굴 아니냐? 사람들 엄청 많이 당한다던데?" 

"남미는 마약과 총이 판친다던데...."


난 원래 성격상 긴장을 덜하는 편이고 간이 크다는 말을 많이 듣긴 하지만 - 그렇다고 아예 스스로가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배낭여행은 많이 다녀보았고 소매치기 한 번 당한 적 없었지만 (대신 동유럽에서 스킨헤드를 만나서 쫓겨다닌 적은 있다), 내가 직접 살게 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여행 난이도 최상이라는 그 중남미에서 살게 된다는 것은 내 오랜 꿈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솔직히 겁이 나는 일이었다. 브라질에서 공부하고 일했던 내 친구도 소매치기와 강도를 당했다고 했고, 볼리비아에 계셨던 내 예전 스페인어 강사 선생님도 남미 대도시는 위험하다며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미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 남미 여행 중 당한 사건 사고에 대한 섬뜩한 무용담이 즐비했다. 그래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내 결정에 책임을 지고 그곳으로 갈 준비를 해야했다. 


그래도 그 위험하다는 소문이 도는 남미도 사람이 사는 곳이려니, 그래서 사는 모습이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여기서 살아보니 그 말은 어느 정도는 맞았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당연히 이들도 사람이고, 사는 방법들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 그러나 그 방법이란 것들 중 몇 개는 - 내가 살아왔던 환경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대사관이나 현지 교민들로부터 들었던 첫 이야기들 역시나 행동이나 옷차림에 대한 주의, 강도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 그동안 여기서 살면서 당했던 크고 작은 범죄 경험에 대한 무용담이었다. 요약하자면 대충 수칙은 이렇다.


· 남미의 대도시는 거의 모두 치안이 좋지 않고 위험하며, 남미의 소규모 도시는 대도시보다는 치안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 어디를 방문하더라도 그 지역의 지리 정보를 알고 가라. 우범지역과 피해야 하는 지역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특히 어떤 도시든 구시가지쪽과 언덕 등은 우범지대이니 어둠이 내리기 전에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

· 빈민가 쪽은 (그쪽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이나 현지 친구의 가이드 없이는) 결코 발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 

· 여기 범죄는 기본이 총과 칼, 그리고 마약이다. 여기 강도들은 보통 마약을 하고 범죄행각을 저지르기 때문에에 이들을 만나면 목숨값이라 생각하고 그냥 다 줘라. (만일 현지어를 잘하는 경우라면 강도랑 금액과 물품 협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_-;;;;) 

· 절대 많은 현금을 보이지 말아라. 여기 현지인들도 큰 지갑 들고 다니지 않고, 소액은 작은 동전지갑 같은 곳에 넣어다닌다. (ATM은 되도록 은행 업무 시간에 이용하고, 큰 액수를 한꺼번에 뽑지 말 것)

· 외국인, 특히 동양인은 이곳에서 돈이 많다는 인식이 있고 (남미에 이민 온 동양계들은 대부분 특유의 근면함으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 보통 최신형 스마트기기를 보유하기 때문에 범죄의 타겟이 되기 쉽다. 대도시에서는 스마트폰을 되도록 길거리에서 보이지 말것. 

· 대중교통 이용시 가방 앞으로 하고 다니고, 호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넣지 말 것. 택시는 안전하게 콜택시나 우버를 불러 다니고, 택시 안에서도 함부로 폰을 꺼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어두운 저녁 이후 - 밖에서 빛나는 불빛을 보고 스마트폰임을 알아채고 오토바이 강도 등이 와서 택시에 총을 겨눈다)


정말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여기 계신 모든 한국 분들에게 마치 세상 밖을 처음 나가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겁이 없고 간이 크다는 소리만 들었던 내가 처음으로 겁쟁이 쫄보가 되는 기분이었고, 과연 내가 이런 나라에서 - 내가 온 목적인 현지 학생들과의 즐거운 수업과 교육은 고사하고 - 무사히 살다가 나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못하고 목숨 걱정만 하다가 가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세계에서 안전한 나라 순위를 매기면 늘 최상위권에 드는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기껏해야 생활 속에서 조심한다는 사건 사고는 교통사고나 성범죄, 혹은 물건 분실 정도였던 내가, 갑자기 끊임없는 소매치기의 위협과 - 총과 칼 그리고 마약이라는 - 내 인생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상황들에 놓이다니. 마치 최종 보스 던전에 예고 없이 놓여진 느낌이었다.



리마에 도착한 첫날 가보았던 초리요스 지역. 근처에 힙플레이스인 바랑코 지역이 위치해 있다. 바랑코 자체도 안전한 곳이 아니고, 마약을 파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리마에 도착한 첫 날 밤 가보고 다시는 가본 적이 없는 바랑코. 재미있고 젊은 분위기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마약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밤이나 낮이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탄식의 다리 근처. 대사관에서 발행하고 있는 <페루 안전하게 여행하기> 책자에서도 이곳 주변을 걸어다니는 건 자살행위라고까지 표현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 마약을 구하고 싶다고 마약상인들을 먼저 찾아갈 필요가 없다. 그들이 먼저 찾아온다. 
리마에 도착한 첫 날 밤 가보고 다시는 가본 적이 없는 바랑코. 재미있고 젊은 분위기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마약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밤이나 낮이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탄식의 다리 근처. 대사관에서 발행하고 있는 <페루 안전하게 여행하기> 책자에서도 이곳 주변을 걸어다니는 건 자살행위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나라의 최고 대학이라는 가톨릭 대학 정문 앞. 이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강도를 당해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현지인을 보았다.  아마 처음으로 본 강도 라이브쇼.
리마에서 홈스테이로 머물던 - 페루 생활 30년차 교포이자 현지 관리인 선생님 댁에서의 리마 지역 이해 교육. 리마에서 어디가 위험한지를 빨간 색과 노란 색으로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남미는 왜 이렇게 치안이 불안하고 위험한 것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바로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스스로를 금수저 혹은 흙수저 등으로 지칭하면서 사회를 수저계급론으로 풍자하는 것이 일반화가 될 만큼 빈부격차가 예전에 비해 점점 커지고 있고, 고등교육의 기회가 점점 부유층으로 몰리는 바람에 경제적 사회 계층 이동 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이를 사회 문제로 여기고 저소득층 복지 혜택이나 부에 따른 세금 징수 등으로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내는 상황이지만 - 내가 봤을 때는 이곳은 아예 해결 방법 자체도, 해결할 의지도, 수행 능력도 없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자면, 이 키워드 프로젝트 시리즈의 1번이었던 "식민지" 이야기를 다시 해야한다.





이 땅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의 불균형은 처음으로 식민지배가 되었던 약 500여년 전, 그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별안간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물론이고, 인간 이하이자 말하는 동물로 취급받았던 이 땅의 원주민들은 땅의 소유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배 동안에는 많은 가톨릭 교회들을 세워 교회가 주변의 토지 소유권을 가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남미 땅에서 나는 모든 지하자원과 농작물들의 소유권은 모두 지배층 백인들에게 돌아갔고, 이를 통해 유럽의 본국들은 부를 축적했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해도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지배층들을 위한 것일 뿐, 모진 차별과 가난을 동시에 견뎌가며 살아야했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피지배층들은 삐뚤어지고 상처받으며 후대 세대에 가난과 빈한함을 되물림했다. 그러던 상태에서 갑자기 크리오요 (페닌술라르 -스페인, 포르투갈 본토에서 태어나 건너온 지배층 백인 - 이 아닌, 이 중남미땅에서 태어난 백인계층을 지칭) 들의 주도로 식민지배 상태에서의 독립을 맞게 되었고, 사회적 계층은 그대로 경제적 계층으로 고착화가 되어 지금의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시작부터 완전히 잘못된 상황이고, 이를 고칠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로 비유를 해보자면 - 일본의 식민지배를 약 500여년 전부터 받은 것이고, 이후 일본계 이민자들이 수탈을 통해 경제적 부와 위치를 견고하게 다짐과 동시에 일본의 시스템과 문화까지 모두 이식을 완료한 상태에서 - 일본계 이민자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피폐함과 가난함을 물려받은 한국 식민 피지배층 후손들은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떤 장미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페루나 볼리비아 시에라 (고산, 산악 지역) 의 경우 아직도 많은 토지들이 가톨릭 교회의 소유라고 하며, 안데스 산맥이라는 지형의 특징 상 발전이 더디기에 - 바다 근처의 코스타 지역보다 더 가난한 상태라고 한다. 그들이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무작정 대도시인 리마 등으로 오게 되면서 도시의 슬럼과 빈민촌을 형성하게 되었고, 돈이 없으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높은 흙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살게 되었다. 물론 그곳은 물도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며 - 지붕도 없이 대충 흙으로 벽만 지어 올려 사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지식도, 자본도, 기술도 마땅히 없는 이주자는 생활비가 많이 드는 대도시에서 과연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보통 남미 국가의 시골의 어린 여자애들은 집안에 입을 덜고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고, 별 다른 지식과 기숙이 없기에 남의 집 가정부 일을 시작한다. 집 크기에 따라 급여가 다르긴 하지만, 페루 리마의 경우 주6일 하루 4시간 근무를 하면 하루에 대충 20-30솔 (한국 돈으로 만원 안팎)을 번다. 그리고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입주가정부의 경우 일주일로 계산을 해서 보통 200솔 (한국돈 6만 5천원 정도) 가까이 번다. 너무도 월급이지만 아끼고 아껴서 고향으로 보내기도 하지만,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못견디고 남자친구를 사귀다 임신을 한다. (여긴 가톨릭 국가가 대다수라 낙태가 불법이다) 당연한 수순처럼 남자는 임신 시켜놓고 도망가고, 여자만 싱글맘으로써 아이를 책임진다. 이렇게 그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에 동참하게 된다. 


이런 크고 작은 좌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난한 이주자들을 나쁜 길로 유혹한다. 가정부의 경우 값나가는 집안 물건이나 돈에 손을 자꾸 대다가 잡혀 쫓겨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범죄를 학습하기도 하고 마약에 중독되기도 한다. 또 마약이나 총기를 밀반입해서 사고 파는 경우도 많아 국경지대에서 가끔 걸리기도 한다. 콜롬비아나 베네수엘라 여자들은 다른 나라 (페루, 칠레 등) 로 건너가 매춘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센트로 데 리마 아르마스 광장에 자리한 리마 대성당. 이곳에서 결혼하는 것은 매우 돈이 많이 드는 일이며, 허락도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곳을 넘어서 투어로 갈 수 있는 산 크리스토발 언덕 근처 전망대로. 리막 강을 넘어 가는 곳인데 정말 위험하므로 투어로만 가는 것을 추천한다.
부촌인 미라플로레스나 산 이시드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흙빛의 집, 지붕이 없는 집, 전기나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집들이 즐비하다. 거주민들의 눈빛 역시 살벌하다.





올해 영국에서 시작할 국제개발 교육 석사 과정에 대한 고민을 브라질 상파울루 교민 지인분께 털어놓았더니, 그분께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셔서 그곳에 계시는 또 다른 교민분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 다함께 파벨라 (브라질 포르투갈어로 슬럼가, 빈민촌을 일컫는 말) 봉사활동을 갔던 적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도시 빈민층 아동 교육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어렵사리 내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것이지만, 실제로 내 피부로 받아들이게 된 그 아찔하고 지독한 현실과 가난, 거기서 우러나오는 깊은 연민에 갑자기 심한 두통과 구토감이 몰려왔다. 웃음보다는 무표정, 공부보다는 구걸이 더 익숙한 파벨라 아이들을 볼 때마다 때때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그들과의 시간이 결국 나의 값싼 동정처럼 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웃으면서 그들과의 만남을 갈무리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상파울루에서 나고 자란 친구 부부네 집에 초대를 받아 마음 수양과 요양도 할 겸 며칠을 함께 지냈는데, 내가 요리하는 한국 음식과 친구네 부부가 농장에서 담근 술을 함께 먹으며 브라질이 처한 많은 문제점과 현실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 치하에 있을 때, 플랜테이션 농업을 위해 많은 흑인들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데려왔다. 이후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할 때 흑인 노예해방도 후에 함께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노예 해방 이후로 흑인들에게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고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일부러 주지 않았다고 했다. 생계가 곤란해진 흑인들은 다시 부유층의 하인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거나, 혹은 대도시로 흘러들어가 빈민층을 형성하고 슬럼을 만들었다. 시간이 진행될 수록 슬럼은 더욱 커졌고, 그것이 현재 브라질 내 온갖 강력범죄의 온상인 파벨라의 시초가 되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한 나라 중의 하나인 브라질은 인구의 5분의 1이 파벨라에 살며 기초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브라질의 진짜 부자들은 범죄의 타겟이 되어 이동 중에 강도의 습격을 받을 일이 없게끔 개인용 헬기를 타고 다닌다. 그리고 일부러 요트를 타고 들어가는 외딴 섬을 사서 섬의 절벽을 깎아 터를 만들어 별장을 짓는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정부의 허락 하에 개인이 섬을 사는 것이 가능하단다) 그러나 상당수의 브라질 사람들은 한달에 1000헤알(약 30만원 이상)도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입주가정부 일을 한다. 

하지만 브라질의 물가는, 특히 상파울루나 히우 (흔히 한국에서는 리우데자네이루 등으로 불리나 현지 발음으로는 히우지자네이루. 보통 히우라고 부른다) 등에서 살 경우에는 그 생활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 도시에 있어야 하지만 그 도시에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쉬운 선택은 무엇일까. 결국 이렇게 범죄의 길로 빠져들고, 마약 (콜롬비아나 파라과이 등 옆 나라에서 생산되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을 팔고, 강도짓을 하는 것이다.




중남미의 많은 기득권층은 파벨라 출신 사람들, 인디오계나 흑인계들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면서 해악을 저지른다고 늘 비난한다. 어쩌면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똑바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남들의 스마트폰을 뺏어서 총과 마약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히 원하고 노력해도 - 이보다 나은 상황에 대해 영원히 꿈조차 꾸어볼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런 상태로 이미 몇 세기가 흘러왔다면, 자기 옆을 지나가는 부자들이나 자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가볼 수 없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 대해 괜한 억하심정을 품고 괜히 나쁜 마음을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곳의 치안, 빈부격차 문제는 참으로 함부로 풀어내기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인 것이다.  







라르코 박물관. 여기가 리마에서도 위험한 편인 센트로와 가까워 그런지 여길 다녀오는 길에 10대 그룹 소매치기단을 만났다. 당할뻔 했으나, 눈치가 빠른 덕인지 화를 면했다.
깔끔하고 살기 좋은 미라플로레스. 다시 말하지만 대도시 리마에서 이곳처럼 밤에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은 정말이지 없다.
미라플로레스의 상징들. 왼쪽은 가장 비싼 식당 중 하나인 La Rosa Nautica, 그리고 오른쪽은 라르코마르 쇼핑몰. 이런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페루 사람은 소수이다.



시민들의 평균 소득에 비해 고급 쇼핑몰이 너무도 많은 기형적인 도시, 리마의 또다른 부촌인 수르코에 위치한 죠키 플라자 쇼핑몰. 무슨 작은 마을 규모 정도로 정말 크다.도둑들이 가끔 원정을 오는 경우가 있어 곳곳에 사설 경비들이 지키고 있다.
시민들의 평균 소득에 비해 고급 쇼핑몰이 너무도 많은 기형적인 도시, 리마의 또다른 부촌인 수르코에 위치한 죠키 플라자 쇼핑몰. 무슨 작은 마을 규모 정도로 정말 크다.도둑들이 가끔 원정을 오는 경우가 있어 곳곳에 사설 경비들이 지키고 있다.
한달에 1000솔 (약 33만원)도 못버는 사람들이 리마 인구의 절반은 될 터인데, 다소 기형적으로 크고 멋진 이 쇼핑몰은 그들을 위한 것은 절대 아니겠지. 
정말 크고 물건도 많지만 어째 이곳을 찾는 사람은 관광객이거나 다들 얼굴이 희다. 



빈부격차의 이유를 하나 더 찾자면, 여기는 교육의 질이 낮고 특히 책이 너무도 비싸다.책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가격도 한국보다 약 2배인데 - 이 사람들의 소득수준을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가격인 것이다. 
빈부격차의 이유를 하나 더 찾자면, 여기는 교육의 질이 낮고 특히 책이 너무도 비싸다.책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가격도 한국보다 약 2배인데 - 이 사람들의 소득수준을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가격인 것이다. 




센트로 데 리마 구역의 이모저모. 여기 구시가지가 위험한 이유는 근처에 경찰도 잘 못들어가는 심각한 치안 부재의 빈민촌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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