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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영 Aug 09. 2021

운이 좋다는 것은..

공모사업 탈락해서얻게 된휴식을 예찬하며..


  운이 좋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고 운이 나쁘다는 것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원하는 데로 나오지 않은 것이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휴가도 반납하고 준비했던 모 사업제안에 대한 발표를 마쳤는데 우리 기관이 탈락했다. 상대방이 이 사업을 우리보다 더 잘할 것이라 생각한 심사위원들의 결과겠지만 발표 당시 짧게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정말 공정했을까? 혹시 지인 찬스.. 이런 거는 없었을까? 심사위원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상대는 들어오는 모든 분들께 눈인사를 하던 모습이 맘에도 걸리고... 그동안 지역 활동을 충실히 하지 않은 것도 맘에 걸리고... 

그러나 정말 잠깐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바로  1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에게  일 좀 그만하고 쉬라는 신의 계시인가??? 그렇겠네... 이런..^^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내가 요즘 일을 두려워하거나 힘들어 하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다.. 이유가 뭘까를 순간순간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쉼'이 필요하고 재충전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생에서 순간순간 자신의 상태를 질문하는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오늘 너의 영혼은 만족스러웠냐고..".


  반년 만에 모처럼 서울에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 처음 양평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의 머리꼭지는 늘 서울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고 보니 서울생활이 가물거린다. 중앙선을 타고 회기역에서 갈아탄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출구에 펼쳐진 이국적인 그림 같은 모습에 완젼 깜놀이었다. 내리자마자 추억의 '종로서적' 출입구와 연결된 곳이었다. 정말 촌년처럼 두리번거리며 입구를 찾아 들어가 지난번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책 리스트에서 빠졌던 한지혜의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사들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다른 나라다. 외국여행객처럼 표지판을 한참 살피고 나서야 그 옛날 중학생 시절 통학을 위해 오갔던 종각 화신백화점과 안국동 사거리 방향,  그때의 그림이 머릿속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6개월 만에 서울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ㅠ.ㅠ


  오랜만에 서울 종로 냄새(?)를 맡았다. 그게 뭔지를 묻는 동창들에게 "그런 게 있단다... 나만의..." 이러며 그 냄새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한계를 느꼈다. 치열하게 살았던 20대 초반의 기억, 그리고 그때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맡았던 냄새의 기억이다. 


  소주 한잔 마신 취기에 흔들리는 용문행 중앙선 전철 안... 마스크를 한 사람들의 좀비 같은 모습 사이에 앉아  막 사든 따끈한 책을 펼치니 그곳에도 가난한 서울 변두리 골목에서의 추억을 담은 글이 펼쳐진다. 서울 그 동네 동네의 기억이 소환되는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자정이 넘어버렸다. 


  운이 좋은 사람의 내 버전은 좀 다르다. 그것은 내 인생의 행로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의 시점과 완급을 세상이 알아서 정해주고 나 역시 그 완급에 따라 묶고 풀고를 반복하게 하는 타이밍... 바로 그 타이밍의 일치라 생각한다. 돌아보니 그 타이밍이 내게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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