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영 May 24. 2021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직원이그만둔다고말할 때...

 

장애아동 대안학교인 슈타이너학교를 운영했던 초기에는 퇴사하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때는 학급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교과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늘어나곤 했으니 말이다.

비영리 민간단체 캠프힐마을로 운영되었던 그 시절에도 직원들은 월급이 작아서 그만둔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진 못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는 정말 그런 것으로 딱 믿는다. 어느 날 결혼을 이유로, 건강상의 이유로 기타 등등의 이유로 그만둔다는 직원들의 수가 많아지자 모 학부모님과 답답함을 토로하며 술 한잔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그분은 나의 멍청함을 한마디로 지적했다.

"선생님.... 월급이 적으니 그만두는 거죠. 돈 많이 준다고 해봐요. 그만두나...ㅉㅉ"

이러셨다.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분은 나를 아주 순진한 맹탕 교장으로 취급하는 것을 더 이상 바꾸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순간순간 '정말 그런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고, 그러나 그것이 정말 그만두는 이유인지는 묻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할 뿐이다.


  비영리 민간단체의 후원금으로 운영되어 가난했던 시절을 벗어나 정부의 보조금으로 직원 월급이 보존되는 지금의 도토리 하우스 상황에서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직원이 생겼다. 사실 그 직원은 일도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잘하는 친구라 먼 미래에는 충분히 관리자로 키울 수 있겠다 싶은 기대도 있었다. 무엇보다 빌리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좋았기에...

그런데 지난 토요일 퇴근하며 문을 두드린다. 

"똑똑!!!!!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순간 느낌이 쐐~~ 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다. 평소에 조용히, 내게 드릴 말씀이라는 것이 신상에 관한 것을 제외하면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까지 직원들은 사표를 내기 전에 나를 찾아와 꼭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만둔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앞으로 펼쳐진 미래, 그녀가 없는 하우스를 떠올리며 심란 모드가 되었다. 얼떨결에 알았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주말과 휴일을 그냥 멍 때리며 왔다 갔다 요리도 하고, 괜히 냉장고도 몇 번을 열어보고, 집중해서 보지 않는 드라마도 껴 놓고, 음악도 들었다가 끄고, 마치 과한 움직임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부산하게 시간을 보냈다.


  아주 젊었던 20대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1980년 가을... 여상을 졸업하고 그 당시에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신의 직장, 산업은행의 여행원이 되어 대입 준비와 직장생활을 병행했던 시기다. 월급은 너무 작고 가족 부양의 비용은 커져만 갔을 시기에 2배 이상의 월급을 준다는 선배 언니의 추천으로 종합금융으로 이전을 결심하고 사표를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은행 동기 중에 가장 먼저 그만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입행 동기들은 당시 서대문의 아주 큰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탈리아노'에 모여 송별회를 해 주었다. 그때 동기들이 내게 한마디를 부탁했고 동기들에게 했던 말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디서 뭔 책을 읽었는지 기억할 수도 없지만, 그 나이에 그런 확신이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좀 멋있었다.


"저는 살면서 딱 두 가지를 확신하며 살아요. 언젠가는 내가 죽는다는 것과, 언젠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을요.. 다만  제가 여러분들보다 먼저 이곳을 떠나는 것뿐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언젠가는 저 처럼 떠나는 사람이 될 터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지!! 슈타이너 학교도, 도토리 하우스도 제 발로 찾아와 한 때 동료라 믿고 생활했던, 평생 함께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드릴 말씀이 있어요'로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어요.. 를 말하는 것은 그냥 일상일 텐데.. 그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섭섭해 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드릴 말씀이 퇴사한다는 말이고, 우리를 떠나는 것이고, 내가 잘해 주었든 섭섭하게 해 주었든 나를 떠난다는 말이니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다.

이래서 경영자들은 가족경영을 말하나? 최소한 가족들은 갑자기 예고 없이 그만둔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양평에 자리 잡고 대안학교인 슈타이너 학교를 운영하고 장애인 거주공동체인 캠프힐도토리하우스까지 대략 15년 세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이런저런  개별적인 사연과 사건을 남기고.. 

겉으로는 구구절절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진 않지만, 누군가 떠난다는 것에 대하여 나이 들수록 더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날,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는 말에 떠나는 사람을 한 번쯤 머무르라고 잡지 않는다며 비난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동네 강아지도 매일 지나다니며 보면 정들고, 피어난 꽃에 대한 기억도 한순간 잊을 수 없는데, 하물며 함께 동거 동락하며 보낸 시간과 애틋함을 생각하면 그리 매몰찰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인연은 여기 까지겠다. 사람의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고 했으니 더 좋은 사람이 찾아와 우리 빌리져들과 남은 코워커들에게 행복한 에너지를 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에서 우리를 지켜 볼 그를 생각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