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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c 09. 2021

제주생활백서

섬것 : 살아보면 보이는 것들

제주의 문화는 6년이 넘게 겪고 있지만 매번 새롭고 낯설다. 내 입에서 육지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사용될 줄은 몰랐다. 처음 방문했던 안덕 오일장에서 나는 내가 육지 것임을 알았다. 뭍에서 자라 보통 장소를 가리킬 때 항상 지명을 사용해왔던 터라 제주 이외의 지역은 모두 육지라 일컫는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토박이이고 그 외는 모두 외지인이나 육지것이다. 육지사람이 아니고 육지 것이라니... 말속에 하대가 숨어있는 것만 같다. 오일장에서 어르신이 나에게 육지 것이라는 표현을 하신 이유는 내가 사투리로 이루어진 그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투리를 이해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어르신에게는 육지사람과 토박이를 가장 쉽게 나누는 일 일 것이다. 

제주 방언을 제대로 들으면 외국어처럼 들렸고 사납게 느껴졌다. 알고 보면 차가움 속에 대체적으로 귀여운 모양이 많았는데 바당, 봉봉, 아양, 겅, 멘도롱 등의 유독 'ㅇ'이 붙어 애교 있는 단어들과 ~봔, ~멘, ~씸, ~게 등의 짓궂은 줄임말에서 제주사투리가 가진 매력이 있다. 바람이 센 제주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생겨난 말줄임에 대한 이야기 등 자세히 알고 보면 제주의 문화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예쁜 구석들이 존재한다. 


명칭이나 사투리 외에도 제주에서 살다 보면 이방인의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차로 20분 거리는 굉장히 멀다고 느끼지만 소문만큼은 빠르고 가까운 제주는 가장 좁은 지역사회다. 귀에 닳도록 들어 본 텃세나 궨당(제주의 친인척) 문화는 육지것과 토박이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가족이나 친인척이 없는 제주에서 혼자 살다 보니 많은 사람과 잦은 맺음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의 인연이나 연애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어딘가 모르게 벽이 존재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육지 것인 나는 토박이에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으로 비쳤다. 제주에서 줄곧 자랐는데 한라산 조차 올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토박이는 육지 것에겐 답답했다. 자라고 난 환경의 차이로 치부하기에 제주도민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삶은 독특하다. 아마도 4.3 사건을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면 그들의 부정적인 정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 아픔에 대해 조금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20년을 보내고 타지에서 10년 보낸 나에게는 생소했던 제주만의 문화는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제주 음식에는 된장으로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다 먹었다고 생각되는 수박 껍질을 된장에 찍어 먹는 모습에서부터 오이냉국은 투명하고 새콤한 줄만 알았는데 된장이 들어가 구수해질 일인가, 물회는 무조건 빨간 맛인 줄로만 알았다까지 거센 바람과 척박한 제주에서 자라는 작물은 콩이 많았던 까닭에 된장으로 만드는 음식이 많다고 한다. 이 외에도 근고기, 자투리 고기, 멜젓, 육개장, 몸국 등 육지것에게는 새로운 음식들도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저마다 존재한다. 주의로 변화한 요즘 세상에서 중요한 주거문화도 육지사람에게는 생소한 부분이 많다.

 

[제주에 산다] 안거리 밖거리
제주도의 전통적인 주택 형식은 중앙에 마루, 양쪽에 안방과 작은방을 배치하는 일자형이다. 안방에 고팡(보관창고), 작은방에 부엌이 연결된다. 마당 사이로 마주 보고 같은 구조로 한 채를 더 지으면 안거리와 밖거리, 즉 두거리 집이 되고 ‘ㄷ’ 자로 모로 더 배치하면 모커리라 부른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가족들이 살고 모커리는 창고 또는 축사 등의 용도로 사용한다.
안거리는 부모 세대가 살고 밖거리는 자녀 세대가 살다 자녀가 혼인해 자식을 낳게 되는 때를 기점으로 부모가 밖거리로, 자식이 안거리로 들어간다. 밖거리 자식이 안거리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집안을 주도하는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집에 살지만 각 세대는 별개의 부엌과 장독대를 갖고 독립된 취사에 식사를 따로 한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분할된 경제 단위다.
박두호 전 언론인 [출처] 국민일보
 


외지인의 눈에는 제주스럽고 예쁜 돌집과 돌창고 그리고 태풍과 바람에도 끄떡없는 돌담 등의 제주 돌문화에는 제주사람들의 지혜와 역사,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에서 집을 구할 때 꼭 알아야 할 독특한 임대차 제도인 연세(세)는 월세를 일 년 치로 한꺼번에 내는 것인데 보통 한두 달치 정도가 빠진 금액으로 나온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이사 명절과 같은 신구간이 있다. 신구간에는 가전 세일도 이루어진다. 요즘은 외지인들이 많아져서 적용이 될까 싶지만 아직도 신구간에 매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육지 것이었던 나는 신구간이 아닐 때 이사해서 매물이 적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신구간(新舊間)은 제주도의 전통 풍습 중 하나로,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7-8일 동안 이어지는 이사나 집수리 등을 포함하는 정월 풍습이다. 이 시기에 이사나 집수리 등을 하는 이유는 이 시기에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속설이 전해져 예부터 제주에서는 이 기간에 집을 고치거나 이사하는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약 5000여 명에서 만 명가량이 이사를 하여 도민 중 약 15%가 이사를 한다. 제주도민들은 왜 이 기간에 이사를 했을까. 그것은 농경사회이면서 따뜻한 기후 영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사회에서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立春)이고 농한기에 해당한다. 또한 따뜻하기 직전 세균 번식이 정지되는 기온(5°C 이하)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사하거나 집이나 변소를 개량해야 세균 감염 등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손이 한가할 때 집수리도 하고 이사도 하여야 바쁜 농사철에 농사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풍습은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많이 누그러진 추세이다. [출처] 위키백과


보통 육지에서 오는 분들이 제주에서 집을 구한다고 하면 한 달이나 연세, 전세의 형태로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살아봐야 알게 되고 생소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되고 반짝이는 구석들이 제주에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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