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May 17. 2024

봄의 비읍


우리가 마신 커피의 이름은 봄의 비읍이었어 두 번째 잔은 여름의 이응이 되려나

나는 혼자 웃었고


여름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장마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낮게 울리는 장마의 목소리가

느리고 축축했지


붉은 벽돌이 골목의 풍경 같아


나 어렸을 땐 붉은 벽돌로 고추장을 만들었는데

단단한 돌로 벽돌을 살살 깨고는 물에 곱게 개서 풀에다 발라 김치도 만들고 찌개도 끓이고,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게 저거라서


쓸모없는 오희는 찬란히 아름답지

풀물이 든 돌멩이 위 소꿉의 흔적은 황홀하고


검붉게 젖어드는 적벽돌로 우리는 짧은 끝말잇기를 했던가

적벽돌 돌무덤 덤불 불난리 리셋

 

우와 너 대단하다 내가 아는 리는 리어카랑 리본밖에 없는데

산기슭 슭곰발 다 아는 이런 것 밖에 없는데


몸만 자라난 아이들이 창가에서 키득대는 동안

산미가 좋다던 장마는 에티오피아산 드립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적벽돌은 뭘 안다고 같이 쿡쿡대고 웃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그치지 않아도 좋다고 또다시 웃고


비 맞는 게 이상하게 좋아서 장마가 오면 몇 날며칠을 비를 맞고 젖은 몸을 씻고 빈 방에 누워 천장을 봤다는 너의 얘기에 장마는 옆에서 흐뭇하게 들으며 맞아, 그랬지 너 그랬지 대꾸를 했지


오래전 빈방의 고요한 습도가 금방이라도 다시 찾아올 것처럼

손톱 밑 파아랗게 풀물이 들어버릴 것처럼


그렇게

여름도 아닌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고







_


매거진의 이전글 생생 정보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