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c 08. 2021

제주생활백서

취향이라는 섬

취향이라는 단어를 나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엔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한 기억이 없다. 취미라는 단어가 더 익숙했는데 학교생활기록이나 취업 이력서 등 나를 알리는 서류에 취미라는 작은 칸이 항상 따라다녀서 일 것이다. 나에게 취미는 대여가 가능한 독서가 유일했지만 영화나 음악 감상 등의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단어들도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했었다. 빈칸으로 두기엔 가난함이 드러나는 것 같고, 뭔가 그럴싸한 취미를 적어 과시하고 싶었지만 특별한 취미는 경제적 능력을 요구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적었던 시절이었다. 


2010년 MBC에서 방영한 '개인의 취향'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취향이라는 단어가 내 삶으로 처음 들어왔고 제주에 살게 되면서 취향은 다채로운 색으로 발견되고 구체화되었다. 하고 싶은 마음의 방향이라는 취향은 취미의 전 단계를 포함해서 넓은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는 이력서의 빈칸처럼 채우지 못하면 초라해 보이고 구체적인 단어로 정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취미라면 좋아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접근이 가볍고 좀 더 긴 문장으로 담아낼 수 있는 취향은 단어 자체에서 향기로운 기분이 든다. 


제주도라는 섬에서 가족이나 지인 없이 살아가는 춥고 외로웠던 환경은 스스로 취향을 찾고 키우고 구체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취향은 나를 고립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삶에 에너지를 가져다줬다.

아무도 없는 집을 지켜내야 하는 시간이 오면 틈틈이 유튜브를 통해 코바늘이나 마크라메 등의 공예를 배워 취향을 만들어갔다. 손을 분주히 움직이면 마음이 안정되고 잡다한 생각이 사라졌다. 분주한 시간을 통해 결과물이 생겼고 잉여 생산물은 프리마켓으로 나가는 선순환이 되기도 했다.

 

어릴 적 나는 다독이 독서의 정답인 것처럼 소화해 내지도 못하는 책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으며 취미라 여겼으나 허세였다. 제주에서 책을 가까이 접하고 하나의 책을 꼭꼭 씹고 삼켜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정확히 짚어 주는 글과 문장들을 자주 만나며 나는 독서의 기쁨을 누렸고 취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들을 필사하며 수집하고 꺼내보는 즐거움은 나를 다독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 줬다. 수집한 문장들은 근사하고 아름답게 소중한 보물처럼 내 삶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답게 사는 법을 몰라 뒤척이던 나는 글을 통해 사는 법을 배우고 나를 발견해 나갔다. 나는 내가 모은 문장처럼 멋진 문장이 내 글에도 발견되길 바라며 내 삶을 기록했고 독서모임을 통해 타인과 취향을 공유하며 독서의 세계를 넓혀 나갔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와 코로나는 내 취향의 길도 빛나게 해 줬다. 이미 제주에서 비자발적 자가격리를 자주 해왔던 나를 비롯해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집콕 생활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코로나는 취향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새롭고 다양한 취향을 소개해주었고 제주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취향들의 경제적 진입 장벽을 낮춰주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나아가 취향은 변화하고 확장되어 생산적인 활동도 되고 타인과 공유하는 대화와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다. SNS를 통해 알게 되어 제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위드살롱'이라는 소셜 모임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대화를 통해 나만의 세계를 탐험하고, 타인의 세계를 여행한다. 안녕하세요 이야기가 여행이 되는 공간 위드살롱입니다. 좋은 대화가 온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한 사람의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를 돌아보는 질문에 대답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자신의 세계가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위드살롱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툴을 제공하고, 좋은 대화를 나눌 다양한 사람을 연결합니다. 대화가 존재하는 모든 상황에서 좋은 대화를 위한 설루션을 제공합니다.  출처 : 위드살롱 홈페이지


대화를 통한 소셜 모임에 경제적 가치를 두고 소비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제주에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지 않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기회는 내가 노력하면 주어졌기에 굳이 대화에 값을 지불해서 내 삶을 나눠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컸다. 5명 이내의 그룹 단위로 모인 사람들이 미리 선택한 한 가지 주제에 관한 공통 질문들을 접속한 앱을 통해 함께 보면서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대화만 나누는 방식이었다. 대화에서 상대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서로에 대한 정보는 없다. 어쩌면 제주라는 낯선 여행지에서 다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이 대화모임의 가장 큰 장점 같았다.


깊이 있는 다양한 질문에 대답하며 취향의 공감을 주고받고 공유했다. 제주에도 타인과 취향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소셜 모임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 대화를 통해 타인의 취향을 알아가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취향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자아찾기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마음의 방향을 아는 삶이 주는 행복과 만족감을 나는 취향을 통해 깨달았다. 앞으로도 내 삶에서 취향은 변화하고 계속될 것이다. 제주에서 시작됐지만 제주에서 끝나지 않을 취향이라는 나만의 섬을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부단히 가꾸어 나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생활백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