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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숙 Dec 05. 2022

직장인 김대리의 일일(一日)

딸편 Vol.4


  - 들었어? A 부장 이번에 희망퇴직금 9억 받았대.
  - B 부장이야말로 나갈 사람인데 꿋꿋이 버티네.

회사의 비상경영 선포 후 희망퇴직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인사발령문이 올라온 날, 회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잡설이 오갔다.

희망퇴직 조건이 좋았던 만큼 억 소리 나는 퇴직금에 탄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근속 연수 미달 또는 낮은 이직 가능성으로) 본인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며 한숨을 푹 쉬는 사람들. 탄성과 한숨이 뒤섞인 하루의 퇴근길, 내 머릿 속도 복잡해졌다.

직장인 마의 3, 6년을 꿋꿋이 견디고 내년이면 과장 승진 대상에 오를 연차. 회사 동료들과 두루두루 알고 지내고, 스페셜리스트의 길을 다지며 나름 퍼스널 브랜딩을 해왔다고 자부해왔지만 거센 폭풍을 관망하고 나니 '퇴직'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지난 7년은 공사다망했다. 일이 나를 압도한 날들도 있었고 그래서 번아웃으로 이어진 시기도 있었다. 성취감으로 피로를 애써 덮은 순간들이 있었고, 자존심에 상흔이 생겨도 멀리 있을 결과를 보며 좋게 포장하기도 했더랬다.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일로써 존재 가치를 확인받았던 예스럽고 묵묵한 노동자의 삶이었다. 그러나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시장의 평가는 냉철한 것. 내가 FA 시장에 오른 선수라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새로운 출발을 당당히 할 수 있을까?

한 직무로 7년간 일한 경력, 취미를 N잡으로 만든 프리랜서 활동. 그 어느 쪽도 홀로서기에 대한 확신을 주진 못했다. 애꿎은 링크드인 타임라인만 기웃거린 밤,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은 이다혜 작가의 <퇴근길의 마음> 문장들.

  - (p.171) 질투는 안전지대에 고여있으려는 내 욕망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 내가 '되고'싶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고, 존경하고, 나 자신을 바꾸고자 노력한다. 노력해도 정신 차려 보면 제자리로 돌아와 있곤 하지만, 시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변화를 겪는다. 내일의 나를 오늘의 내가 만나면 질투할 만한 인간이었으면 한다.

  - (p.195) 원하는 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일을 근심하지 말고, 오래 달릴 일을 마음에 두자.

"사람은 진구렁에 발을 딛고 있어도 눈으로는 별을 만져야 하는 거야." 좋아하는 소설 속 대사와 오버랩되는 문장들이다. 우린 프로페셔널한 노동자들이므로 진구렁에 빠져있는 오늘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나가겠지만, 에너지와 감정의 비중을 좀 더 발전적인 곳에 두면 어떨까.

노동자의 일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면, 1) 해야 할 일 2) 잘하는 일 3)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덕업일치는 모든 이의 숙원이겠지만 높은 확률로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터다.(그리고 조금 낮은 확률로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고 아주 희박한 확률로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을 것이다.)

시답잖은 잔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적당히 힘을 빼고 하고 싶은 일과 가까워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할 때, 기회도 찾아온다고 믿는다. 그 길이 조직 내 성공이든, 이직이든, 창업이든 당신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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