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세고 오래가는 건 어려워요
가끔 뜬금없는 ‘완벽주의’가 찾아와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특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더욱 그랬다. 새 학기가 다가오면 꼭 새로운 펜과 노트를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기도 했고, 운동을 배운다는 핑계로 다짜고짜 옷과 장비부터 구비해놓기도 했다. 시작을 ‘잘하고 싶다’는 기특한 마음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마는 이 완벽주의를 유지시켜 줄 ‘지구력’이 늘 지구 반대편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잔뜩 힘을 주고 시작한 일은 오히려 쉽게 힘이 빠지기 일쑤였다. 야심 찬 계획들은 안정된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줄줄이 추락하고 말았다. 완벽하기만 할 것 같던 일들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아예 포기해버리는 쪽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내 방에는 처음 몇 페이지만 끄적거린 공책이나 장식용으로 전락한 운동기구 따위가 쌓이게 되었다. 완벽하고자 했던 열정이 오히려 나를 지쳐 포기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으로 작용한 꼴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일들은 힘이 적게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과를 장황하게 적는 대신 매일 밤 한 줄의 글을 적거나, 과격한 운동을 하는 대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는 등 크게 힘들이지 않기에 기꺼이 계속해나갈 수 있는 그런 일들 말이다. 차마 대단한 일이라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때로는 한두 번 하고 사라지는 큰일보다 작은 습관이 만들어 낸 변화가 일상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아마 나는 대단한 소재로 첫 글을 시작할 자신이 없었기에 조금은 힘을 덜어내고 시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더 좋은 글을 적고 싶어서 늘 망설였던 브런치 연재였기에, 이번에는 완벽하게 쓰는 대신 오랫동안 적어나가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러다 보면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힘들여 읽지 않아도 되는 내 글이 누군가의 일상 한 부분이 되어 습관처럼 스며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