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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Jun 27. 2018

키워드 프로젝트 - 5. 학교

내가 매일 마주하며 가슴으로 느끼는 남미 및 페루 교육의 단면들


나는 현재 남미 페루에서도 북부 칠레에 가까운, 남부의 모케구아라는 지역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이곳은 모케구아 주의 주도라고는 하지만, 다른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 기준에서 봤을 때는 영락없는 깡시골이다. 이곳에서 COAR Moquegua 라고 불리우는 페루 국립영재학교 모케구아 지부, 그리고 I.E. Belaunde Terry (옛날 페루 대통령의 이름. 이하 벨라운데 테리) 라는 공립 중고등학교에 주 1회 순회근무 중이다. 


사실 나는 이 사업으로 지원 당시 현지 사정 상 고등학교로 가는 것이 정해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다른 동기들처럼 수도나 제 2도시도 아닌 이 시골, 코아르 모케구아로 던져지듯 갔었다. (이 나라의 현재 실세는 부통령 - 쿠친스키 대통령은 얼마전에 부패 스캔들에 휩싸여 사임 - 인데, 부통령이 이곳 모께구아 출신이라서 이리로 보내졌다는 게 설득력있는 가설이다. 실제로 내가 이곳에서 부통령을 두 번이나 만나서 대화도 하고 악수도 했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물론 힘든 점도 많았지만 - 그만큼 흔히 우리가 보는 수도나 다른 대도시와는 다른,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이곳 교육 현실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기에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에서 석사로 개발학이라는 맥락에서 교육을 연구하겠다는 미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올해 9월 말부터 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에서 교육 개발학 석사를 시작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남미의 교육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곳에서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학교 등의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배우는 내용이 다르거나 수준차이가 극명하진 않은 편이지만 여기서는 어떤 학생이 공립을 다니느냐, 아니면 사립에 다니느냐, 그리고 사립을 다닌다면 어떤 수준의 사립학교를 다니느냐로부터 그 학생이 처한 사회적 계급을 각각 판단한다. 공립학교는 주로 경제적 수준이 낮은 집안 아이들, 부모님이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는 곳 등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보통의 부모님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어떻게든 사립학교를 보내기 위해 정말이지 안간힘을 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권에서도 물론 무너진 공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이런 체계 안에서 교육은 이미 만들어진 사회적 계급을 공고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여기는 이미 몇백년전부터 내려온 식민시대로 인해 소수 유럽계만이 교육이란 특권을 누려왔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식민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소수의 엘리트 교육, 즉 사립학교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라는 결론이 나오니.

 

여튼 그런 현실이기에 남미에서 똑똑하고, 영어를 보다 정확하게 구사하는 (영어는 남미에서 권력언어이다) 사람들은 죄다 한 학기에 학비만 기실 몇 천 달러 심지어는 만 달러는 가뿐히 넘는 사립학교에서 교육 받거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는 나에게 제일 힘든 부분은 언어였다. 분명 계약서 상에는 적어도 코아르에서는 영어로 가르치라는 식으로 적혀있지만 뭔가 사기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부실했고 (애들이 방학만 지나고 오면 영어 실력이 제로에 수렴해버리는 경우가 반 이상이었다. 아이고 얘들아 ㅠㅠ 가끔은 내가 영어 교사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가진 지식을 한국어가 아닌 영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인어로 풀어내는 최종 변환 과정은 정말이지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일이었다. 특히 스페인어! 한국어와 스페인어는 딱히 가까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사전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국어에서 자료가 풍부한 영어로 찾고 - 다시 그걸 영서사전을 뒤져서 찾아냈다. 그래도 나중엔 점차 익숙해져서 개인의 스페인어 실력 향상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남미, 특히 페루의 경우에는 inicial (0세부터 3세반, 3세부터 5세반 이렇게 두 패턴으로 나눈다) - primaria 6년 - secundaria 5년 (유치원 - 초등학교 - 중고등학교 등으로 해석이 가능할 듯) 의 학제를 따르는데 다른 남미 이웃 나라들도 이를 일컫는 명칭만 약간 다를 뿐 이와 비슷한 학제를 따라간다. 그러나 외국계 유명 사립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그들 자체적인 규정이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정하는 학사 규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주로 근무하는 COAR 코아르는 페루 교육부에서 만든 프로젝트 학교의 일환으로,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계층 이동 및 재생산화를 활발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고등학교이다. COAR의 의미 자체가 Colegio de Alto Redimiento 의 줄임말로 이는 영어로 번역해본다면 School of High Performance 즉, 영재학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공립학교에 다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인성이 좋은 아이들을 선발하여 5년의 세쿤다리아에서 총 3년 과정을 국가에서 지원하여 가르치는 곳인데, 교사 및 학생들의 수준 향상을 목표로 함과 동시에 이중 수재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IB 과정을 밟게 되어있다. 일반 공립학교 2학년 째에 아이들이 교장의 추천을 받아 지원을 해서 총 2번의 선발 시험을 거친 후, 선발된 아이들은 세쿤다리아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코아르에서 3년을 보내게 된다. 


코아르는 페루 전국 주마다 하나씩 다 설립이 되어있는데, 기본적으로 세끼 밥과 중간 중간에 간식까지 책임지는 종합 기숙학교인데다 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주로 도심 외곽이나 주변 위성도시에 학교를 세운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길게는 몇 백년 동안 내려온 과거로부터의 가난한 되물림을 끊도록 나라에서 지원하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교육을 통해 미래의 인재로 성장할 기회를 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개도국에서 나오기 쉬운 것이 아니라 나도 꽤 놀랐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후진적인 행정과 예산처리로 인해 워낙에 모든 일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 남미고 페루인지라, 아직 모케구아 우리 학교는 옆 학교 건물만 빌려 간이로 쓰고 있는 형식이다. 사실 우리 학교는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정부에서 내어준 터로 학교를 새로 지어 옮겨가야 하는데 아직도 기초공사 하나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엔 잡초만 무성하다. 2019년 말에는 이 임차 계약도 만료가 된다는데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_-;;;)



코아르 모케구아의 모습들. 여전히 임시로 옆 학교 건물을 빌려쓰는 지라 미흡한 점이 많다.코아르 학생들은 공부를 위해 랩톱 컴퓨터 등 전자기기들도 지급받고, 급식과 간식도 전부 무료이다.


코아르 학생들은 공부를 위한 랩톱과 전자기기, 학용품 등은 기본으로 받고, 또 급식과 간식들도 무료로 지급된다.


코아르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해온 많은 학교 행사들 중 몇 개를 추림. 하나하나 볼 때마다 생각하는 그 날의 풍경들.




코아르 주변 출근 풍경. 지붕이 없다시피한 헐벗은 집들을 통해 아직은 낮은 이곳의 생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주 1회 순회근무를 하는 벨라운데 테리 학교의 경우에는 전반적인 남미의 공립학교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곳이고, 더군다나 시장 근처의 빈민촌 밀집지역과 가까운 곳이라 (이곳의 평균 가계소득이 한달에 250달러도 되지 않는다. 약 80퍼센트의 학생들은 한달 가계 소득이 약 600솔, 우리 돈으로 2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의 수입으로 산다) 가슴 아픈 남미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벨라운데 테리에서 가르치는 나의 학생들 중에서는 제 나이가 아닌, 그러니까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중에는 경제적 형편 등의 이유로 돈을 벌 수 있는 소소한 잡일을 하거나, 그냥 집에서 쉬는 등 이렇게 학교를 한 두 해씩 그만두었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다시 다니는 일을 반복하는 학생들도 있고, 혹은 학년 말 시험에서 걸러지는 유급을 통해 (여긴 생각보다 유급제도가 철저하다) 어쩔 수 없이 한 해 더 그 학년에 머물러있어야 하는 학생들도 몇 있다. 하지만 유급의 이유도 보통 처음에 언급한 경제적인 이유에 기인한 것이 많다. 대학은 가지 못하더라도 기초교육인 세쿤다리아까지는 빨리 졸업을 해야 그나마 제대로 대접 받고 경제 활동을 할 텐데 당장 그럴 수 없으니 푼돈만 벌다가 돌아와서 또 유급하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값비싼 사립학교도 아니면서, 왜 보통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 꽤 돈이 드는지 몇 가지 생각나는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이곳에서는 급식이란 개념이 없어서 밥을 사먹어야 한다. 남미가 그러하듯 식비, 즉 밥값은 저렴한 편인지라 5-6솔 (우리 돈 약 1700원 ~ 2000원 가량)이면 수프부터 메인 요리, 마실 것 까지 나름 근사하게 잘 먹을 수 있으나 한 달에 600솔 정도 밖에 벌지 못하는 가계에서는 이런 것도 사치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은 1솔 정도면 사먹는 학교 매점 간식에 의존하거나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껌을 씹는다. (그래서 이 사정을 알고 난 뒤로부터는 수업 시간에 껌을 씹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예전처럼 크게 뭐라할 수가 없었다.)

둘째. 이곳에서는 잉크값이나 종이값이 비싸다보니 프린트물 나눠주는 것도 전부 장당 얼마, 인쇄 단/양면 당 얼마 등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다. (참고로 남미 대부분이 2차 산업이 발전되지 않아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또 관세가 많아 공산품이 비싸다) 그 뿐이랴. 학교 보수공사 등 보통의 상식이라면 정부 예산으로 해야할 일들도 대부분 학생들에게 돈을 걷거나, 학교 단위로 시행하는 음식을 파는 행사를 해서 충당하는데 이것도 학교 학생이나 학부모가 각각 할당한 양을 팔아주어 채워야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 여기서는 무언가를 팔아주어 예산을 마련한다라는 것이 기본 마인드인지, 코아르 학생들 중에서도 자신이 돈이 필요한데 없다면 - 당첨될 경우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주는 복권 같은 걸 만들어 팔아서 충당하고는 했다.) 





코아르보다 더 심각한 벨라운데 테리 주변 풍경. 우리 학생들은 대부분 저 언덕 위의 간이 집에서 산다. 전기도, 수도도 잘 들어오지 않으며 5시 이후로는 다니기 많이 위험하다.






우리가 여기서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시스템 자체는 유럽인데 실행주체가 페루아노"이다.

식민 시절의 영향으로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규정은 유럽식, 특히 스페인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를 실행할 능력은 전혀 뒷받침이 안된다고나 해야할까. 혹은 목표나 취지는 좋다지만 아직 현실의 벽을 깨기에는 너무나 높다고 해야할까. 


유럽식 시스템 같은 교사 평가 평가지와 영락없는 페루식 학생 출석 점검표. 안을 보자마자 마치 이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치원 원아카드를 시전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처음에 내가 벨라운데 테리에서 교과서를 받았을 때 놀랐던 것은, 교과서가 생각보다 퀄리티가 높고 훌륭하다는 것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너무 양이 많고 내용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수학, 과학도 수준이 높고 어려운 편이지만 - 이곳은 초등학교 때 기초교육도 제대로 안된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어떻게 교과서를 이렇게 꾸며놓았을까 늘 의문이었는데, 알고보니 이 교과서 업체가 스페인에 있는 업체였고, 이를 하청해서 만드는 듯 했다. 



학교로부터 받았던 과학책들. 아니, 무척추동물의 생식이 중학교 수준에서 다뤄져야 합니까? 아이들은 이 방대한 양에 질려 스스로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제대로 교과서를 만들어 낼 역량이 없으니 그런걸까? 아니면 스페인에 의존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이곳의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 역시 스페인의 그것을 본따서 만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 자국민들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옷임을 애써 정부가 외면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뭐, 리마에 있는 공립학교들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해도 -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국보다 더욱더 수도와 지방 격차가 넘을 수 없는 벽 수준으로 크다. 리마에 따로 공화국을 만들게 아니라면 이러한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이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 듯한데 - 내가 늘 느끼는 바는, 아이들의 70퍼센트는 교사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지 않고,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이다. (실제로 시험 성적도 내 예상대로 낮게 나왔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마다 능력치와 한계를 설정하고 이를 조금씩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교육의 일환인데, 어찌보면 자꾸만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을 계획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버둥대지만 결국 해내지 못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페루가 아직 철저한 자기객관화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현지 세쿤다리아 2학년 (우리나라로 중1-2쯤)과 5학년(우리나라로 고3쯤)을 맡아 코티칭을 하는 지금, (사실 말과 형식만 코티칭이다. 여긴 코티칭이란 개념 정확히 잘 모른다), 보통 어릴 수록 학생들이 적극적이고 허용적인 분위기고 클 수록 수동적이라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하는 교육적 효과가 더 높은 것 같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이라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한국보다 수준이 심리적으로든 교과 수준이든 3년 이상은 낮다. 여기 나온 다른 코이카 단원들과도 이야기해보니 - 언어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사실 초등학교 중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제일 효과적이고 좋아 보이지만 - 고등학생쯤 되니 아무리 비효율적이라도 자기들이 계속 하던 방식이 있어서 그런지 아무리 틀려도 잘 고치질 않더라. 

이들 학교를 번갈아가면서 출근하며 느끼는 사실은, 제아무리 코아르라고 해도 역시 공립학교 출신 아이들이다보니 수준이 기대했던 것 만큼 높지 않거나, 혹은 수준 미달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 내가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우선 초등학교 때 부터 기초교육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업적인 면으로는, 우선, 수학의 기초 계산이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 배우는 사칙연산 수준도 안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계산기를 주로 쓰다보니 간단한 덧뺄셈조차 안되어서 속앓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시장 상인들조차 빼기가 안되니 항상 덧셈으로 보수를 만들어서 물건값을 계산하더라. (2솔짜리 물건을 내고 10솔을 내면, 10-2라서 8솔을 주는 게 아니라 2+8=10이라서 8솔을 주는 것) 진짜 수학적인 능력이 많이 뒤쳐지는 편으로, 수학 선생님 정도를 제외하면 기초적인 계산이 아무도 되질 않으니 수학적 능력이 어느 정도 필요한 다른 과목 (예를 들어 내가 가르치는 과학) 도 학업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과학 과목의 특성상 간단하게라도 답을 계산할 일이 많았는데 고등학생조차 정말 짜증이 날 정도로 간단한 곱셈 나눗셈도 안되니 학업 향상을 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만고만한 남미의 PISA (기초 학업성취도) 수준. 다들 딱히 높지 않지만 페루는 심각하다. 난 읽기 부문을 제외하고 수학,과학만 놓고 보면 저거보다 더 낮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내가 본 거의 모든 페루 사람들은 대화의 맥락에 맞게 말하는 능력과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쓰기 능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편으로, 보통 어디서든 말하기를 시켜도 주제와 핵심을 못짚고 빙빙 돌리며 시간만 늘리며 효율이 떨어지고, 그러다가 그냥 결론을 못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사실 이런 말하기 스킬은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이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전혀 되질 않더라. 그래서 회의 한번 참석, 공청회 같은 거 한번 참석 할때마다 시간 낭비하는 기분에 정말이지 기가 질렸다. 내가 여기서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본 적이 없기에 분석해 본 적도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만 아마 국어 교육부터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영사님 말씀대로 이건 스페인어 언어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도 드는게, 스페인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화법이 접속법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빙빙 돌려 말하는 방법의 결정판이다.) 

그래서 일단 학생들에게 상대방의 대화든 뭐든 듣고 거기서 필요한 것만 질문하라고 했더니 애들이 처음에는 얼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아무말 대잔치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문장이나 글을 자세히 읽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장인지 화자의 생각은 무엇인지 간추리는 능력부터가 부족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이곳의 어른들 및 학교 교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니 학생들만을 욕할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공립학교의 수업태도.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떠들면 안된다는 개념이 없는지 정말 미친듯이 떠든다. 조용히 시켜도 말을 듣지도 않고 끊임없이 말을 하니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선생님에 대한 존중이 없는 건지 아님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혼을 내면 학교마다 소속된 변호사에게 달려가 아이들이 자기들 혼난 것만 말해서 되려 선생님이 징계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도 교권 붕괴가 되어서 학교가 엉망인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선생님들은 더이상 아이들에게 인성 지도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기가 살아서 더 저러는 것 같은데, 과연 학교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에서는 이런 태도는 전혀 통하지 않을텐데 말이지. (부모들도 다들 살기 바쁘니 딱히 지도하지 않는다. 나중에 도대체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고.)


현재 8년차 현직교사로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지만, 가정교육이 먼저고 그다음이 학교 교육이다. 80 퍼센트이상은 이 순서를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역할과 가정교육이 아이들의 바탕 배경이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의지로 집안 환경을 극복해 내는 경우도 없진 않다. (우리 코아르 아이들이 그런 경우이며, 공립학교 출신이지만 그래도 실력과 인성으로 한번 고른 아이들이라 그런지 마음씨는 착하고 인성이 출중하다)

  

아, 그리고 다른 나라 동기들도 마찬가지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는 한국처럼 도덕이나 윤리 시간이 없고 그 자리를 종교교육(가톨릭)이 대신한다고 한다. 여긴 정교일치 사회는 아니지만, 국교가 정해져있는 곳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모께구아 근처 광산 회사에서 기증한 전자칠판을 이용해 발표 수업. 아이들은 일제식 수업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을 대단히 어려워하고 또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Profe, Copiamos? Copiar?" 쌤, 꼬삐아르해요? 즉 - 따라 적어요? 였다. 아니 그냥 적는게 어디있냐. 자기 생각을 곁들여서 자신이 아는 정보는 빼고 모르는 것만 가지치기해서 간추려 적는게 노트필기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마치 필사 대회라도 하는 것처럼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따라적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교사건 아이들이건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코아르에서는 배워야 할 지식의 양이 많아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아이들이 조금씩 자신의 방법대로 필기를 하기 시작한다만, 보통 공립학교에서는 꼬삐아르 하라고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책도 노트도 펼치지 않고 펜도 집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습할 리도 만무하고 여튼 이런 것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또 스스로 훈련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이를 기록해두지 않고 게으르게 굴면 쌓인 지식 또한 모래성처럼 금방 무너지니까.





대부분의 남미 공립학교는 한마디로 개판이라 보통 중상류들은 사립학교를 가는데, 사립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국립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다. 국립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사립학교에 가야한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그러하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정도에서는 교육이 무료라고 하지만 그만큼 교육 서비스가 좋지 않아 (파업을 자주한단다)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사립으로 보내고 싶어한다고 하였다.



공공 교육에 투자하는 비율. 사립학교들이 유명한 브라질이 저 그래프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는, 저 돈들이 다 국립대학에 쓰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많은 나라의 경우 교사의 처우가 그닥 좋지 않다. 다른 나라들도 사실 동아시아 국가들이나 북유럽 국가들처럼 교사를 전문직으로 보는 시선이 덜한 편이긴 하다만 여기서는 누구도 교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되더라고 해도 사립학교에 있고 싶어하지 공립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워낙 수준이 낮고 문제를 잘 일으킨다는 사정 때문인데다 임금까지 낮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서는 괜찮은 대학을 나오는 것도 힘든 일인데, 대학을 어렵게 마치고 나서 교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없을 수 밖에 없다. 페루는 대충 정해져 있는 최저임금이 현재 한달에 400달러 가량인데 교사가 그정도 돈을 번다. 그러니 교사를 지원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보통 투잡 이상을 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오후 점심쯤 수업이 마치는 경우가 많음). 


그런데다가 지방과 수도의 교육 수준 차이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난다는 생각을 했으나, 원래 사회적인 장치가 워낙 미비한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그 차이가 더 벌어져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임금 등의 이유로 죄다 수도인 리마에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지방에는 괜찮은 인재들이 드물고, 혹여 있다해도 정부로 스카우트 되는 경우가 대부분. (내 전 코디네이터 데니스 선생님이 그랬다)

이렇게 인력난이 심각한 지방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교대나 사범대 시스템이 없으니 교사 양성소에 들어가서 대충 몇 달 동안 연수 받고 자격을 얻어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꾸 기본적인 개념 문제와 계산 문제도 틀리는 코티쳐도 그렇게 교사가 된 사람이고, 내 다른 코티쳐는 전직 슈퍼주인이었던 이유가 이래서였다.

  

하지만 이곳은 교장도 교사도 지위가 불안정하다. 계약직, 기간제가 반 이상이고, 특히 코아르의 경우는 3개월마다 계약 갱신이라 못하면 3개월만에 제명된다. 교장조차도 계약직인데 만약 계약 갱신에 실패하면 평교사로 내려온다. 내 생각은 임금을 올리고, 적어도 3년 이상은 고용 보장이 되어야 교직에 있는 사람들도 열의를 가지고 할 텐데 이런 조건에서는 역시 교육이 발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임금격차가 엄청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사의 월급이 너무나 싸다는 것. 그래서 교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당 얼마를 받기위해 투잡 이상을 뛴다.


 


현재 페루에서는 "교육을 바꾸자, 그래서 모든 것을 바꾸자" 라는 슬로건을 두고 교육 연수나 프로그램을 진행중에 있다.


https://www.icndiario.com/2011/12/14/peru-movilizacion-nacional-por-la-transformacion-educativa-cambiemos-la-educacion/



이래저래 탈도 많고 단점이 많은 이곳의 교육이지만 - 그래도 코아르 같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만 해도 미래에 작은 희망들을 싹 틔우는 것들이 아닐까? 이방인으로서 나는 많은 것을 할 수 없었음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나와 만났던 무수한 어린 인연들이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 발전에 이바지 해주길 바란다.



아름다운 모께구아의 노을이 저물 듯, 나의 파견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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