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크게 터지기 직전인 20년 2월, 한창 이직 준비를하고 있었다. 그중 "우리 동네에 이렇게 규모 있는 기업이 있었나?" 싶은곳을 발견했다. 바로 잡플래닛에 서칭을 해봤다,
2.1점
이 마저도 회사에서 평점 높이기 작업을 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탐탁지 않았지만 집근처이니 일단 넣어봤다. 그리고 며칠 뒤 면접 일정이 잡혔다.
단독 건물 사옥에 도착했다. 회사 로비가 미술관 갤러리인 줄 알았다. 고급지고 세련됐다. 1층에서 리셉션 관리자를 통해 인사팀 접견 요청을 하고 담당자가 내려와 카드를 찍고 출입시켜줬다. 거짓말 안 하고 바로 드라마를 촬영 세트장으로 써도 될 만큼의 모던한 인테리어의 사무실이었다. "그녀는 예뻤다" 드라마에서 본 듯한 세련된 패션업계의 사무실 같았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아무런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죽을 정도로 으리으리했다
그러나 사무실에 빼곡히 앉아 있는 직원들의 표정은 글쎄...?생기 없었고 잿빛의 분위기였다. 정말 조용했다. 타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다가 면접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장의 질문들은 답변이 궁금해서 묻는 "질문" 이 아니었다.그냥 면접자를 무안하게 깎아내리고 싶은 의도가 다분했다.내 대답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 " 오래 다닌 회사에서 왜 이직하려고 해요? 그 회사에서 더 성장해서 임원까지 가시지 그래 "
- " 이 지역의 장점을 영어로 말해보세요,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데? "
- "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 제품이 전문성 있다고 생각해요? 그거 너무 쉬운 장비야, 전문성 없어"
특수기기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 전문성 없는 쉬운 분야라는 말은 자존심마저 상하게다. 내가 열심히 일 해왔던 세월까지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나를 앞에 두고 본인 직원들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 잡플래닛에서 봤던 그 말들이 이제 하나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직원을 소모품 이하로 취급한다는 글, 화장지 마냥 직원을 쓰고 버린다는 글, 사무실 분위기가 많이 어둡다는 글, 자존감이 사라지는 곳이라는 글.나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비꼼이 계속 이어지고, 내 얼굴이 점점 불쾌함으로 벌게져 갈 즈음 면접으로 둔갑한 고문의 시간이 끝났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사 담당자에게 싱긋 웃으며 "저는 안 된 것 같아요" 라 답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대기실로 돌아온 인사 담당자는 내 앞에 앉아 연봉에 대한 내부 규정, 출근 일정 등을 읊고 있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저를 뽑으시겠다고요..?" (나한테 이렇게 해놓고..?)
그렇단다...
"사장님이 직원들한테 바라는 수준이 정말 높으신 것 같아요"
나의 한마디에 인사담당자는 봇물 터지듯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몇 마디 주고받다,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노라 했다. 이미 그분도 나의 답을 알았겠지. 어느 회사던 다 비슷하겠지만, 직접 그 현장에 와서 마주하니 왜 그런 평들이 줄줄이 달려있는지 잠깐 스쳐 지나간 나도 충분히 알 수 있겠더라.
그리고 그 회사는 아직도 사람을 뽑고 있다.
반대로 면접 내내 화기 애애하고, 계속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면접 끝나고 자신감마저 생긴 곳도 있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깊이 고민하다 집과 너무 멀어 선택하지 않았지만, 회사 분위기가 좋아 아쉬움마저 들었다.그때 면접 봐주셨던 본부장님과 팀장님을 밖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굉장히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 건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