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로된 기업들의 남성 중심 구조에 대하여 by.이비
최근 연달아 발생한 기업 내 성폭행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합니다. 한샘 사건의 발단은 피해자가 본인이 경험한 피해를 네이트 판에 게시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폭로된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몰래카메라 사건으로 시작된 성범죄 피해 사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강간 미수와 실제 강간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사건의 전개는 이렇습니다.
⓵피해자 A(이하 A)는 힘들게 입사한 대기업 한샘에서 몰래카메라 사건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모양에 무마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또한, 어렵게 입사한 회사이니만큼 문제가 있는 신입사원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신고를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경찰에 신고하였고 이 과정에서 교육 담당자 B(이하 B)가 A를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⓶A는 자신을 도와준 B를 신뢰하게 되었고 심리적으로 많은 의지를 한 것 같습니다. 둘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는 A와 B 사이 모종의 애착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는 B를 강간 사건의 가해자로 신고하게 됩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B는 A와의 술자리 이후 밤이 늦었으니 위험하다고 자고 가라며 숙박업소 대금을 결제합니다. A는 여자 친구가 있는 B에게 의심받고 싶지 않다며 거절합니다. 이후 몇 차례의 거절(*이 부분에 대해선 추가로 언급하겠습니다.)이 이어졌으나 B는 A를 강간하였습니다. B는 A의 옷을 벗겨 던져버렸고 그중 일부는 매트리스 사이에 끼워놓기까지 했습니다. A는 다음날 이 사건을 신고하였습니다.
⓷A는 사건과 관련해 법무팀 변호사와 만나게 됩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사팀이 개입하게 됩니다. 인사 담당자는 진술서를 읽어보더니 A에게 “B가 A 씨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자가 흥분을 하면 윤활액이 나와 삽입이 쉬워진다. A 씨의 몸은 이미 좋다는 신호로 B를 받아들인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것인지는 눈이 건조해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보신 분들이라면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또한, 회사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에 관해 설명하며 결과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해고되었다는 일화를 전해줍니다. 피해자의 신고를 회유하며 얼굴을 안 보고 이야기하니 불편하다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것을 권유합니다. A는 부산으로 가 인사담당자와 만났고 다시 강간 피해를 겪을 뻔합니다. 인사담당자를 뿌리치고 나온 A는 인사담당자에게 이런 카카오톡을 받았습니다. “기차표랑 밥값이 필요했으면 그냥 카드 주고 말았을걸.”피해자는 사건⓷이 발생한 그다음 주에 풍기문란으로 징계를 받았으며 6개월간 10%의 감봉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피해자가 네이트 판에 올린 게시글을 확인하자마자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한샘 측에서는 가해자의 반박문과 A와 B가 나눈 카카오톡의 내용을 공개했으며 네티즌들은 앞서 언급한 *몇 차례의 거절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A는 B에게 호감이 있었고 술자리를 가지자고 제안했으며 모텔까지 따라갔으므로 강간이 성립되지 않는다. 대기업의 자본력을 이용해 꽃뱀 행세를 하려는 것은 아니냐.
이 사건에서 우리는 ‘남성 중심 기업 시스템’이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1)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기업 시스템에서는 피해자인 ‘여성’이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꽃뱀’ 같은 혐의로부터 결백함을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죠. 성관계를 ‘거절’하면 ‘강간’이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이 사회 모두가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직 먼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강간이 발생할 당시에는‘거절’했으나 사건 전후로 보낸 카카오톡이 피해자의 발목을 계속해서 잡고 있습니다. 강간을 당한 후에 보낸 친절한 메시지들이‘강간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라는 것이 일각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면식범에 의한 강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샘 사건의 피해자가 보인 반응은 일반적인 피해자의 반응과 일치합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강간당한 사실 자체를 인식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피해 사실을 타인이 알아챌까 봐 두려워합니다. *2) 심각한 성적 피해를 당한 이후 피해자의 상태는 ‘피해 사실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는 분명히 피해 사실을 인지했으며, 다음 날 바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한 후 검진까지 받았습니다. 또한, 피해자는 성폭행 사건에 대해 한 진술이 번복되었다는 점을 지적받습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압력 속에서 계속해서 똑같은 진술을 일관성 있게 지켜나가리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피해자가 한 폭로가 ‘네이트 판’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했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회사에 신고하면 풍기문란을 명목으로 월급 삭감과 같은 징계를 받습니다. 국가에 신고한다면 어떨까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2년도부터 2016년도에 신고된 ‘성희롱 문제제기 불이익 조치’ 중 기소된 사건은 단 2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이 47.3%나 되지만 기소율 7.7%에 그치는 심각한 통계입니다.
최근 한 신문사는 “한샘의 배신, 남녀 급여격차로 예견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시했습니다. 한샘은 여성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기업이지만, 회사를 구성하는 여성 직원의 권익을 철저히 무시했음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요. 한샘 전체 직원 총 2689명 중 77.5%인 1859명이 남성으로 성비 구성에서부터 차별이 드러났으며,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관리·연구직의 경우 남성 1인당 평균 급여는 6535만 7944원이었지만 여성은 60.81%인 3974만 6028원에 그쳐 2500만 원에 가까운 차이가 있었습니다. *3) 이것은 한샘이 남성 중심적인 기업 및 조직 문화를 고수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한샘 사건 ⓵, ⓷번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었습니다. 사건⓵과 ⓷의 가해자 모두 해고되었으며, 사건⓵의 가해자는 고발되어 현재 수감 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한샘의 주가도 폭락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여성 소비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던 기업인만큼 불매의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한샘 피해자에 폭로에 이어 현대카드에서도 성범죄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게시글이 네이트 판에 게시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현재 사실무근의 사건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역고소당해 게시글을 차단된 상태입니다.
일부에서는 ‘꽃뱀’이라는 주장이 사실화된 것처럼 사건 해결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인 기업 문화가 퍼져 있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피해자’의 이름을 갖고 등장하는 진짜 ‘꽃뱀’은 얼마나 될까요? 사건⓵에서의 불법 피해촬영물이 연달아 발생한 사건⓶와 ⓷의 도구로 쓰임으로써 성범죄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입니다. 이렇듯 디지털 성폭력은 단순히 피해영상물 촬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포, 협박, 유통, 소비 사이버 공간 내 성적 괴롭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번 사건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히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 한국여성민우회 트위터 참고.
*2) 로빈 월쇼, 한국성폭력상담소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2015,「그건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일다.
*3) 이수영, 2017,「[기자수첩]한샘의배신, 남녀 급여격차로 예견됐다」, 프라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