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짐 Sep 26. 2023

오늘의 차

느긋한 차 생활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새벽 3시 41분. 평소보다 이르게 눈뜨자마자 든 생각은 '차를 마시자'였다. 민티가 선물해준 다관과 숙우, 하나가 나눠준 레몬 버베나, 차 수업에서 산 다하, 차칙, 차집게, 다건까지 몽땅 꺼내었다. 찻잔은 활엽수 갔을 때 동네 산책하며 한눈에 반해 사온 것으로 준비하고 편하게 물을 따를 드립커피 주전자의 먼지도 닦아두었다.

기상과 동시에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는 건 익숙한 일상이지만 큰 티포트에 티백을 몇 번씩 우려 물처럼 종일 마시는 게 나의 차 생활이었기 때문에 다구를 꺼내는 것만으로 뭔가 정성스러운 것이 빼꼼 하는 느낌이었다.


배운 대로, 뜨거운 물로 다관과 숙우, 찻잔을 예열하고 싱크대를 퇴수기 삼아 물을 버렸다. 종이봉투에 든 찻잎을 차칙으로 살살 긁어서 다하에 올리고 향을 맡고 따뜻해진 다관에 또 살살 부었다. 이제 세차를 할 차례. 찻잎이 든 다관에 물을 채우고 세차를 마친 물은 지금은 딱히 쓸 일 없는 숙우에 버렸다. 뚜껑 있는 숙우라서, 숙우 뚜껑을 뒤집어 개치로 사용하니 딱 좋았다. 전기포트의 물을 주전자에 옮겨 담아 드디어 첫 차를 우릴 시간. 다관에 흐르는 물을 따라서 찻잎이 둥둥 뜨고, 찻잔에 기울어진 차의 색은 연하고 아주 맑았다. 첫 차의 기쁨 그리고 정적! 그제야 음악이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서둘러 bgm을 고른다고 향을 맡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다지 뜨겁지도 않은 첫 차를 괜히 호로록거리며 마시는 동안 미나리 ost를 들었다. 들으며 두 번, 세 번, 마셨다. 어제 못 쓴 일기도 썼다. 마무리는 반드시 정리까지.

이렇게 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느긋한 차 생활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나를 향한 작고 귀여운 차 생활이 시작되었다.


티매트 대용으로 넓고 깨끗한 광목천이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좋은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