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불러온 혐오의 세상
한때는 '우한 폐렴'이라고도 불렸던 코로나 바이러스. 이 전염병의 위험도보다도 더 무서운 건 불신과 혐오의 전염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바이러스의 확산에만 집중했고, 함께 그것을 두려워하며 해결을 모색했다. 그러나 사태가 악화되고, 확진자가 늘어났다.
중국인들은 우한 시민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휴가를 나와서,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녀서, 아니 최초의 그 50대 남성은 박쥐를 왜 먹어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도 확진자가 생겼다. 한국인들은 중국인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조선족의 가게에는 발길이 끊겼다. 그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한국에 살았던 사람들임에도.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국적을 타고 전파된다는 듯, 그들을 외면했다.
일본 가이드로 일하다가 한국에 온 중국인 남성이 확진자가 되었다. 그 아내도 함께 확진자가 되었다. '중국'인 남성이라니. 그가 한국에서 확진자가 되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니.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격리됐고, 14살짜리 딸은 집에 홀로 남겨졌다. 딸이 머물 곳을 마련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사람들은 의아했다.
왜 중국인 딸의 거처까지 걱정해야 하는가. 한국인만 걱정하기도 바쁘지 않나. 내가 14살일 때는 혼자서 밥도 해 먹었는데.
그리고 혐오의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저 아빠는 증세가 있었음에도 병원을 늦게 갔어. 그리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 그건 잘못이야. 저 사람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졌으니, 할 말 없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한 지 1년 반이 된 지금, 결국 한국 또한 혐오의 표적이 되었다. 엄마는 코로나가 끝나도 당분간은 여행을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나야 여행 정도 못 가는 거지만, 유럽에 사는 한인들은 일상을 위협받는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하루하루가, 공포인 것이다.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한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혐오해야 할 대상은)
아시아가 아니라, 중국이야.'
요즘 <스위트투스>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보고 있다. 인상 깊은 부분이 있다. 드라마에서, 10년 전부터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이후부터 아이들이 반인반수(하이브리드)로 태어난다. 하이브리드 이전에 태어난 '마지막 인류'들은 하이브리드의 골수를 채취해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으려고 한다. 어린 하이브리드를 우리에 가두고, 가학적으로 실험하고, '사냥'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인간이란 결국 그런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이 눈앞에 닥치면 도덕을 잃는 존재. 아니, 도덕을 잃지 않았다고 합리화하고자 '도덕이 적용되지 않는 범주의 사람들(아시아인과 하이브리드 ㅡ 그러니까 뭔가 좀 다른, 소수자들)'을 만들어내고, 혐오하고, 이용하는 존재. 정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