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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Jul 10. 2022

Diario BA #3 요동치듯 찬찬히 흘러가는 일상

이게 무슨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렇다.



0. 

손으로 직접 적는 개인다이어리에는 시간 날 때마다 글을 끄적거리며 잘 정리해두고 있으나, 

브런치 플랫폼에 글 적기에는 핸드폰에 있는 엄청난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글을 올리는 것이 늦었다.


1인 가정으로서 내 스스로와 집을 돌보며 외국에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서. 

나에게는 늘 시간 관리가 참 어렵다. 


현재 주중에는 열일하고 퇴근 후에는 스페인어와 탱고, 골프, 독서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내고 있는데 -

토요일 주말에도 골프를 배우느라 오후까지 반나절은 날아가고, 일요일 하루에 밀린 집안일을 하고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사람들도 만나러 다니는 지라 매우 정신없이 살고 있다. 


7월 9일, 아르헨티나의 법적공휴일이자 독립기념일이라 골프를 쉬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엉망진창이던 휴대폰 속 사진첩을 정리하고 간단하게나마 겨우 키보드로 글을 써내려 갈 시간이 생겼다.

(아무래도 조만간 사진첩과 연동이 되는 태블릿 피씨를 구입하던지 해야할 것 같다...!) 






1. 

이사 이후로는 삶이 좀 안정되어서 이곳저곳 다니고 동네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동네 구분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알마그로 Almagro 라는 곳인데 딱 여기 중산층의 동네라고 한다. 외국인이 많은 팔레르모나 레콜레타보다 아르헨티노 현지인이 많다고 했는데 살아보니 과연 그런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밤이나 아침 새벽 일찍 다닐 일이 몇 번 있어서 걸어다녀 보았는데 밝은 곳으로만 다니면 사람들이 있고 개 산책 시키는 사람들이 있어 치안이 불안하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다. (그래도 여기서 40년 넘게 사신 학교 이사장님 말로는 안전하다고는 하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10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택시타고 다니라고 하셨다.)





집 근처 공원인 빠르께 센테나리오 옆에 있는 대만식 버블티집. 나는 버블티를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 마차라떼가 맛있어서 종종 간다.
역시 빠르께 센테나리오 근처 빵집 코뺑. 그냥 밥처럼 먹는 일반 빵이 아니라, 프랑스식 파티쉐리 빵집이라 크로와상이나 다른 디저트류가 맛있다. 
빠르께 센테나리오. 아름다운 공원이지만 주말엔 정말 도떼기 시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주말에는 그쪽으로 잘 안가려고 한다.
주멀에 공원 입구에서는 반려동물을 입양하자는 캠페인을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길고양이나 길개를 거의 못본 걸 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책임감이 강한것 같다. 길거리에 개똥은 많지만..
근래에 찾은 코리엔테스 길 우리 동네 피자 맛집! 내가 시킨건 나폴리탄 스타일 포르시온(한 조각씩 파는거) 이었는데 한입 물자마자 반했다. 조만간 또 갈 예정.


각각 새벽, 낮, 저녁에 찍은 집 밖 베란다 풍경. 이 집에서 살면서 가장 감사한 것은 이 풍경이다. 







2. 

사람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힙하거나 예쁜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팔레르모에 있는 어느 맛집. 아르헨티나 스타일은 양이 매우 많다 ^^.... 나름 대식가인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점 중 하나.


동료 선생님들과 찾은 곳들. 예쁜 풍경은 덤.
집에서 30분 정도 버스 타고 나가야하는 북쪽의 잘사는 동네 벨그라노. 바리오 치노(중국 동네)가 있다. 보통 차이나타운은 시내 안 상업지구에 있는데 여긴 좀 이례적인 곳.


팔레르모에 있는 오리가미(종이접기) 전문 소품점. 일본계 주인과 그의 친절한 동료가 지키는 가게다. 예쁜 색종이들을 보고 눈 돌아가던 곳. 크리스마스 쯤에 다시 털어야지.






3.

그렇게 부지런하게 직장 생활과 개인 생활 등 모든 내 할 일을 해내가는 도중에 알게 된 나의 친구 브라이언.

사실 알게 된 계기는 유럽 축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단체 관람이었다. 

MeetUp 모임과 연계된 BA Nomad Group 이라는 왓츠앱 단체 챗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축구 단관을 모 펍에서 진행한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달려나갔다.

 

결승전은 리버풀 대 레알마드리드. 식민지였던 탓인지 스페인의 영향이 강한 나라라 여기 아르헨티노나 다른 남미 출신들은 레알을 응원하고 있었고, 영국에서 공부했고 리버풀로 축구 여행을 간 적도 있는,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잉글놈들 응원해야지' 라는 심정으로 보고 있던 나를 포함한 나머지 다른 유럽권 외국인들은 리버풀을 응원하고 있었다.


단관 주최자가 빌려온 스크린이 자꾸 끊겨서 허허 하던 중에 옆에서 안타까워 하던 미국 청년과 말을 섞게 되었다. 사실 축구 경기 단관이다보니 이날 구성원의 8할은 남자였고, 여자라고 해봐야 나처럼 축구를 좋아해서 보러온 팬이라기보다는 자기들 썸남, 혹은 애인을 따라와서 대충 보고 지루해하던 여자들 정도 밖에 없었는데 나름 경기를 분석하면서 보고 있던 동양인 여자가 눈에 띄었는지 그 친구와 본격적인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이름은 브라이언.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는 공대남 출신 앱 개발자 친구였다. 본사는 맨해튼 쪽에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달간 출장을 온 친구였는데 막상 멀리 출장을 와도 아무것도 못하고 집과 집 근처만 왔다갔다 거리면서 일에 치여 살다가(...) 자기도 축구를 좋아해서 이번 단관 소식을 듣고 보러 왔단다. 서로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축구 이야기와 신변 잡기를 주고 받으면서 인스타를 교환했다. 


아, 내가 본 이 날 경기는 겉으로 드러난 경기력만 보면 리버풀이 레알을 압도했으나, 결국 축구는 경기력이 아무리 좋아도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리버풀의 파상공세를 존버정신으로 막아내고 단 한번 온 찬스를 제대로 살려서 골을 넣은 레알 마드리드가 1:0으로 이겼다. (그리고 골키퍼인 쿠르투아가 제대로 미쳤었다. 뭔 저런 것도 다막나 싶을 정도로;;) 리버풀은 너무 아쉽게 됐고, 역시 존버는 승리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프로젝터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자꾸 끊기던 스크린. 하지만 그 덕에 브라이언과 말을 섞게 되었다.



브라이언은 팔레르모 에어비앤비에 살고 있었고, 그 덕에 팔레르모에서 자주 만났다. 내 집 동네도 팔레르모에서 택시로 10분,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던 탓인지도.  

원래 더 일찍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얘가 코로나에 걸려버리는 바람에(...) 10일을 겨우겨우 버티고 나은 다음에나 볼 수 있었다. 


브라이언 픽이었던 타코집. 맛있었다. 우리가 스페인어를 아예 못하는 줄 알고 영어로 긴장하며 말 걸었던 종업원들이 귀여웠다.
팔레르모 밤산책. 주말 빼면 의외로 크게 바쁘지 않은 곳이 팔레르모라고 생각한다.
브라이언이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갔던 칵테일바! 조용조용하니 분위기가 미친 바라 다른 테이블은 전부 커플이었는데 우리는 열올리며 한국 미국 정치 이야기하고 있었네(...)
맛있는 칵테일들. 브라이언이 이번에는 개미처럼 일만 하느라 제대로 여행을 즐기기위해 다시 휴가철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여행하기로 약속했다. 


영국 런던 랩실이나 미국 실리콘 밸리쪽에서 흔하게 봄직한(...) 공대남 개발자의 전형적인 외모를 가진 브라이언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상식이 풍부했으며 나와 공통점도 많고 대화가 잘 통하는 미국인이었다. 예를 들어서 그의 누나가 일하고 복귀하는 직장이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라고 말했을 때,  - 이쪽 일을 잘 모르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매우 생소할 - 나는 내 대학원 교수님이 오랜 동안 거기에서 자문 역할이셨고, 대학원 동기의 직장이었어서 바로 알아듣고 대답해서 브라이언이 굉장히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브라이언의 전 직장 상사는 한국인이었는데 - "술 마시자, 노래방 가자, 킹크랩 낚시 가자"를 미국인인 브라이언에게 시전했던 전형적인 한국식 아저씨였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맨해튼 코리아 타운에 꽤 갔었다고... 다만 낚시는 따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말을 들어보니 상사와의 기억이 꽤나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다. 만날 때마다 목이 따가울 정도로 떠들다가 왔다.   



브라이언이 아르헨티나에서 굉장한 고기 맛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가본 곳. 맛있었지만 뭔가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유명한 고기 레스토랑을 예약해보기로 했다. 
약 10여일 뒤, 겨우 예약 성공해서 간 유명 레스토랑. ^^..... 나는 몰랐어. 여기가 그렇게 까지 포션이 많은 데인줄. 


저 토마호크의 양이 보이는가. 저 뼈는 훌륭한 둔기 무기가 될 것 같았다(...) 결국 반도 못먹고 싸왔다. 브라이언 왈 자기는 이정도면 당분간 고기 안 찾아도 될 것 같다고...


여튼 덕분에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고기도 원없이 실컷 먹어보았다...

나중에 스페인어 과외 선생님인 교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저 레스토랑은 원래 포션이 엄청 많아서 여럿이 가서 나눠먹는게 국룰이라는데 우리는 몰랐지 그걸 ㅠㅠㅠㅠㅠㅠ 다음에는 제대로 즐기고 싶다. 


 

여튼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브라이언은 출장에서 복귀하고 헤어질 시간!

짧은 기간동안 나름 알차게 만나고 대화하고 즐겁게 놀았던 친구로서 여기에서 파는 알파호르 세트를 작별 선물로 준비했다. 브라이언은 감격한듯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뭘 이런걸 주냐며, - 누나들하고 나눠먹으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 나의 선물은 공유하지 않고 자기가 다 먹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 메시지로 결국 자기 부모님들과 나눠먹었다는 답이 왔다 ㅋㅋㅋㅋ)


브라이언이 가보고 싶다고 해서 뉴욕 컨셉인 Uptown Bar에 갔는데, 내가 넌 내일 뉴욕에 돌아갈 거면서 왜 뉴욕 컨셉인 바에 굳이 오냐고 물었다 ㅋㅋㅋㅋㅋ
유명한 Uptown Bar. 아르헨티노들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이 보였지만 여튼 컨셉은 좋았다. 둘다 피곤해서 많은 말은 못했지만 그래도 이별주로는 딱 좋았다. 하하! 또 보자구.


헤어지기 직전 마지막에 자기는 필요 없을 거 같다며 남은 페소(꽤나 큰 돈이었다)를 나에게 모두 주고 갔다. 아 이 착한 녀석!!! ㅠㅠ 내가 너무 고마워서 꼭 갚겠다고, 근데 같은 가치(지금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는 아닐 거라고 하니까 막 웃는다. 다음에 달러로 갚던지 해야지.


자기는 이곳에 다시 꼭 올 거라며, 내가 여름에는 파타고니아에 펭귄을 보러 가 있을 생각이라니까 함께 여행 일정을 맞춰보자는데 나야 키도 덩치도 큰 브라이언이 여행 보디가드로(...) 딱이니 마음도 든든하고 좋지. 나도 언제든 아르헨티나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다. 이렇게 짧고 강렬한 만남도 잠시 안녕!






4.

구에메스 장군 서거일, 국기의 날 휴일이 껴있는 6월의 긴 주말 휴일을 맞아 로사리오를 갔다.

로사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로 4시간~5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 곳으로 현재의 아르헨티나 국기를 만든 곳으로 유명하고, 또 나에게는 축구계의 살아있는 전설 리오넬 메시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로사리오는 강변이 아름다운 유유자적한 도시래서 강변 낀 도시를 사랑하는(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강변은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처럼 보인다...) 나로서는 반길 만한 소식이었고, 메시네 동네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아, 누가 생선요리를 꼭 먹어보라고 해서 그것도 먹어볼 참이었다.


며칠 전부터 집 주변 마트도 이렇게 꾸몄다. 우리나라도 삼일절이나 광복절 쯤에 마트나 관공서를 국기 모양으로 꾸미면 재밌고 의미있을 것 같은데.
국기 기념관 근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오신 건지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꽤 보였다. 
로사리오의 날씨는 정말 추웠지만 또 하늘은 놀랍도록 아름다워서, 왜 아르헨티나 국기 색깔을 이렇게 정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국기 기념관 근처에서 멀지않은 아파트에 그려진 커다란 메시의 벽화. 보고 흥분한 나머지 계단을 못보고 넘어져서 발목을 세게 삐끗하고 말았다. 지금도 한번씩 치료받는 중 ㅠㅠ 쳇.
낚시하는 어르신들과 꼬마. 다양한 빛깔을 보여주는 하늘.
강변을 산책하는 가족들, 마떼를 마시며 왁자지껄하게 웃는 사람들. 오리고 싶은 순간들.
강변 근처에는 로사리오 상인들이 손수 만들거나 근처 자신의 가게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파는 메르까도 아르떼사날(수공예시장)이 있다. 마지막 빨간 모자를 사왔다.
로사리오를 머물던 내내 갔던 카페. 그라피티 아티스트 바스키아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계속 갔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맛집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기 보다는, 한번 갔을 때 마음에 들면 거길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마지막엔 나를 알아보는 직원들과 친해졌다. 
다시 찾은 기념관과 기념관 주변. 저녁에는 공식행사도 한다는데 정말이지 기온도 크게 떨어지고 바람도 매섭게 부는 등 추워서 야외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메시 말고도 로사리오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에는 에르네스토 게바라. 즉 체 게바라가 있다.

그가 쿠바에서 혁명에 가담하게 된 남미 여행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며 내가 페루에서 안데스 원주민들을 보며 느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고 엉엉 울면서 그가 맛본 좌절감과 분노에 깊이 공감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 고향에 적어도 그를 기리는 것 하나 정도는 남아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 도시에서 그를 지워버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그의 흔적은 정말 찾기가 어려웠다.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한 것으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아르헨티노라기보다는 쿠바노처럼 취급하는 기조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마치 모든 기록에서 지워지는 기록 말살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그는 여기에 없었다. 


그의 생가는 부동산에서 판매 광고를 내걸었고, 그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던 공원에도 그의 얼굴은 지워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마음 아픈 현실.



대신 메시의 흔적은 로사리오 곳곳에 위력을 과시했다.

메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르셀로나로 건너가기 전까지 살았던 생가와 동네 투어를 갔다.

로사리오 시내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동네에 있었는데, 일단 동네가 찾아가기 어렵고(버스 타고도 편도로 40분 넘게 걸렸으니 걸어서 왕복하기는 조금 무리다), 골목길이 헷갈려서 외국인 여자에게 혼자 가는거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 투어를 신청했고, 투어에서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메시와 메시 가족을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굉장히 겸손하고 수줍음 많지만 공 앞에서는 승부욕 강한 소년이었다고.
2018년 월드컵을 기념해서 동네의 벽화를 아름답게 만든 남미 출신의 다양한 아티스트들.
"나에게 더 흥미로운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는 메시의 말이 다시금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메시가 다녔던 초등학교. 메시 선배님의 벽화가 멋지게 그려져 있다. 
가장 최근에 작업을 마친 벽화. 메시가 직접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간 곳이라고 한다. 구글에 찾으니까 바로 나옴; 


나중에 알았는데 6월 24일이 메시 생일이었어서 (가족들은 바르셀로나에 살지만 아직도 다른 메시네 친척들은 로사리오에 산다고 했다) 메시가 친인척들을 보기 위해 로사리오와 이 동네에 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ㅋㅋㅋㅋㅋ 축구로서 세상에서 멋진 일을 해낸 나의 동갑친구, 생일 축하해.



원래는 메시 박물관을 세우려고 했으나, 본인과 가족들이 반대해서 차선책으로 세운 것이 로사리오 출신 모든 분야의 스포츠인들을 기리는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게 더 좋은 듯?
제일 오른쪽은 예전 토트넘 감독이자 파리 생제르망 감독이었던 포체티노의 유스 시절 등록증과 유니폼이다 ㅋㅋㅋㅋㅋ
밤에 돌아오니 멋지게 아르헨티나 국기 모양으로 파란불이 들어와있었다. 아르헨티나 국기색은 나라와 정말 잘 어울린다.



어제 먹으려다 문 여는 시간(아르헨 레스토랑은 보통 저녁 8시는 되어야 슬슬 열기 시작한다...)을 맞출 수가 없어서 실패한 생선구이집에 시간 맞춰서 10분 전에 갔다. 식당은 분위기 좋고 멋졌는데, 알고보니 옛날에 기차역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레스토랑으로 재개장 한 곳이라고 한다.



바로 옆 강에서 잡았다는 생선구이. 살이 보드랍고 맛있었지만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ㅠㅠ 역시 나와 민물고기는 안 맞는 것 같다.  여기서는 그냥 소고기나 실컷 먹는 것으로.


우연히 강변 근처를 지나다가 알게 된 반고흐 전시전을 또 갔다.

로사리오 시청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내가 부에노스에서 갔던 전시전(이건 프랑스에서 가져온 전시)과는 다르단다. 로사리오에서 하는 건 이탈리아에서 주관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작품 구성이나 전시가 되려 부에노스아이레스보다 훨씬 좋았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더 여유있게 관람이 가능했고.
똑같은 스크린 형식이지만 30분 텀에 음악과 작품만 반복해서 나와서 좀 성의없다고 느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시에 비해 훨씬 퀄리티가 높았다. 
반 고흐의 생애와 명언들을 모두 나레이터(스페인식 스페인어)로 정리해서 들려주면서 깊이있는 울림을 이끌어낸 전시라고 생각한다. 앉아서 보는데만 한 시간 걸림;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던 고흐의 해바라기들. 찬란한 금빛이 감동을 주었다.


강렬한 로사리오의 햇볕. 사람들은 며칠만에 풀린 날씨에 따사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추천할 만한 버스. 남미에서는 같은 노선이라도 회사가 다르면 버스 컨디션 등이 다른데 이 버스는 출발시간 도착시간도 정확했고 컨디션도 좋았다. 다음에 갈 일 있음 이걸 타시라.  



여기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개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1층에 예약된 자리를 가고 있는데, 어떤 미친 중년 여자가 나한테 정확하게 "왜 저 더러운 중국년이 내 뒤에 타는 거야"라고 스페인어로 중얼거렸다. 


내가 스페인어를 못 알아 듣는 줄 알고 함부로 지껄인 모양인데, 여기에서 한바탕 싸울까 하다가 어차피 4-5시간은 같은 버스 공간 안에서 저 무식한 년하고 싸워봐야 피곤한 일만 생길 것 같아서 일단은 참았다. 

그러고도 자기 딴에는 나에게 분이 안풀렸는지 나를 향해 노려보며 뒤돌아보길래 나 역시 있는 힘껏 째려보았더니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앞만 계속 보더라. 내가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다 이해한 걸 이제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찌질한 인간. 


스페인어 과외 선생님 말로는 저런 놈들은 어차피 교육도 못받고 무식한 인간이라 무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데, 과연 무시하는 것만이 답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살면서 정도가 심하든, 정도가 약하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별의별 인종차별을 당해보았다. 

런던에서는 백인 친구랑 지나가던 중  갑자기 나에게만 꽥 소리를 지른 정신병자 같은 놈들도 있었고(친구가 어안이 벙벙한 나를 대신해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버스에서 에어드롭으로 나에게 자기 거시기 사진을 보낸 미친 놈도 있었다. 페루에서도 치니따(중국여자란 뜻인데 동양인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하면서 캣콜링 한 아저씨들 그룹도 있었지. 동양인이면서 여자로 산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며, 멘탈이 단단해지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일들도 한번씩 예기치 않게 생긴다.  


여튼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종류의 직접적인 인종차별은 처음 겪어봐서 당황스러웠고, 아직도 화가 난다. 더 이상의 심한 일은 겪지 않길 바라며, 이 나라를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5.

동료 선생님의 자녀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만년필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 동료 선생님이 신기해서 집에 말을 했더니, 자녀들도 "나도 만년필을 한번 써보고 싶어요"라고 했단다. 이 말을 다시 나에게 전달해준 것을 계기로 한번 함께 만년필을 사러 가기로 했다. 모든 시험이 끝난 이후에 시간이 된다고 해서 날을 맞춰서 나갔다. 


플로리다 거리에 있는 파시피코 쇼핑몰. 내부가 아름다워서 한번씩 오면 기분 좋은 곳. 
쇼핑의 결과물. 만년필 초보가 쓰기에는 라미가 색깔이 다양하고 가볍게 쓰기 좋아서 추천하는 편. 사실 여기 아르헨티나에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ㅠㅠ 그나마 라미가 수입이 잘 됨.
애들을 먹이러 들린, 예전에도 온 적 있는 맛있는 스페인식 레스토랑. 
먹으면서 아주 많은 대화를 했다. 결국 마무리는 우리 집에서 함 ㅋㅋㅋㅋㅋ 간식 먹으면서 내 만년필 전부 꺼내서 시필해보고 난리도 아니었다. 


자녀들이 매우 순한 성격이기도 하고, 나 역시 청소년들과 잘 노는 편이어서 그런가 아이들이 아빠의 동료 선생님이라기보다는 편한 누나 언니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단다. 원래는 서로 만년필만 사고 바이바이할 생각이었겠으나 어째 재미있었는지 다음에 다시 또 볼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6. 

이사로 인해 서로 동네 주민이 된 또 다른 동료 선생님과 만나서 카바시토 근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결혼하시고 이후에 남편분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건너오시게 된 케이스다.


선생님 덕에 재미있는 인생 이야기도 듣고(정말, 인생이라는 건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는 것 같다! 누가 둘다 여기까지 올 거라 생각했겠어) 분위기가 멋진 펍도 알게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과 밖에서 보기도 하고, 집으로 초청해 해먹이기도 하고.



동네 이웃 주민이 된 선생님은 큰 차가 있으셔서 장 볼때 나를 불러주시기도 했는데, 혼자 살면서 스스로를 해먹이기위해 까리또(바퀴달린 캐리어형 장바구니)를 질질 끌며 힘겹게 장을 보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다. 아직 비자가 나오지 않아(...) 은행이 없고 정기 결제가 힘들어 물 같은거 배달 시키기도 힘든 상태라 선생님 찬스를 이용해서 물이나 액체류를 대량으로 샀다. 감사해요!!!






7.

예쁜 서점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예쁜 서점들이 많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아직 전자책이 보편화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나씩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스타에도 소개되고 있는 분위기 좋은 서점. 주인들은 무뚝뚝하지만 친절하다.
서점 안에는 멋진 카페가 있다. 


잘 읽지는 못하겠지만 책을 한 권 샀다.

파견이 끝날 때쯤에는 보르헤스 시집 정도는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실력이 되기를.

(보르헤스의 현학적인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8.  

모두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해먹고 잘 살고 있다.

요리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몸하나 잘 건사할 정도로는 스스로 해먹고 있으니 이정도면 훌륭한 건가? 요리는 일단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귀찮고 시간이 없으면 사 먹지만, 되도록 집에서 해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한식 스타일로 해먹기. 부에노스에는 교민이 많이 사는 편이라 한식 재료들도 많이 들어와있다.
파스타 생면을 파는 곳을 발견해서 종종 사서 해먹고 있다. 파스타 생면은 처음 먹어보는 것 같은데 진짜 입안에서 녹는 맛이다.
중간에 있는 수프는 아르헨티나 수프인 뿌체로. 재료는 슈퍼에서도 팔아서 그대로 넣고 오래 끓이면 되는데 초리소를 먼저 구워서 다함께 끓이니 더 맛이 깊어지는 듯하다.



다만 원래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여기와서 양이 엄청 늘어버린 건 사실인 것 같다... 이게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움직여서 그런건지(실제로 하루에 만보 이상은 기본으로 걷는다) 아니면 아르헨티나 기준이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르헨티나에 허락된 기간 동안만 사니까 무조건 "아르헨티나식(고기 위주, 밀가루 위주, 단 거 많이)으로 먹어야지 손해를 안본다!"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매끼를 아르헨티나식으로 먹는다면 분명 대사증후군이나 고지혈증에 걸리고 말 것이다. 내가 어디 미인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외모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니 극한의 다이어트 같은 건 필요없겠지만 건강에 신경쓸 나이 ㅠㅠ 이기는 하니까, 양 조절이 힘들다면 되도록 건강하게 먹을 수 있게 식단 조절이라도 해야겠다. 






9.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내가 살았던 여타 다른 곳보다 훨씬, 한국인이 살기에 난이도가 쉬운 편인 것 같다.

여기에 20년 넘게 오래 살아도 스페인어를 잘 못하시는 분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한국어로 적힌 한국 동네 길 이름과 침 맞으러 다니는 한의원;;; 
친구들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줬더니 거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인지 서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김밥과 분식들도 있다. 그리고 강냉이까지 ㅋㅋㅋㅋㅋㅋ 여기 말로는 뚜뚜까라고 한다.






10.

요즘 친해진 동료 선생님 덕에 재즈와 탱고를 접목한 공연도 보고, 여기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친구도 소개 받았다.

선생님은 탱고의 매력에 푹 빠져서 여기에 오신 지 어언 9년 쯤 되신 분으로 여기에 대해 많이 아시고, 친구들도 많이 있으셔서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선생님 말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공연장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다 가보진 못하겠지만 시간을 내어서 재즈 공연도 보고 싶고, 콘서트도 보고 싶고, 많은 문화생활을 체험하고 싶다.

다만 여기는 공연이 열시 열한시 넘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정말 애매한데, 실제로 선생님도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려서 공연을 놓친 적이 부지기수라고 하신다 ㅠㅠ 이런!


재즈 베이스지만 탱고 음악을 접목한 신선한 시선.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은 히로코라는 친구는 일본인 기타리스트인데, 어릴 때부터 혼자 음악을 배우기 위해 홈스테이를 하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오간 당찬 친구다. 지금은 올해 1월부터 정식 음악학교 학생이 되어 열심히 배우고 있단다. 나이는 나의 제자뻘이지만(...) 용기와 실행력, 강단이 대단한 친구다. 한국음식이나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도 간단히 구사할 수 있었다. 겨울 방학 때 한 번 만나면 좋겠다. 






11.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날씨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면 딱 영국의 그것이나(...), 대신 해가 내리쬐는 날에는 적당히 차가운 공기가 코를 스치면서 폐까지 시원한 느낌을 준다. 맑은 하늘의 이곳 겨울 날씨가 좋다. 


퇴근길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있는 차카부코 공원.
퇴근하고 걷는 코리엔테스 길에서 감탄하며 찍은 하늘 사진. 실제의 아름다움을 반도 못담아 낸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일상 속 풍경.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도, 보름달 아래에 놓인 부에노스아이레스도 모두 아름답다.




안온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그러다가도 한번씩 격랑이 불어오는, 안심할 수 없는 이곳의 일상.

그렇기에 항상 정신차리고 살아야하는데 이게 참 피곤한 일인지라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게다가 올해는 겨울이 두 번. 현재 두 번째 겨울을 나는 중이라 그런지 마치 게임으로 치면 hp가 무지막지하게 깎인 상황인데 나 자신이 짬을 내어 힐링 포션을 잘 찾아서 스스로를 채워나가야 하겠지.






12.

며칠 뒤 겨울방학 기간에는 아르헨 북부 후후이 주와 살타 주로 여행을 간다.

예전에 페루에서 살던 시절, 아름답기로 유명한 살타를 가보고 싶었는데 그 때는 시간상의 제약으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아쉬워하기만 하고 그대로 넘겼는데, 내가 여길 진짜로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이렇게 된 거 아예 시간을 길게 투자해서 북부를 제대로 보고 오기로 했다.


옛날에 살던 곳과 많이 닮은 곳.

지금은 내가 페루 욕을 많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 "까도 내가 깐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감정은 약간 애증이다.

애증은 향수와 그리움이 되어가는데, 이번 아르헨 북부 여행은 나의 그리움을 잘 달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외로웠지만 나를 성장시켰던.

지금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때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매듭짓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돋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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