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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숙 Aug 20. 2020

해병대 바지를 입은 미필

아빠 편 vol.2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 집에 들어서자마자 새빨간 물체가 내 시선을 강탈했다.


‘나! 해!병!대! 반바지!!!’

온몸으로 소리를 지르는 바로 그 반바지. 왼 다리에는 [해병대] 세 글자와 마크가 황금빛 실로 수 놓인, 흐드러진 소재의 빨간 반바지였다.


휴가 나온 남동생이 그 바지를 입고 있으면 꼭 엉덩이를 한 대씩 걷어차 주었는데, 싸구려 소재라 발등이 착 감기는 맛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거슬리던 빨간 팬티는(남동생은 ‘각개 바지’라고 알려줬지만 아무리 봐도 내 눈엔 사각팬티였다) 남동생이 전역한 이후 볼 일이 없었는데, 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인가.


환갑이 넘은 아빠가 입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네 엄마들이 ‘2002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는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엄마가 2002년 월드컵 티를 그다음 월드컵까지 입고, 옷이 해어지면 마룻바닥 걸레로 사용해 또 한 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위대한 절약 정신을 보여준 반면 아빠는 달랐다. 그 옷을 입은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해병대 1171기인 남동생을 누구보다 대견해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 아니라 군 미필자였다.


아빠가 남동생에게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을 때 뒷목을 잡고 거품을 문건 동생이 아닌 나였다. 녀석은 오히려 덤덤했다. 그게 아빠에게 효도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는지, 아니면 백을 써서 순탄한 근무지로 발령 내주겠다는 아빠의 허풍을 순진하게 믿은 건지는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동생은 해병대 중에서도 난이도 상, 연평도에서 혹독한 군 생활을 치러야 했다.


“아니, 남동생 해병대 자원입대했다고 하면 다 아빠가 해병대 출신이냐고 물어봐. 이게 뭔 코미디여, 진짜.”

남동생 면회를 가려면 배까지 타야 했는데, 뱃멀미가 심한 나는 참다못해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연평도로 향한다는 사실에 설레는 아빠의 표정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복장이 터져 속으로 포효했던 것 같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빠와 엄마는 군 입대를 앞두고 이별했다. 입대한 아빠를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내던 엄마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다. 누가 아빠를 어디서 봤다고. 다른 친구랑 놀고 있더라고. 알고 보니 입영통지서를 받고 작별을 고한 아빠는 신체검사에서 허리디스크를 판정받고 그대로 면제가 됐단다. 엄마한테는 너무 창피해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한 동안 숨어 다녔다고.

“와. 진짜 황당했겠네 엄마. 그런 아빠 뭐가 좋다고 결혼했어.”

면박을 주면 엄마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키가 작으니까 너네 키 커지라고 큰 사람이랑 했지.”(참고로 언니와 나는 160 초반, 남동생은 170 초반이다)


옛날 사람 치고 훤칠한 키(175)에 집안 사정도 나쁘지 않았던 아빠에게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군대였다. 남자 무리에서 으레 나오기 마련인 ‘군대 토크’에서 허풍 떨기 좋아하는 아빠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숙원을 아들이 풀어 준 것이었다. 귀신 잡는 해병, 해병 중에서도 연평도에 근무한 해병 타이틀로 아빠가 얼마나 떠들었을지 눈에 선하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아마 남동생은 바다 수영의 귀신이고, 실제 귀신도 네댓 명 만났을 것이다.


나는 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 대신에 무반응을 택했다(바지를 보고 씩 웃은 건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그 바지는 원래 아빠 것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당신도 바지를 채 갈아입지 못해 머쓱하게 타이밍을 보고 있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여기서 두 번째 웃음을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귀신 잡는 해병은 아니더라도 아내 앞에, 자식들 앞에 폼 잡고 살아온 우리 아빠. 그 폼이 망가지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여유 있게 웃었다.


“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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