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짐 Aug 30. 2023

오늘의 외출

'순면과 벌꿀' 같은, 나에게도 작은 구원이 있다

언니 글을 내가 좋아하는 북극서점의 구석탱이 낡은 의자에 파묻혀 읽고 싶었다. 귀하게 읽으며 우리 집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 걸 느끼고 싶었다. 그리 싱싱해보이진 않지만 올해 들어 처음 먹는 자두를 언니랑 먹고 싶었다. 언니가 먼저 퇴근하면 서점 문을 닫고 느긋하게 책을 마저 읽고 싶었다. 그걸 다 못했다. 언니랑 햄버거를 먹다 말고 오래 울어버렸고 진이 빠진 바람에 빨리 쉬고만 싶었다. 1200번 버스는 올 생각이 없어보이고 지하철로 힘겹게 집에 돌아오는 길은 왠지 쓸쓸해서 내가 뱉은 말들을 자꾸만 곱씹게 됐다. 그래도, 환승한 대림역 창밖의 초록색 나무와 후덥지근한 공기가 좋았다. 합정으로 향하며 영감의 롤드컵 결승 예매를 챙겼다. 오후 6시 즈음 역촌에 도착했다. 마을버스 남은 시간은 10분, 택시를 타고 싶은 유혹을 덥썩 잡고 싶은 마음에 영감한테 문자를 했다. 영감은 택시 타고 얼른 오라고 했으나 택시가 안 왔다. 그리고 영감의 롤드컵 예매는 처참히 망했다. 그런 얘기를 주고 받는 사이 마을버스 남은 시간은 8분, 8분 남았다는 얘기를 주고 받는 사이 또 6분… 카카오 오목을 열어 대국을 신청했다. 수비공격을 펼치다 보니 마을버스가 왔고 대국은 그대로 이어졌다. 다 이긴 줄 알았지만 졌다. 허무해서 웃겼다. 집에 거의 다다르자 영감 볼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문앞에는 친구가 보내준 깜짝 책배달이 놓여 있었다. 인터폰에서 영감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영감과 어이가 문을 열고 반겨주었다. 무이는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집에 잘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