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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Sep 26. 2022

Diario BA #4 어메이징 부에노스아이레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어메이징한 사건 사고는 매일 일어난다




0.

후술할 사건 때문에 타임라인이 살짝 뒤죽박죽.




1.

웬지 저번에도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 그동안 브런치 플랫폼에 글이 뜸했던 이유는 요즘 말로 갓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중에는 주로 스페인어 공부와 (현재 11월 델레 B1 시험 준비중) 골프 레슨, 그리고 기타 개인적인 할 일들을 해나가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 개인의 내밀한 기록은 손글씨로 다이어리에 잘 적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오픈된 온라인 상에 글로 남길만한 특별한 것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은 발생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 일상은 나름 안온하게 흘러가고 있었으므로. 



1~2주일에 한번 여기서 만난 친구들을 초청해서 한국음식 먹이기.


요즘 빠져있는 순두부 열라면 요리와 한가위 추석 음식 사다 먹기. 한인마트에 감사하게도 명절음식들을 팔았다. 맛은 별로 없었지만, 구색을 갖추고 추석 분위기를 내기에는 충분했다
집 근처에서 찍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추석날밤. 한국과는 이역만리 떨어져있는 남반구에서 크고 노란 달을 보며 감사해했던 날.
9월 중순부터는 해도 더 길어지고 본격적인 봄 분위기가 났다. 꽃집에서 프리지아를 팔기 시작해서 일주일에 한두번 꽃을 사다가 집에 꽂아두고 있다.  
역시 집 근처, 학교 출근길에 마주하며 찍은 풍경들. 주변 가로수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는 것을 보니 봄이 성큼 왔다. 게다가 아직은 차가운 바람과 꽃샘추위까지. 완벽한 9월의 봄
친구집 근처에서 봄꽃들을 잔뜩 팔았다. 사람들은 들뜬 표정으로 꽃을 사갔고,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여 꽃을 샀다. 
결국 꽃 한다발을 사고 꽃향기를 맡으며 친구집 근처를 함께 산책하다가 마주한 풍경.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도 갔다. 줄을 뺑뺑이 돌리고 입구도 여러개라 헷갈리는 등 운영이 형편없어 힘들었지만 콘서트 자체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집주인네 가족의 초청으로 함께 축구장에 축구보러 갔다. 여기저기서 엄마 욕과 여자형제 욕(...) 등 각종 욕들이 난무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2.

하지만 여전히 "어메이징"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자잘한 사건 사고들은 일어나고 있었으니.

일요일 이른 아침 옆집 이웃 아주머니의 실수로 토스트기에 빵을 너무 많이 구워서 연기가 나는 바람에 아파트 전체에 알람이 울려서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아주머니.... 그래 거기까진 괜찮은데 문제는 소방관이 가면서 전기를 다 끊어놓고 가서 복구에 시간이 좀 걸렸다. 하하하. 아침부터 잠옷바람으로 4시간 가량 밖에 있었더니 너무 피곤했던 날. 







그리고 이미 전적이 몇번 있기에 스스로 걱정하고 일상에서 늘 조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폰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골프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날. 

92번을 타고 다시 예정된 탱고 레슨 장소로 이동하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휴대폰으로 노선을 확인한 다음 지퍼가 달린 호주머니에 폰을 넣고 지퍼를 반 이상 잠궈서 도착한 버스에 올라 탔다. 

그런데 내 앞에 서있던 한 네다섯은 되어보이는 무리가 갑자기 우르르 올라탔다가 다시 자기가 탈 버스가 아니라며 또 갑자기 수베 카드를 안찍고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싸했다.


그리고 버스 출입문이 닫힌 다음 연동된 갤럭시 핏 시계의 블루투스가 끊어졌다는 기호가 떴고, 내 호주머니에 있던 폰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아씨!@#$#%%^&^



생각해보면 매우 고전적인 수법인데도 불구하고 당하다니 -_-

무려 수면가스로 마취를 당해 호스텔에서 모든 걸 털린 아일랜드에서의 경험 이후로 내가 또 이런 괴상한 일들을 당하겠나 싶었다만 제기랄. 


그래도 이런 일을 대비해서 원드라이브도 결제했고 업로드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폰보다는 들어있는 사진이나 영상 같은 데이터를 잃어버리는 게 더 슬프지 않은가) 지금 시점에서 확인해보니 통째로 사라진 폴더도 보이고 생각보다 엉망이다.


아 더이상 폰 정리하고 사진 다시 정리할 할맘 없어 나.






3. 

털리고 집에 어떤 정신으로 왔는지 기억도 안나고 살짝 나사가 빠져있긴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혹시 들고온 중고폰 덕에 멘탈 붕괴 탈출은 빠르게 했으나 역시 나의 부주의로 잃어버린 추억과 사진들이 뼈아파서 오늘에서야 홀로 타임을 가지며 속상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럴 때 다시 아이폰으로 옮길까 고민도 하는 중이라 다시 복잡하게 이것저것 아이클라우드도 정리 중인데, 이것도 아이클라우드에 동영상은 2천개 가량에 사진만 4만 5천장이라(나는 아이폰을 오래 썼다가 통화녹음 기능과 삼페, 사진 정리 등의 이유 때문에 갤럭시로 넘어왔기 때문에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가 많다).... 토나온다 진심. 아이폰의 치명적인 단점들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점 중 하나가 아이클라우드는 솔직히 거지같고 사진정리가 진짜 힘들다는 것(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정리를 그냥 안하거나, 필요하면 다른 앱을 이용해서 정리한다)인데 이걸 언제 또 하나씩 정리하고 앉아있냐는 말이냐 ㅠㅠㅠㅠ 이래저래 기운 빠지는 나날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으니 오늘 날 잡아서 조금씩이라도 해보는데, 빠르지 않은 인터넷으로 하나씩 클라우드 정리를 하고 있자니 오류도 자꾸 나고 죽을 맛이다. 당분간은 도난 사건의 후폭풍이 지속될 듯 하다.



마차 라떼를 테이크아웃하러 잠시 나간 오후. 봄이 오고 있는데 나는 무슨 몇 달 뒤에나 아르헨티나 신고식을 거하게 치뤘구먼.



다시는 찾을 수 없을 소중한 사진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만 불쑥 쌍욕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ㅆㅂ 훔쳐간 놈들 다 망해라. 






4.

얼마 전 토요학교 교장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과 따로 자리를 마련해 함께 수다 타임을 떤 적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내 영국 유학시절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을 맺은 친구의 어머님이시기도 한데, 강인하고 현명하시며 경험이 많은 부분이 내가 배울 부분이라 생각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했다. 어떤 면에서는 겁이 많고, 어떤 면에서는 또 겁이 없는 편인 내가 가고 싶어하는 험하디 험한 버킷리스트 여행지들도 이미 다 몸소 다녀오시고... 이야기를 들을 수록 이분은 내가 정말 멋지고 존경하는 그 친구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여과없이 그대로 느껴졌다.


대화 중간에 교장 선생님께서 굉장히 통찰력 있는 질문을 해주셨다.

"선생님은 이 나라에 지원해서 쟁쟁한 경쟁력을 가지고 뽑혀서 왔잖아요. 이 나라에 오기 전에 마음 속에 세우고 온 목표가 뭐였어요?"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이곳에서의 삶을 살아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여기 지원한 목표와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사실 평생 내가 지니고 있을 화두인 "개발도상국", "교육", "불평등" 등을 조합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향후 박사 과정 주제를 찾으러 여기에 온 것이었다. 혹은 사정상 박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름 평생 공부하고 천착할 거리를 찾기 위해 다시 남미를 찾은 것이었는데 토요 학교 선생님 덕분에 기억이 났다.


그렇게 말하니 교장 선생님은 대충 "문화 경험(내 문화경험이 작진 않다)"이나 "외국어 능력 향상(한국에서도 가능하다)" "외국 생활에 대한 기대(이미 해볼 만큼 해봤기에 처음부터 이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등을 예상하고 계셨다는 것 같은데 범상치 않은 나의 대답에 솔직히 놀랐다고 ㅋㅋㅋㅋㅋ 하셨다.

 

사실 이러한 목표들은 내 마음 속 깊이 간직만 하고, 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궁리만 하던 차였는데, 이제는 교장 선생님 말대로 생각만 가지고 있지 말고 실제로 내 생각들을 하나 둘 현실에서 반영하고 실행할 때가 온 것 같다.

우선은 11월 델레 시험에 무사히 합격을 하고 ㅠㅠ....!!!! B1은 따야 여기 생활에 큰 무리가 없고 뭘 지원하기도 쉬우니 이를 중점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여튼 정말, 감사합니다! 토요학교 교장선생님. 덕분에 길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아요. 



분위기 좋은 팔레르모의 바와 선물로 받은 예쁜 화분. 생명력이 강해서 어떻게 길러도 잘 자란다고 한다. 파견 끝나는 날까지 나도 이 달개비과 식물도 무사히 잘 살아남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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