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가 눈앞에 어른거려서 편지 써요.
명절 인사를 병원의 면회실에서 드린 것도 생경했지만 엄마와 이모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를 위해 목청 높여 말씀하시는 모습이, 속상함과 애틋함 그 언저리의 꾹 누른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저는 처음 뵀지만 매주 찾아뵙는 엄마와 이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큰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도,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셨을 때도, 저는 엄마를 위로하는 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제게 엄마였던 엄마도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인데. 상처받고 슬프고 한없이 약해질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삼촌의 비보를 듣고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엉엉 우는 엄마 앞에서, 기억이 희미해진 할머니께 여러 번 되묻는 엄마 옆에서, 저는 그저 엄마의 무너진 세상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참 못난 딸입니다. 저는 엄마를 마음 깊이 사랑하면서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가 않았어요.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자식 셋을 길러낸 주부. 남편에게 순종적인 아내. 큰 오빠에게 꼬박 존댓말을 하던 여동생. 병환이 깊어진 할머니를 도맡아 돌본 딸인 엄마를. 엄마가 답답한 저는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싫으면 화내도 된다고 쉽게 말하곤 했지만 엄마의 시대에, 딸로 여동생으로 아내로 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어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기로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고, 필요할 땐 언성을 높이기도 싸우기도 해요. 경제 활동을 하며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구속받진 않고, 남자들과 좋은 친구가 되지만 의존적인 관계는 아녜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엄마처럼 살지 않기로 해서 얻어낸 삶이 아니라 엄마처럼 살아서 가능한 일이었더라고요.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성실함과 인내심은 제 자신감과 평정심이 되었고,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정 많은 모습은 제가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되었어요. 떳떳하고 자신 있어서 말하고 행동할 때 거침이 없었고, 잔정이 많아서인지 제 생각을 나누고 함께 웃고 울고 말해줄 지인들이 감사하게도 많아요.
갈등이 생길 때마다 엄마는 묵묵히 들어주고, 참아주고, 넘어가 주는 쪽이셨어요. 저는 지금까지도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대신 저는 말하고 쓰려합니다. 이미 엄마는 저를 ‘김작가’로 호명하시지만, 아직 제대로 된 글 한편 보여드린 적 없는 철없는 딸이 언젠간 그럴싸한 이야기를 한 편 들려드릴게요. 엄마와 할머니와 저를 비롯한 여성들의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밥 사드리겠다고, 뭐 드시고 싶냐고 물으면 척척 말하는 아빠와 달리 그냥 밥이면 다 좋다고 말하는 엄마가 저는 여전히 짠하고, 답답하고, 미워요. 그리고 그 모든 짠함, 답답함, 미움을 응축한 불편한 감정이 영원히 지속돼도 좋을 만큼 엄마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