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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숙 Oct 25. 2022

김선생님의 수상한 명리학

딸편 Vol.3

“엄마, 갑자기 웬 명리학 공부야?”

“니 아빠 때문에.”

난 황당해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니 아빠는 대체 뭔가 싶어서 공부할라 그런다. 왜!”

엄마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앙증맞은 책가방을 메고 평생교육원으로 떠났다.


시도 때도 없이 아웅다웅하는 두 분은, 믿을 수 없지만 7년을 연애했다. 어떻게 7년 동안 만나면서 서로를 이렇게나 모를 수가 있는지(혹은 외면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와 아빠는 정확히 모든 면에서 달랐다. 여간해선 화내는 법이 없고, 점잖고 조용한 엄마와 달리 아빠는 다혈질에 에너지 넘치고 활발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조용히 읽고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빠는 모임에 나가 떠들고 여행하는 것을 즐겼다. 훈육 스타일도 정반대였는데 엄마는 우리가 성실히 공부할 환경을 다져주셨지만, 아빠는 ‘놀 땐 놀아야 한다’며 우리를 데리고 놀러 나갔다.


대학교 CC였던 두 분은, 학창 시절도 극과 극이었다. 사 남매인 엄마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오 남매인 아빠는 넘치는 체력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아빠 친구분이 한 번은,

“너네 아빠, 자전거만 달랑 끌고 훌쩍 여행 가서 며칠 있다 오고 그랬다.”

며 아빠의 즉흥적이고 에너제틱한 기질을 증언하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아빠는 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


정반대의 모습이 연애할 때는 화수분 같은 매력이었겠지만, 결혼 생활에서는 제거해도 끝이 없는 지뢰 같은 것이었다. 아빠에게는 너무도 설레는 여행길이 엄마에게는 행군길이었고, 엄마에게는 평화로운 고요가 아빠에게는 고통이었다. 아빠는 여행에 불만 많은 엄마에게 서운했고, 엄마는 떠들기 좋아하는 아빠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두 분은 생각과 행동 모든 게 달랐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조용히’, ‘듣는’ 쪽인 엄마에게 응어리가 많이 생겼을 터였다. 어디 가서 절대 시댁, 남편 흉보는 법이 없는 엄마의 속이 썩을 대로 썩을 때쯤, 엄마의 눈에 들어온 건 명리학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뜯어고칠 수 없다면,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자’로 마음을 먹으신 것 같다. (불자 같은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실제 불교 신자이시다.)


그렇게 시작한 엄마의 명리학 공부는 홧김이 아니고, 수년간 이어졌다. 덩달아 관심이 생긴 나도 몇 번 엄마 책을 들춰봤는데 천간, 지지, 일주, 월주, 충(沖, 정반대 방위의 글자가 만나 서로 충돌하는 것)등 외울 것이 너무도 많았다. 여러 특질과 관계를 외우는 건 기본이요,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데 엄마에게는 곧잘 맞는 일이었다. 아빠도 처음에는 피식하더니 해가 거듭되자 진지하게 앉아 엄마의 풀이를 듣곤 했다.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엄마는 눈앞의 배우자, 자식들, 주변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비슷한 기질의 엄마와 언니, 정반대로 비슷한 기질의 나와 남동생. 그리고 아빠 사주를 얘기할 때면 엄마는 혀를 끌끌 차곤 했는데, 우리로써는 알 길이 없어 그 흉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듣다 보면 또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가끔은 사주로 위협도 하시며 예전보다는 덜 아웅다웅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제각기 다른 기질의 우리 다섯. 사주 속충(沖)과 합(合)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일 것이다. 앞으로도 긴 시간을 지난한 충(沖)과 합(合)속에 살아야 할 엄마. 다툼을 격파하지 않고 공부한 엄마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를 김선생님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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