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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Oct 16. 2024

어떻게 살 것인가



1. 사반세기


사반세기라는 말이 있다. 1세기의 1/4, 이십오 년의 시간.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앞으로 사반세기는 훌쩍 더 살 텐데,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기야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쓰려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포스터가 떠올랐다. 파란 깃털과 대비되는 노란 눈의 왜가리와 검은 문장 하나.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당신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 어떻게 살 것인가


흑백요리사를 보며 요리도 예술이구나, 생각했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쓴다는 것, 그냥 쓰는 것도 아니고 손과 입과 다리를 바쳐서 온 신경을 쓴다는 것. 반복하고 집중해서 제대로 된 맛을 창조하기 위해 소스와 마음을 졸인다는 것. 자기가 만든 것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 안식이 되어 그 사람을 채운다는 것. 아니. 나는 그들이 재료를 대하는 태도, 손질하는 칼질에서부터 희열을 느꼈다. 숙련되고 정확한 동작의 미학. 마치 무대 위 진행되는 무용의 시연처럼 아름다운.

나는 지금 임윤찬이 연주한 쇼팽의 Etudes Op.25를 들으며 글을 적고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두 마디를 연습하는데 일곱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첫 음, 솔#이 자신의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다음의 음도 그다음의 음도 각각의 음과 연결이 자신의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다고, 그걸 넘어간다면 진정한 연습이 아닌 거라고. 물론 임윤찬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 하나를 해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와닿게 하기 위해 반복적인 변주를 하는 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나. 시도와 변형, 수고, 노력, 간절함, 만족, 기대, 초조함, 인내. 무수한 비물질과 물질 사이에서 자신의 것을 찾는 우리는. 찾기 위해 노력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습하는 우리는. 결코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étude는 습작 혹은 연습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그러나 쇼팽의 에튀드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듣는 사람이 있다. 식탁에 앉아 미슐랭 쓰리스타의 음식을 음미하듯 황홀해하는 사람들이.


3. 황홀


나는 요즘 황홀한 상태다. 꽤 좋은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사전의 1번 2번이 아닌 3번 4번의 의미이므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뜻은 이렇다.


    3.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움.      

    4.      흐릿하여 분명하지 아니함.      


한 마디로 '나도 몰라' 같은 형태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거의 두 달째.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에 가깝게 산다. 물론 겉으로는 차이가 없다. 잔물결 속 휘몰아치는 짙푸른 심해의 파도랄까. 입속 생채기랄까. 결국 깊은 곳의 일이다.


생각보다 이런 날이 길어지고 몇 가지 결심을 했다.

 하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약속 잡지 않기(사람과의 만남을 최소한으로)

 둘, 수영하기

 셋, 집을 정리하고 잘 먹고 잘 쉬기

 넷, 책 읽기.   

모두 내 안을 살펴보기 위한 처방이다. 길을 걸을 때 툭툭 떠오르는 생각을 씹어대거나 느리고 긴 수영을 할 때면 그 생각과 함께 풍덩, 물에 빠진다. 생각도 젖고 나도 젖고, 덤으로 샤워도 한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알아낸 것은 내가 지금 새로운 것을 위해 애를 쓰고 싶어 한다는 것, 어떤 이야기를, 세계를, 형태를 만들어 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본 히구치 유코의 그림처럼 독특하고 탐미적인 세계는 아니라도, 무려 노벨상을 받은 한강(만세!)의 연하고 미려한 글처럼은 아니라도, 그저 내 것을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 처음 글을 썼을 때의 진동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잘은 몰라도 사반세기가 넘도록 내가 지닐 마음이다.


노란 눈의 왜가리가 묻는다.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나는 대답한다.

일단은 쉬며 일본어나 프랑스어를 배워도 좋겠어.

내 이런 변덕과 충동도 분명 사반세기가 넘도록 그대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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