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게 반하는 순간
(팔불출 소리를 듣겠지만 각오하고) 나는 영감한테 반하는 순간이 많다.
일단 잘생기고 귀엽기까지 하니까 슬쩍 쳐다보는 것만으로 눈 호강을 하게 되고, 손으로 만져보고 주물러보면서 와 이 영감이 내 영감이야 실감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막 샤워를 하고 나와 로션을 바른 피부는 뽀얗고 하얗고, 살짝 찡그린 눈은 게슴츠레하고, 구불구불 젖은 머리카락은 야하다. 그게 다 예쁘다.
최근에는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덮을 만큼 자라서 시야를 확보할 겸 상투 틀듯 꽁지 묶음을 하고 다니는데 그게 또 어찌나 콧수염과 잘 어울리는지, 부패를 척결하려 난을 일으키기 직전의 백정이 따로 없다. 미천한 신분에도 기개가 살아있는, 시대극 주연 같다는 말이다. 그러다 며칠 전엔 코랑 턱이랑 수염을 전부 밀어버렸다. 나는 미처 의식하지도 못했다. 있고 없고의, 그 자연스러운 전환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영감은 무슨 옷을 입든 찰떡 같이 소화한다. 마음에 들고 사이즈만 맞는다면 임부복 코너에서라도 피팅을 시도해볼 과감한 남자라, 내가 일부러 크게 입으려고 산 옷들은 영감이 입어야 제대로 주인을 만난 것 같다.
사실 영감의 의복 취향은 같이 일할 땐 속은 감이 있다. 백화점 안 매장에서는 튀지 않는 옷을 단정하게 갖춰야 하니 주로 청바지나 면바지에 티셔츠와 카디건을 받쳐 입었다. 무난한 차림이었다.
그러던 차 자취방을 계약한 건데, 옷 정리를 도우며 흠칫했다. 대체 이걸 왜 산 거야 싶은 것과 대체 이건 왜 안 버리는 거야 싶은 것들이 옷장 안에서 속속 튀어나온 것이다. 영감이 미키마우스를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욕되게 할 의도는 없다. 내가 사진 않았지만 나한테도 미키마우스가 프린트된 반팔 티셔츠가 두 장 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 내 티셔츠의 미키마우스가 세월 풍파 다 겪은 노인이라면 영감의 미키마우스는 갓 태어난 신생아 같다. '한때 나도 미키마우스였소...' 하는 한 맺힘과 '내가 바로 미키마우슨데!' 하는 순진무구의 차이랄까. 이 정도로 해두자.
복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좋아하는 옷 몇 벌 가지고 있는 걸 딴지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화 취향의 다름을 인정했듯이 의복 취향도 재빨리 인정해 버리고, 개킨 옷이나 최대한 깊숙한 곳에 숨겨두면 된다. 그런데도 밖에서 만나는 날이면, 영감이 옷장을 샅샅이 파헤치고 내가 싫어하는 옷을 입고 나올까봐 긴장했다. 물론 막상 만나면, (힘겹겠지만 잠시 도입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만으로 헤헷 미소가 번지고 만다. 제발 이것만은, 했던 옷도 영감이 입으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니 신통방통하다. 아마 거적데기를 걸쳐놔도 태가 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우리 부부는 집에서 한텐을 입는다. 정연이가 일본여행 갔다 사다 준 건데 입어보니 그렇게 따스울 수가 없는 거다. 영감은 싫다고 했으므로 혼자서 일주일을 입다가 세탁 시 대체용을 빌미로 중고카페를 뒤졌다. 희뿌연 하늘 같은 바탕색에 큼지막한 꽃무늬가 가득한 빈티지 한텐이 결국 내 품에 들어왔다. 입는 재미는 두 개 다 내 거니까, 보는 재미라도 한 번 느껴볼까 추가로 산 한텐을 영감한테 입혀보았다. 아아 아름답도다. 백정은 온데간데없이, 날 때부터 귀한 집 자제였던 것마냥 품격 있는 모양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굳이 입혔다.
찬 공기가 실내까지 웃도는 어느 날부턴 알아서 챙겨 입더니 하늘색 한텐은 은근슬쩍 영감 전용이 되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무엇보다 영감은 웃는 입모양이 정말 예쁘다. 활짝 웃을 때 입꼬리가 가지런히 샥 퍼지며 마름모꼴이 되는데 그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밖에도 내가 영감에게 반하는 순간은 무수히 많다. 손짓, 발짓, 몸짓 등의 하는 짓까지 범위를 넓히면 추리기가 몹시 힘들어지기 때문에 외모 쪽으로만 치중해봤다. 이런 연막에도 불구하고 앞서 한 모든 기술이, 나란 인간이 외모지상주의자라는 완벽한 증거가 된다면, 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멋지지 않은 순간도 더러 있다. 그럴 땐 안 반하면 된다.
엄마는 나더러 콩깍지란다. 나도 안다. 우리 영감이 아니라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흔한 남자인지도 모른다. 어렵사리 여기까지 읽어준 이들에게 존경과 송구의 뜻을 전한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반할 것이다. 이런 콩깍지는 평생 벗겨지지 않아도 좋다, 벗겨지지 않을수록 좋다.
아 이게 아니야. 내가 영감에게 반하는 순간이 아니라 영감이 나한테 반한 순간을 쓰려고 글을 시작했다. 다만 차질이 예상되어 요 며칠 영감을 닦달하고 있다. 없어? 없냐고. 아니야, 있어. 곰곰이 생각해봐, 내가 집요하게 늘어지는 이유가 있단 말이다.
연애 초반에 영감, 나, ㅇ 셋이서 선유도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양화대교로 진입해 정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공원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쇠문 양옆으로 내 키와 엇비슷한 담벼락이 있었고, 이왕 온 거 삼총사는 담을 타고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먼저 쇠창살을 잡고 발을 크게 디뎌 담 위로 올라갔다. 이어서 ㅇ가 올라오는 것을 돕고, 마지막으로 영감이 담을 넘었다. 쭉 들어가 보니 공원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주민센터 같은 건물이 달랑 있고 그 앞은 광장처럼 넓었다. 우리는 광장 한가운데 철퍼덕 앉아 떡볶이와 튀김을 집어먹었다. 다 먹고 나자 할 일이 없었다. 건물 쪽으로 가보았다. 거기, 어둠 아래 피아노가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피아노를 조금 친다. 악보 없이도 가능한 게 서너 곡 된다. 다만 끝까지 치는 건 없고, 앞부분만 순식간에 흉내 내서 꽤 치는 사람처럼 홀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나마 자신 있는 곡은 Goran Bregovic의 'Talijanska'. <집시의 시간> OST 중 한 곡으로, 기숙사에서 영화를 보고 실용음악과 피아노실에 몰래 들어가 연습했었다. 잘 치진 못하지만 여러 번 들어서 손에 익었다. 오호라, 하며 그걸 연주했다. 자정의 선유도공원에서 둥땅땅 둥땅땅 경쾌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신데렐라의 대반전, 반했겠지? 반했을 거야, 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에서 돌아온 후의 영감이 아까 나한테 반했더라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거다.
이 얘길 하고 싶었다. 그 후로도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만데, 에피소드 몇 개쯤 더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압박에 영감은 우물쭈물하더니 허공에 뜬 말처럼 맨날, 이라고 겨우 답해주었다. 마음은 참 황송합니다만 이래선 글이 진전이 안 되잖냐. 뭔가 좀 구체적인 거 없냐.
영감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영감한테 반한 순간만 줄줄이 늘어놓는 참사가 일어났음을 다시 한번 양해 바라며... 한 마디만 더.
영감은 피아노 치는 신데렐라에 반한 게 아니었다. 넝쿨처럼 창살을 타고 올라 담벼락 위를 휘감듯 걷는 호박마차한테 반한 거였다. 잠입, 잠복, 그런 게 내 전문이지 하며 영감의 신선함에 또 반하는 나. 어유 이 팔불출아, 아주 눈이 보배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