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판 피해자 프레임에 대하여_by이비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도래한 후, 인터넷 공간의 플랫폼이 확장되며 콘텐츠들이 무분별하게 생산·유통되고 있습니다.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일반인들의 알몸 사진 및 영상을 유포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고, 최근 이를 처벌할 법률을 마련해 달라는 청원 서명이 십만을 넘겼습니다. 청원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 역시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러한 피해 사건은 위와 같은 몇몇 사이트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닙니다. 위의 사이트처럼 아는 사람 얼굴에 타인의 알몸을 합성하는‘지인 능욕’은 사이버성폭력의 수많은 갈래 중 한 꼭지일 뿐입니다. 일반인이 실제로 촬영된 수많은 피해물이 p2p를 포함한 여타 평범한 사이트로도 쉽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단 유포가 되고 나면 재유포를 막기가 어렵습니다. 한사성에서도 피해자지원을 하고 있지만, 해외포르노사이트의 삭제지원의 경우 어려움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은 무한한 인터넷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될 피해촬영물을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은 ‘순결한 피해자’라는 프레임 입니다. 위에 첨부한 댓글에서 알 수 있듯 피해자들은“도대체 왜 동의한 것이냐?”혹은 “너도 원해서 촬영한 것 아니냐?”하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촬영’에 대한 동의가 ‘유포’에 대한 동의까지 포함한다고 잘못 생각하곤 합니다.‘몰래 촬영된 영상물’은 선심 써서 유포자를 ‘죽일 놈’이라고 생각해 줄 수 있으나, ‘합의에 따라 촬영된 영상물’은 유포가 되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의 바깥에 있는 피해자들은 자신을 향한 수많은 손가락질을 마주하게 됩니다.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피해물 속의 ‘나’로 나란 사람 판단하고, 피해를 인정해줄 만큼 충분히 피해자답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피해자를 향한 또 다른 가해로 작용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이러한 판단 방식은 50년대 말에 등장한 ‘피해학’이라는 분과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피해학’이 피해자를 트라우마로부터 ‘재활’시키기 위한 목적이 중심인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나, ‘피해학’의 초기형태는 ‘피해자가 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잠재적 피해자들이 바로 범죄의 대상이 됨을 밝힘’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범죄자의 동기와 특성을 파악하는 분야인 범죄학을 같은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적용시킨 것이 ‘피해학’이 된 셈입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편한 구조로 만들어진 학문으로부터 ‘피해학’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합의된 성관계 영상이 유포된 사실’에 대한 비난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욱 거세게 가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용기 내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많은 의심들입니다. “영상 속 인물이 본인이 맞습니까?”부터 시작해 “촬영에 동의하셨습니까?” 와 같은 질문들이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촬영에 동의한 피해자’라는 사실은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족쇄가 되어 돌아옵니다. 피해자들에게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해명에 대한 의무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4조 2항에서는 ‘상대방이 촬영 당시에는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여 촬영했다고 해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해냈다 하더라도 가해자들이 받게 되는 처벌은 피해에 비해 매우 가볍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가상의 세계’가 아닙니다. 온라인에서 발생한 피해 사실은 오프라인 생활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입힙니다. 이렇게 넓어진 세계에서 소비할 수 있는 컨텐츠 중 일부는 피해자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피해자들은 영원히 정신적인 피해에서 자유로워지기 힘듭니다.
‘촬영’에 동의했다는 것이 그것의 ‘유포’까지 동의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너도 원한 거 아니야?” 같은 질문들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받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_by이비
_edit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