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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Feb 06. 2018

너 때문이 아니었다고?

만일 그 때 내가 오해했던 거라면




  나는 이따금 이유를 알 수 없이 벌어진 일들에 대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곤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최대한 이용해서, 혹은 주변의 도움이나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내 앞에서 벌어진 이 일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찾아내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가기도 전에 각종 증상들을 갖다 붙이며 ‘이 병에 걸려서 이럴 거야.’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특히나 즐거운 일보다는 짜증스럽고 화나는 일에 있어서 그 부지런함이 한층 더 발휘되는 것 같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 순간에는 ‘이 말도 안 되는 일’의 원인을 찾아 그 탓을 돌려 자력구제를 실현하겠다는 몹쓸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이 가끔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원인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에 혈안이 되어 찾다보니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화장품을 새로 샀는데, 그 다음날 얼굴에 뾰루지 몇 개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큰맘 먹고 바꾼 화장품인데 바르자마자 피부가 망가져 버렸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데 그 순간 새로 산 화장품에 아직 비닐이 안 뜯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 나는 전날 밤 그 화장품을 바르려다 말고 기존에 있던 것을 먼저 다 쓰기로 했던 것이다. 화장품을 새로 샀다는 생각만 하고 정작 포장도 뜯지 않았다는 생각은 잊어버린 것이다. 만약 내가 전날 새로운 화장품을 산 기분에 들떠 정말로 새로 산 화장품을 발랐다면 내 피부에 난 뾰루지의 원인과 그에 대한 원망의 주인공은 영락없이 새 화장품이 독차지했겠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가 만일 오해를 하지 않았다면 '빵+우유 찍먹'이라는 환상적인 조합을 좀 더 빨리 깨달았을 것이다.

 

  한 때 내가 우유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믿었던 적도 있다. 어느 날 아주 심한 배탈이 났는데, 그 날 먹었던 음식을 아무리 돌이켜 봐도 우유 말고는 배탈의 원인이 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몇 달 후에도 우유를 먹은 뒤 비슷한 증상을 겪게 되자 나는 틀림없이 우유에 알레르기가 있거나 유당 불내증일 것이라 확신했다. 우유라는 것이 원래 알레르기의 단골 원인으로 지목되지 않던가. 그 뒤로는 우유가 들어간 음식들을 모두 피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우유가 들어간 차를 마시게 되었고 뒤늦게 내가 우유에 아무런 이상반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맛있는 우유를 왜 지금까지 안 먹었을까’라는 자책도 덤으로 얻었고 말이다.     



 

 힘든 일을 겪을 때면 내 삶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많은 순간 내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이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 ‘나’를 지목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내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내가 시간을 되돌려 삶을 다시 살아간다고 해도 그 답은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내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해였다면, 적어도 화장품이나 우유 따위에 느낀 미안함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에게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뾰루지가 났고, 배가 아팠으며, 확신이 서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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