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문은 어떤 기업, 브랜드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녹아내며 많은 이들에게 이미지를 심어주고 알리고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건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생스럽게 만든 방송을 좀 더 많은 이들로부터 볼 수 있게 하는 것.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이 방송만큼은 봐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재미있게 흥미를 유발하도록 빨아 당기게 써야 하는 것이 방송 홍보문이기도 하다.(내 경험에 반추해볼 때)
홍보문을 작성할 때 머리 쥐어뜯으며 썼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지금은 그때보단 훨씬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내공이 쌓였고 방송을 그만둔 이후에도 글 쓰는 일, 제품이나 브랜드 홍보하는 일을 계속해왔으니. 하지만... 방송일을 다시 하라고 한다면, 아니 막내작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이젠 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 방송작가가 되고 첫날 했던 일은 알지도 못하는 아이템의 종편 시사와 홍보문 작성이었다.
생각해보면 투입되었을 시기가 상당히 애매했던 거고, 그전에 일했던 방송작가가 얼마나 힘들면 마무리도 다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만뒀을까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당시엔 뭐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동기들이 하나둘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는데 나만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쫓기듯 시작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 시작을 하고 나서 그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으므로 용기를 내야 했다. 그 용기는 나를 불구덩이 속으로 넣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첫 출근날, 마봉춘 근처 외주 제작사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깨달아야 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 앉아서 모니터만 응시한 채로 키보드만 두드리던 작가들. 그 옆에 서서 빨리 편집 구성안을 내놓아라~ 대본 내놔라 하며 서 있던 피디와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조연출까지. 그동안 상상했던 방송작가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치열하게 문장 하나를 고민하고 그걸 영상으로 담아내고... 그런 것이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시간이 촉박해 메인작가님 옆에 딱 붙어서 채근하던 비쩍 마르고 키가 크던 그 피디는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넌 뭔데 그렇게 멀뚱 거리고 서있어?라는 듯이 턱을 좌우로 움직이며. 잠시 동안 굳어있었다. 어...? 내가 잘못 온 건가.
때마침 사무실 안쪽에서 전화받으며 나오던 메인작가님이 나를 반겼다. 교양 분야 휴먼 다큐멘터리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새로 들어온 00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호기롭게 소리치며 인사를 했고, 거북이처럼 고개만 쭈욱 내밀고 있던 작가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새로 들어온 막내고요. 싹싹해서 데려온 거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 자 박수! 영혼 없는 박수는 듣기 싫었지만, 아카데미 선생님이 데려온 거였으니 많이 배우겠지 생각하며 어색함을 미소로 감췄다. 그렇게 인터넷선만 덩그러니 남겨진 자리에 가져온 짐을 정리했다.
근데... 인수인계는요?라고 물을 틈도 없이 제작사 사무실 안에 있던 탕비실 안으로 불려 들어갔다. 외주제작사 대표와 이사, 메인작가 3명 이렇게 5명의 사람이 나를 상대로 앉아있었다. 홀로 앉아있는 것이 어색했지만 첫날이고 떨려서 기대에 부풀었다. 오늘 종편 시사하는 날이니까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보고 배워둬요. 우리 프로그램 좀 봤다고 그랬지? 그럼 홍보문도 기본이겠네. 앞으로 우리 막내작가님의 담당 사수는 이분들이에요. 대표가 가리킨 사람은 아카데미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 반말로 그래~ 잘 부탁해.라고 인사하던 A선배와 나긋나긋 앞으로 잘 부탁해요라고 말하는 B선배였다.(B선배는 개인적으로 안 좋았던 기억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곧 풀도록 하겠다.) 두 사람의 캐릭터가 너무 상반되어 이질적이었다. 근데... 저 혼자 그러니까 상사 2분을 모셔야 한다는 건가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잘 배우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첫날부터 폭풍 야근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피디와 조연출, 그 옆에 며칠 밤샘했다며 피곤해하던 메인작가까지 보면서 종편 시사가 뭔지 지켜봤다. 아이템 기획 - 촬영 및 프리뷰 - 편집 및 시사 - 가편 시사 후 수정 - 종편 시사 - 최종 수정 후 방송 송출 대략 이런 프로세스로 방송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거의 끝에서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경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앞에서 일하던 작가는... 일이 너무 힘들어 2주일 만에 때려치운 상태였다. 다시 정리하자면 1달 동안 4명의 막내작가가 바뀐 상황이었다. 그 사이 난 5번째로 오게 된 거였고... 한마디로 낚였... 던 것! 그래서 인수인계로 받은 파일들은 별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프리뷰 형식도 새로 짜야했고, 아이템을 기록해두던 회의 파일도 따로 정리된 것이 없어서 그 작가가 도망치듯 나갈 때 남기고 갔던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것을 한글로 옮겨뒀다. 이렇게라도 해야... 뭐라도 보일 것 같아서.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A선배는(바로 반말을 시전 한 분) 지금은 종편 중이니 본인이 쓴 편집 구성안을 보며 홍보문을 써오라고 했다. 그냥 던져주고 써올래라고 하긴 했지만, 첫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던 상태라 바로 써보겠다고 말했다. 기존에 올라왔던 홍보문들을 비교해보며 급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들어보면 처우가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데, 내가 일하던 당시에는 외주제작사는 무척 힘든 곳이었고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홍보문들을 보며 공부했지만 감이 오지 않았다. 대학교에서는 4년 내내 소설을 썼고, 프리뷰의 경험은 있었지만 일적으로 이렇게 뭔가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어쨌든 다른 막내작가들이 써서 올린 홍보문을 보면서 이런 문체로 이런 구성으로 써야 되는구나 짐작하고 A선배가 준 편집 구성안을 몇 번씩 읽어보며 내용 파악해봤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열심히 공부하면 바로 짜잔~ 멋진 글을 써 내려가겠지만, 현실은 아니다. 단시간에 오랫동안 찍었던 이 영상의 핵심을 처음 마주하는 내가 써야 하는 일은... 무모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지만 경험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너무나 막막했다. 이 아이템이 말하는 게 뭔지 파악도 못했는데 당장 써서 내라니... 고민 끝에 조금씩 조금씩 칸을 채워 구색만 갖추고 매끄럽지 않은지만 확인해서 보여줬다.
처음엔 빨리 써서 고맙다며 좋아하더니 다 읽고 난 A선배의 얼굴은... 어이가 없고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저기요. (첫날 처음 만난 사이라) 글 자체는 막힘없이 읽을 수 있겠는데,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이거 보면서 홍보문 쓰랬지 소설 쓰라고 했던가?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던 A선배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이런 건 홍보문이 아니야. 소설이지.라고 말했다. 거기서 나는 당당하게 네 맞아요 저 소설 4년 동안 열심히 썼어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없는 아니 어이없는 대답이었지만 당시엔 일방적으로 당한 것 같아 억울했다. (처음 썼던 홍보문을 보면 나도 찢고 싶다...)
그렇게 처음 쓴 홍보문에는 빨간 표시와 빨간 줄로 난도질되어있었다. 밤샘하느라 잔뜩 예민해진 메인작가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는 아주아주 무시무시했다. 난 오늘 처음 왔다고요... 작가 일도 처음이라고요. 이 아이템은 처음 봤다고요... 억울하고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빨간색으로 난도질된 홍보문 종이를 들고 첫날 밤샘하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이러려고 들어온 걸까. 나와는 안 맞는 건가 잠깐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토록 바라던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들어갔는데 이렇게 울기만 하고 무너지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 홍보문을 쓸 땐 무조건 회의할 때 들었던 내용들을 중에서 포인트를 적었고 피디와 메인작가, 조연출 모두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혼나더라도 궁금한 건 무조건 집요하게 물어보고 주제가 정확하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꼭 확인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부분, 나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 홍보문이라는 에이포 용지 2-3장으로 1시간짜리 다큐의 액기스만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좀 더 홍보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지만, 결론을 이렇다. 내 목표는 나에게 소설 쓰냐고 했던 그 사수에게 '인정' 받는 것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빨간펜이 내가 열심히 쓴 홍보문에 더 이상 난도질할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고생해서 만든 이 결과물이 많은 이들에게 퍼지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홍보문을 쓸 때도 설렁설렁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좀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잘 썼다고 느낀 글들을 스크랩해두는 등) 그런 마음이 더해져서 홍보문을 쓰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녀의 빨간펜은 내 홍보문에서 설 길을 잃어갔다. 처음엔 빨간색으로 얼룩졌던 홍보문은 어느 정도 일에서 적응할 무렵, 체크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로 바로 올라가게 되었다. 깔끔하게 잘 썼네. 이젠 뭐 내가 안 봐줘도 되니까 오타 잘 체크해서 올려~ 잘했어. 그녀의 피드백을 들으며 어느 순간 홍보문 작성의 시간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나는 외주제작사에서 본사로 들어가 10년 가까이 방송일을 하게 됐다. 내가 본사에 들어간 이후에도 A선배와는 쭉 연락을 했는데, 지금은 그녀도 나도 방송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됐다. 그녀는 아기자기한 카페를 운영하며 지내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니까. 가끔 홍보문 이야기를 하면 웃음이 난다. 치열하게 밤새고 매일 문장 하나에 목숨 걸었던 시간들. 방송작가 필수업무, 홍보문 작성!
홍보문 작성을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매력적인 제목. 시선을 끌어당기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더 좋다. 그리고 요즘은 다양한 SNS를 활용해 홍보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힙하고 눈길이 가게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텍스트의 홍보문은 여전히 필요하다. 하나의 영상에 담긴 철학과 주제가 대중들로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보고 싶게 만드는 것. 그런 게 홍보문이 갖춰야 하는 덕목 중에 하나란 생각이 든다. 방송작가를 준비한다면 다양한 홍보문들을 보며 익히는 연습도 미리 해두자!
방송작가를 꿈꾸고 있다면 방송작가 필수업무인 홍보문 작성도 기억해두자 :)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아기자기한 것을 사랑하는 핑크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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