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짐 Nov 22. 2018

나도 고양이로소이다

2010, 12

주인 여자의 발소리가 현관 너머에서 쿵쿵 울려 퍼진다. 이 여자의 귀가 시간은 일정치가 못해서 어찌어찌하다 보면 여자를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만다. 어쩌겠는가. 참아도, 참아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식욕이거늘.

오늘도 여자가 부어두고 간 사료는 여자의 외출과 동시에 냠냠해버렸으므로 단단히 배가 고팠다. 여자의 발소리가 반가운 것은 당연지사. 현관문 앞에서 야옹, 야옹 울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여자는 평소처럼 이 몸부터 번쩍 들어 올렸다. 문이 닫히고서야 놓아준다. 행여나 내가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하는 행동이라면 꽤나 헛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이 우선이다. 어서 넓적한 사기그릇에 사료나 듬뿍 담아주길 바라며 부러 더 크게 울어대고 있는데 여자의 몸짓이 어딘가 불안하다.

어떡해, 안 돼, 살려주세요, 좀만, 좀만. 저 혼자 앓는 소리를 연발하면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말고 엉덩이를 뒤로 뺀 엉거주춤한 자세로 신발을 벗는다. 그러고는 코트도, 가방도 벗지 않은 채 역시 엉거주춤한 그 자세 그대로 방이 아닌 화장실로 향한다. 여자가 발 딛는 자리마다 빗방울 같은 게 떨어진다.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싶어 천장을 보았지만 비 샐 구멍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별로 내키진 않았으나 궁금한 것 하나는 못 참는 성미기에 정체모를 그 빗방울을 혀로 살짝 할짝거려 보았다.


생수처럼 투명한 느낌도 없고 왠지 못 먹을 걸 먹었다는 느낌이 강해서 어째 좀 기분이 이상하지만 맛이 썩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디선가 많이 맛본 듯 친근하기까지 하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은 사료뿐인데 어디서였더라. 분명 아까도 비슷한 맛을 본 것 같은데. 내 똥꼬 언저리를 핥을 때 느꼈던 맛과도 비슷한 것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별안간 메스꺼워졌다. 에라이, 퉤! 내 이럴 줄 알았다.

갓 두 달 남짓 생을 산 나도 똥오줌 정도는 본능적으로 가리는데 다 큰 여자가 버젓이 화장실을 놔두고 현관 앞에다 실례를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렇게 참을성 없이 일을 저질러버릴 거라면 현관 앞에도 변기 하나쯤 설치해야 함이 옳다. 한데 지금 현관 앞에 있는 것은 인간의 변기가 아닌 나의 모래밭이니 억울한 심정에 절로 털이 곤두선다.


고백하건대 나도 몇 번 실수를 하긴 했다. 처음 이 여자네 집에 왔을 때, 긴장은 되고 소변은 마려워 죽겠는데 도통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어 급한 대로 현관 앞에다 쉬를 했다. 타일 바닥에 흥건한 쉬야가 어쩐지 부끄러워서 뭐라도 덮어줘야 속이 시원할 듯한데 마땅히 덮을 것을 찾지 못해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오줌싸개가 아니다. 처음엔 낯선 환경에 적응이 덜 된 내 탓임을 인정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전적으로 여자의 잘못이 크다. 

여자가 만들어준 내 전용 화장실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전혀 나의 발육상태를 고려치 않았다. 훌륭한 화장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자의 도움으로 한 번 들어가서 일을 본 결과, 대궐같이 널찍한 면적은 물론이고 수북이 쌓인 모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딱히 신호가 오지 않더라도 괜히 한번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했듯이, 내 발육상태를 전혀 고려치 않았기에 나는 높은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하고 동경하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 이유인데 여자는 내가 마치 똥오줌도 못 가리는 철부지 아기인 양 여기저기 새로운 모래밭을 설치해 시도 때도 없이 그 속에 풍덩 빠뜨린다.

그중 하나가 현관 앞인 것이다. 그밖에 피아노 페달 옆, 싱크대 아래, 침대 밑, 커튼 뒤 등이 있지만 첫 배변의 인연도 있고 해서 나는 주로 현관을 이용하는 편이다. 얕은 김치통에다 적당히 모래를 부어 만든 임시화장실이라 외관은 전용 화장실에 비해 확실히 뒤떨어지지만, 들락거리기는 전용보다 훨씬 수월해 나름대로 애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옛날 말인즉슨, 이제는 내 발육상태도 전과 달라 가벼운 점프만으로 전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단 말이다. 체면이라는 게 있지, 임시화장실 따위 마음껏 뛰노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벌써 며칠째 사용하지 않는데도 여자는 무슨 의심이 그리 많은지 기능을 상실한 저 모래밭을 치울 생각은커녕 더 늘려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듯하다.


털을 한껏 세우고 살금살금 여자에게로 가봤다. 여자는 겨우 변기에 앉아 오줌 묻은 팬티와 스타킹을 벗는다. 변기에서 일어나자 가방과 코트, 원피스와 브래지어를 차례로 벗는다. 인간이란 참으로 쓸데없이 옷이란 것을 걸치고 다녀서 이런 비극을 맞는구나 싶다. 울상인 모습이 가여워 짠하다. 이렇게도 마음이 약해서야 원.

화장실에서 나온 주인 여자는 그제야 사료 봉지를 부스럭거린다. 이 여자의 뜨악한 소동 덕에 잠시 나도 허기를 잊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되살아난 허기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든다. 이럴 땐 체면치레고 뭐고 흡입이다.

가끔 사료 말고 다른 걸 먹어보고 싶기도 하다. 뭘 먹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는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므로 요리를 하는 일도 없다. 맛있는 냄새가 풍긴 적이 없는 이상한 집이라 끼니마다 내 사료를 챙겨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쭈그려 앉아 속옷을 조물거리는 여자의 등 꼬리가 오늘따라 도드라져 보인다. 또 한 번 가여워지고 만다. 겨울나무 같이 앙상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옷을 입는 거라면 그 용도가 쓸데없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들이 왜 옷을 입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곧 새해가 밝아온다. 이 여자와 보내는 첫 새해는 어떤 풍경일까.

새해가 되면 글쓰기에 정진해볼까 한다. 여자가 없는 사이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 둘 읽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올라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었다. 특히나 무명의 고양이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읽고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류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므로 비밀에 부치겠지만 무명의 고양이는 내 스승이자 우상이다.

집 안에만 있는 고양이라 좀이 쑤신다. 기회를 봐서 나갈 방도를 모색해볼 작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 한 모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