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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Jul 20. 2018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독샤를 합시다1. 냉우동을 읽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 게 뭔데?



  여느 드라마에나 한 번쯤은 나올 법한 단골 대사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답다’는 말 이 주는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때로는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난 행동, 이른바‘나답지 않은 행동’이 참신함을 선사할 것인지 거부감을 일으킬 것인지를 눈치 보기도 한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답다’라는 틀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서…….’가 내 행동의 이유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이따금 뜬금없는 바람이 불어 왠지 나답지 않고 싶은 날이 있다. 이를테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한 번쯤 실망시키고 싶은 날 말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나에게만은 좋은 사람이고 싶은 그런 날, 나는 구미가 확실히 당기는 쪽과 그 반대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곤 한다. 대부분은 뒷감당이 두려워 정의된 ‘나다움’을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하무인 히어로가 한 번씩 빙의되면 엄청난 용기가 솟아올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그렇게 나는 가끔의 반항으로 나다움의 틀을 깨면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틀을 깨고 나온 것 역시‘나’이기에.     


냉우동을 처음 보고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너 답지 않게 왜 이래?”


그럼 냉우동은 차가운 얼굴로 대답하겠지.

“이게 나다운 거야.”     


차가운 온도에 걸맞은 아삭하고 신선한 채소가 가득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물은 매서운 한파를 뚫고 찾아간 우동 가게에서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해왔다. 우동 국물이 주는 깊은 맛은 추위를 단숨에 녹일 정도로 강렬하기 때문이다. 가게 문에 몽글몽글 서린 김마저 우동 국물과 함께라면 운치 있게 느껴질 정도이니 가히 국물계의 이백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처럼 우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히 뜨겁기보다 ‘따뜻한’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날씨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뜨거움은 물론이요, 입김조차 피하고 싶은, 한마디로 ‘폭염’이다. 동시에 ‘냉우동’이 더욱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날씨는 덥고 우동은 먹고 싶다면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냉우동을 처음 보던 날 따뜻한 우동의 비주얼을 상상했던 나에게 그는 큰 충격을 줬다. 따뜻한 우동의 수수함을 비웃듯 드러내는 화려한 자태에 잠시 멈칫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우동의 핵심인 국물에 먼저 손을 댄다. 보통의 우동 국물이 식도와 위를 타고 내려가며 감동을 더한다면, 냉우동은 입안에서만 승부를 내겠다는 듯이 첫맛부터 강하게 혀를 자극한다. 전형적인 ‘국물요리’의 개운함을 기대하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었다가는 다소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물과 어우러진 채소를 보며 상큼한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가 연상되기도 했다. 

  냉우동에는 화려한 비주얼만큼이나 화려한 맛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돈가스나 치킨 토핑이 올라간 냉우동을 주문하면 단짠보다 끊기 어렵다는 뜨차(뜨거우면서 차가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기름 맛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튀김요리의 바삭함과 뜨거움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혀에 부담을 덜어주었다. 주문 후 바로 튀겨서 나오는 돈가스는 여느 맛있는 돈가스집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음식을 먹다 보면 차가운 국물에 빠진 돈가스는 점점 갑옷을 벗고 부드럽게 변해간다. 국물이 밴 돈가스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눅눅한 튀김이 죽어도 싫다면(나는 무조건 찍먹파야! 라면) 따로 접시에 빼둔 후 조금씩 덜어서 함께 먹어도 좋겠다. 아무튼 면을 제외하고는 참 우동답지 않은 녀석이다.  


  내가 기대했던 우동다움의 틀에서 빠져나오려고 반항하는 모습이 미울 법도 한데, 그 와중에도 우동이라는 틀과 타협하고 있는 게 꼭 내가 사는 모습 같아서 정이 간다. 나는 분명 따뜻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때로는 불같이 뜨거웠던 열정이 순식간에 식어서 냉정해지기도 하고, 온종일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상대가 원하는 만큼의 친절을 보여주지 못할 때도 있다. 아마 언젠가는 차가운 얼굴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다움과 정반대 되는 나를 보여줄 날도 있을 것이다. 평소답지 않은 온도에 '너답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그릇에 담긴 우동이 어떤 우동일지는 내가 제일 잘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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