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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c 06. 2021

제주생활백서

제주에서 건져낸 취향 : 노지(露地)

노지는 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을 일컫는 말로 나에게는 생소했던 단어로 제주에서 처음 접했다. 이번 해에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티빙의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나온 미지근한 소주를 미소라 일컫는 장면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제주에서 로컬들이 마시는 노지 소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상온에 보관하는 소주를 일컫는 노지 소주,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 겨울철에 수확되는 비타민C가 풍부한 노지 귤, 야영장이나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에서 캠핑을 하는 노지 캠핑 등이 내가 제주에서 자주 접했던 것 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귀포시는 예비 문화도시에 선정되어 서귀포시 105개 마을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노지 문화"라는 개념으로 풀어 가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삶이 묻어나는 '노지(露地)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도시를 조성하고 관련 산업으로 연계·확산해 지역 문화가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되고, 문화도시가 고유한 문화적 브랜드로 창출될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이다.(출처 : 서귀포시 공식 블로그) 서귀포에 살면서 만나는 제주의 모습은 꽤 흥미로워서 '노지 문화 탐험대'라는 이름의 지역주민 문화 소모임 모집도 관심이 갔다. 서귀포 105개 마을의 노지 문화를 기반으로 숲, 바다, 오름, 하천, 용천수, 돌, 나무, 감귤, 신화, 해녀 등 다양한 노지 문화 자원을 소재로 해서 이루어지고 탐구 활동비도 지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늦게 알게 돼서 참여하지는 못했다.


서귀포의 노지 문화 일부를 생활 속에서 가까이하고 체득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날씨가 좋으면 숲이나 바다, 하천을 탐방하러 떠나거나 발견한 장소에선 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낸다. 해녀처럼 바다에서 수확을 하지는 않지만 스노클링을 통해 바다를 탐험하며 집 근처 용수천과 하천에서 물놀이를 통해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린다. 제주 곳곳 나만의 노지를 발견하고 지인들과 함께 공유하며 즐기는 시간들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내 취향이 된 동네 노지 

- 법환포구에서 아뜰리에 안 카페 : 이사 와서 매일같이 산책하는 코스로 범섬을 바라보며 바다를 걸으며 달이 뜨면 볼 수 있는 윤슬이 아름답다. 중간중간 수 있는 돌의자에서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맥주 한 캔 즐기기 좋고, 아뜰리에 카페 잔디밭도 노지 캠(숙박이 아닌 해를 피하는 텐트나 타프)을 즐기기 좋다.

- 제주판 모세의 기적 '서건도' :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한 달에 10차례에 걸쳐 앞바다가 갈라지는 서건도는 일명 써근섬으로 불린다. 이 바다 갈라짐 현상은 보름이나 그믐에 규모가 특히 크며 서건도를 둘러보고 근처 올레요 7 쉼터에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하기 좋다.

- 강정항에서 월평포구 : 강정항의 해오름 노을길 산책로는 바다 한가운데를 걷는 느낌이다. 강정항에서 월평포구까지 이어지는 올레길 7코스 길을 따라 바다를 두고 걷거나 드라이브가 가능한데 날씨가 좋은 날엔 훌륭한 일몰을 만날 수 있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바다 쪽으로 더 걸어가면 주상절리 풍경이 근사하고 월평포구 쪽에 바다를 가까이 내려갈 수도 있는 길이 있다. 이곳은 프리 다이빙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그만큼 스노클링 하기에 너무 좋다.

- 중문단지 축구장에서 대포 주상절리 : 올레길 8코스의 일부로 중문 단지 축구장 앞에는 데크가 있어서 쉬어가기 좋고, 축구장을 지나 대포 연대 바다에서는 스노클링 하기가 좋다. 서귀포는 돌이 많아서 그런지 다양한 바다 생태계를 볼 수 있는데 주의할 것은 해녀분들의 삶의 터전에서 채취는 삼가야 한다. 그리고 대포 주상절리까지 걷는 산책코스는 이국적인 야자수와 멋진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 무더운 여름을 날리기 좋은 하천과 용천수 : 용천수가 솟는 법환포구와 논짓물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지 자연 수영장이다. 강정천과 속골에서는 발을 담그며 여름철 마을 청년회에서 운영하는 백숙을 먹을 수 있고, 강정천과 중문의 엉덩물 계곡, 고냉이소는 물이 깊지 않아서 물놀이하며 더위를 날리기 좋다. 주변에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하천들이 다양하게 존재해서 숨겨진 비경을 갖춘 노지 하천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과 생태천 물놀이장 :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은 산책하기 좋고  특히 봄에 벚꽃이 피어서 운치 있다. 여름엔 마을의 물놀이장에서 바닷물이나 용천수, 생수천을 이용해서 노지 수영장이 운영되는데 예래생태공원 근처에 생수천 생태문화공원 물놀이장이 있다.

 

지금 사는 곳인 법환동을 위주로 적어 보았을 뿐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노지들과 발견할 수 있는 문화가 많다. 주로 여름에 즐기기 좋은 곳들이 많은데 바람이 센 제주에서 겨울은 주로 집에서 따뜻하게 보내는 편이기 때문이다. 제주는 정말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것들이 숨겨진 보물섬 같다. 제주에서 발견하는 노지 그곳에서 생겨나는 자연 그대로의 삶과 문화는 어느새 나의 취향이 되었다. 붐비는 관광지에서 벗어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보물 같은 노지를 만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제주의 삶에 스며들어 볼 수 있다. 취향을 넘어 내가 사는 제주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자연환경에서 빚어낸 내 삶의 문화로 소중히 지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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