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꽤 좋네. 스콘 냄새가 나는 가게 앞에는 탁 트인 푸른 풀밭이, 풀숲 너머로는 시간과 계절에 맞춰 붉고 노랗게 익은 잎이 가득 보인다. 안에도 들어가 볼까. 언니와 나무로 된 문 앞을 지나려는데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은 작은 고양이가 그 앞에서 우리를 빤히 바라본다. 안녕, 침묵. 너 예쁘다, 침묵. 빛에 작아진 동공과 한껏 처진 눈. 고양이의 눈은 빛을 삼키는 투명한 구슬 같다. 쪼그려 앉아 조그마한 콧잔등을 쓰는데 어디서 미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야- 미야- 하는 낮은 울음의 반복. 고개를 돌리니 수풀 너머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미야-. 다시 한번 낮게 울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어딘가 불규칙적이고 기울어진 걸음.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지 절뚝이며 깡마른 몸을 우리에게 옮기는 것을 보던 언니가 말한다. 어머, 다리가 퉁퉁 부었네. 가까이에서 보니 뒷다리를 모두 다쳤는지 한쪽은 땅에 딛지도 못한 채 띄워 걷고 다른 쪽은 관절 위쪽 상처가 벌겋게 드러나있는 상태다. 상처에 말라붙은 빛바랜 낙엽들. 뼈의 굴곡이 다 드러나게 마른 녀석이 내 손등에 머리를 툭 댄다. 어쩌다 이렇게 다쳤니. 미간 사이를 살며시 쓸며 조심스레 언니의 얼굴을 살폈다. 십구 년을 함께 지내던 고양이가 죽고 나서 어떤 동물의 등도 쓸지 않던, 그러나 동네 길고양이에게 간식과 사료, 물을 꼬박꼬박 챙겨주던 언니였다. 인간보다 동물이 더 나아.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었다. 언니는 고개를 돌렸다. 고등어 태비 무늬의 고양이는 여전히 내 쪼그린 무릎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해. 미야- 미야- 고양이는 대답처럼 울었다. 어디선가 핑퐁처럼 말대답을 하는 고양이는 지능이 꽤 높은 편이라던 말이 기억났다. 나가자. 언니가 말했다. 잔디는 푸르렀지만, 분수에서는 물이 솟아오르고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지만, 어서 가자, 언니가 다시 말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누군가 불행하고 아픈 곳에서 어떻게 웃으며 머물 수 있겠어.
우리는 조금 시무룩해진 채로 바로 위쪽에 있는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얼마 전 땅에 떨어진 까치가 떠올랐다. 어쩌다가 그랬는지 날개가 부러져 날지도 못하고 배를 보이며 뒤집어진 채 숨만 가쁘게 쉬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을 동동대며 평소 새를 잘 알고 구조활동을 하던 친구에게 다친 새는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물었다. 친구는 자신도 그런 새를 많이 봤지만 그렇게 아픈 새를, 특히나 까치를 무료로 치료해 주는 곳이나 책임져주는 곳은 없다고, 내가 기르던 새가 아니면 쉽게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길 했다. 그렇게 약하고 다친 것들이 도태되는 것, 어쩌면 자연에서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고요.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몸이 뒤집혀 흰 배를 보이며 울지도 않고 부리를 벌리던, 꺾인 날개가 계속 떠올라 빠른 걸음으로 생각을 밀어냈다.
이 동네 고양이는 모두 다 친척뻘이에요. 두 번째로 들어간 카페 사장님의 말이다. 할머니 격의 암컷 고양이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그 근방에 터를 잡고 산다는 것이다. 그곳은 산 아래에 위치한 글램핑 스타일의 카페로 텐트와 노란빛의 알전구 아래 의자에 보란 듯이 늘어진 고양이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아닐까 그날도 입구 앞에 치즈 태비와 고등어 태비가 서로 몸을 포개 드러누워 있었다. 이런 곳이 마음이 편해. 행복하고 평온한 생명은 똑같이 그런 마음을 불러오니까. 우리는 야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닥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사장님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아래에 아픈 고양이 한 마리가 있던데, 아실까요? 사장님은 놀라며 그 아이를 어디서 봤냐고, 안 그래도 삼주 전에 다쳐서 산으로 갔는데 그 후에 깡마른 모습으로 내려와서 얼른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해도 좀처럼 잡히지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반색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데려올까요? 누군가 잠자코 있는 우리를 대신해 그 고양이에게 선의를 표하려고 한다. 차마 손을 뻗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그 고양이를 위해 시간을 쓰고 비용을 내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런 데가 장사가 잘돼야 한다고, 아니면 적어도 우리라도 여기서 돈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거기에 맞는 무언가가, 적어도 커피 몇 잔만큼의 대가라도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곧장 계산대로 가서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을 더 샀다. 데리고 가셔야 해요, 꼭 가시면 좋겠어요. 쓸데없는 말도 덧붙였다.
생각은 종잡을 수 없고 생각이 끌어내는 대화 또한 그렇다. 고양이, 까치, 겨울, 선의와 악의에 이은 무심, 어제 읽은 책, 또다시 고양이. 여러 말들이 오가던 끝에 다행이다, 다행이다 한참을 말하던 언니가 혹시 백린탄이 뭔지 아냐고 내게 물었다. 이름을 들어본 것 같지만 잘은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건 전쟁 때 쓰는 최악의 폭탄이라 했다. 사람의 몸에 들러붙어 전신이 다 탈 때까지 꺼지지 않는대. 빛나는 비처럼 쏟아져서 닿기만 해도 모든 걸 다 불태워버리는,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래. 언니는 말을 이었다. 이스라엘이 그걸 가자 지구에 뿌린 적이 있어.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을 언덕에서 지켜봤다는 거야. 웃거나 손뼉을 치면서, 망원경을 들고 그 잔혹한 광경을 오페라라도 보는 듯 관람했다는 거야. 그게 말이 되니?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어? 있지, 그건 악마야. 그냥 살아있는 악마라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의와 선의, 그 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소수의 것과 할 수 없는 다수의 것을 우리는 오래 이야기했다. 표현하지 않는 악의와 선의는 어디쯤에 머무르는지, 우리 각자는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는 어떤 것인지, 같은. 뉴스에서건 주위에서건 우리는 많은 일들을 듣고 본 탓에 막연한 낙관을 꿈꿀 수는 없지만 되도록이면 가능한 긍정을 이야기하자고, 무결한 선이 아닌 최선을 선택하고 실행함으로써 좀 더 나은 나와 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말들. 그러니까 적어도 인간이든 동물이든 누군가 불행하고 아픈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되지 않게 노력하자는 그런 말들. 거기엔 분명 환하고 단단한 힘이 있겠지, 있을 거야 이야기하면서.
점점 해가 짧아져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금세 물들었다. 어떤 손님들이 가게에서 나와 캠핑의자에 벌렁 누운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싶은데 혹시 파시나요, 사장님께 물었더니 씨익 웃으며 츄르 두 개를 주셨다. 우린 곧장 아래로 향했다. 아직 있을까. 있으면 좋을 텐데. 다시 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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