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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Sep 23. 2022

생일기념 예당호 낚시여행(ft.블루길)

낚시꾼 부부의 생일 기념 예당호 낚시여행




인정하기 싫지만 생일을 두 번 더 챙기면, 마흔이다.


나보다 6개월 생일이 느린 동갑내기 남편은 내 생일을 아이를 낳은 이후 더 정성껏 살뜰하게 챙겨준다. 이유는 묻지 말라며, 늘 아이 키우느라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하면서도 기대는 말라더니... 38번째 생일을 남편과 둘이서 보낼 수 있게 됐다. 아이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하루 부탁하고 우린 모처럼 둘만의 낚시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어 마음껏 웃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괜찮다고 말했다. 일 년에 딱 하루,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떠나는 낚시여행이라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여행을 준비하기 전 캐리어 한쪽 가득 아이의 짐과 나머지 한쪽엔 우리 짐을 꾸깃꾸깃 넣고, 엄마인 내가 짐 싸는 동안 옆에서 신나게 짐을 빼주는 아들을 말리면서 부랴부랴 짐을 겨우 쌌다. 캐리어 위에 올라간 아들을 보니, 어느새 여행 갈 준비가 끝나 있었다. 처음엔 아이랑 함께 가는 건 줄 알았는데 남편은 모처럼 '둘이서' 떠나는 무려 그것도 '낚시여행'이라고 말했다.


첫 데이트의 설렘처럼 기분 좋게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 여행은 남편과 내가 아이를 낳기 전 찾아낸 공동 취미 낚시가 테마였다. 생일에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저녁 어스름 달빛이 보일 땐 호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 기울이는 것도 너무 근사하지만... 어쩐지 난 남편의 낚시여행이 더 많이 끌리고 기대됐다. 아이를 맡기고 드라이브하듯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남편은 충주의 어느 카페에서 예쁜 핑크색 케이크도 샀다. 미리 레터링 케이크를 부탁했다고 했다. 남편은 다정한 편이긴 하지만 섬세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가끔씩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놀라웠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물 흐르듯 흘러간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남편과 나는 생각보다 먼 거리를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바로 떠나와 피곤에 절어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예당호였다. 친정엄마가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출렁다리.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출렁출렁 다리가 휘청거리며 때론 물에 닿을 듯 유연하게 움직이는 예당호의 출렁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꽤 긴 편에 속한다. 출렁다리를 좋아하는 엄마 덕에 전국에 있는 출렁다리는 거의 다녀왔는데, 이 예당호는 좀 더 특별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방문했었고, 402m라는 어마어마한 길이도 그렇고,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과 함께 분수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렁다리 밑으로 보이던 좌대낚시터를 보고 꼭 언젠가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시점, 남편은 나에게 예당호로 떠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두근두근.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알 수 없는 두근거림, 설렘. 기대감과 낯선 곳으로의 모험이 펼쳐질 것이기에 더 기대된다. 여행뿐만 아니라 낚시도 마찬가지다. 잡으려는 어종을 생각하고 가지만 낚시를 할 때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내가 어떤 물고기를 잡고 싶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잡을 거란 오만함은 버려두고 가야 한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예당호 출렁다리는 멀리서 보니 더 아름다웠다. 예당호 출렁다리를 배경 삼아 쉴 수 있는 좌대낚시터를 찾은 우리. 좌대낚시는 물 위에 떠서 낚싯대와 낚싯바늘만으로 오로지 손에 느껴지는 손맛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활동적인 워킹 낚시와는 성격이 다르다. 던지고 자리에 앉아서 주변 풍경도 감상하고 그러다 배가 고프면, 좌대 위에 설치된 테이블 위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생일을 맞이해 남편은 나에게 육아로부터 잠시 벗어나, 남편과 나 둘이서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이보다 더 값지고 이보다 더 훌륭한 생일선물이 있을까? 육아로부터 잠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자유를 선물 받았다. 좌대낚시는 물 위에 떠있는 숙소에서 짐을 풀고, 바로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게 강점인데 우리가 찾아간 낚시터 사장님은 굉장히 젊었다. 남편과 내가 종종 같이 보는 유튜버가 찾아간 곳이기도 하고, 미리 예약해둔 좌대로 향하는 동안 뜨거운 햇살과 상쾌한 물 향기가 섞여 콧등을 간질였다.


'그래, 나는 자유다. 오늘만큼은 자유부인. 아니,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나다. 낚시 좋아하는 나.'



우리가 머물렀던 6번 좌대, 화장실도 깔끔하고 에어컨과 TV가 모두 되는 곳이었다 :)

예약한 좌대에 짐을 풀고 깔끔한 시설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남편은 서둘러 낚시채비를 준비했다. 으레 낚시의 시작은 항상 나에게 맞춰주는 남편. 남편은 생일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준비하는 동안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라고 했다. 생각보다 깨끗한 화장실에서 나와 좌대에서 멀리 출렁다리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출렁다리와 어우러지는 풍경은 오랜만에 나온 나에겐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풍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뻥 뚫리는 마음. 탁 트여 온 사방이 물로 이뤄져 있었지만, 무섭지 않고 오히려 잔잔해졌다. 이래서... 불멍을 하고 물멍을 하는 거겠지?



생일자인 나, 머리띠도 하고 사진도 찍고 노을 감상하며 물멍 + 낚시를 즐겼다

가만히 물멍을 하고 있던 내게 남편이 선물이라며 세팅이 다 된 낚싯대를 건넸다. 설마 넣자마자 바로 나오진 않겠지 하며 던졌는데... 아뿔싸! 나오라는 베스는 잡히지 않고 탁탁 파르르 강하게 물 밑에서 뭔가가 낚싯바늘을 잡아당겼다. 뭐지? 꽤 묵직한데? 하고 꺼내보니 푸른색의 블루길이었다! 블루길은 생태교란종인 베스와 더불어 토종 물고기 서식지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물고기인데, 베스보단 훨씬 작지만 맛은 일품이라 꽤 많이들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물고기이다. 그런데... 이 블루길 은근 손맛이 좋은데?


크기는 작아도 묵직하게 쭈욱 끌고 가는 힘도 좋고, 잡는 족족 퉁퉁해 사이즈가 괜찮은 것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남편과 어렴풋이 생태교란종 잡는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리고는, 열심히 잡아보자며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했다. 블루길은 큰 호수나 연안대의 수생식물이 많고, 하천이 흐르는 수초가 있는 곳에 주로 산다는데 예당호도 역시 큰 호수이기에 살기 적합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블루길을 잡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들뜬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열심히 잡으라고 했다. 그래, 낚아보자. 블루길!



물멍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역시... 낚시여행이 최고지!

산란기가 4월-6월 사이였기 때문에 시기도 딱이었고, 잡는 동안 암컷도 보이고 두툼하게 살이 오른 수컷도 잡혔다. 최대 크기는 16cm 정도 될 만큼 베스에 비해 아주 작은 것이 특징! 게다가 손맛과 입맛까지 좋은 물고기라고 하니 신기했다. 유튜브에서 보던 그 물고기를 드디어 잡는구나~ 하며 남편과 잡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느나 모드'였다. 넣으면 바로 잡히는 손맛이라 지루할 틈이 오히려 없었다. 


베스는 묵직한 손맛 때문에라도 꼭 잡고 싶었는데, 어째 넣기만 하면 나오는 건 블루길뿐이었다. 원체 맛이 훌륭한 블루길은 구이로 먹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하는데, 남편은 잡는 족족 담아 숙소 안에 있는 냉동실로 넣었다.(내장과 피 빼는 건 기본이죠!)



베스 채비로 던졌는데 잡히지 않아 체념하다, 문득 노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손맛이 이렇게 좋았구나! 묵직하고 나를 끌어당길 것 같은 그런 건 아니지만, 미끼를 심지어 끼지 않아도 잡히는 건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녀석이 너였단 말이야? 우리 삶도 좀 그렇게 쉽게 낚을 수 있는 일도 많았으면 좋으련만. 낚시하는 내내 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낚시의 한을 풀기로 작정한 것처럼, 오늘만 산다며 전화를 끊었던 아저씨의 마음으로 비장하게 열심히... 까지는 아니고. 무심한 듯 툭 던지고 잡히면 뛸 듯이 기뻐하며 블루길을 열심히 잡아 올렸다. 여름에 하는 빙어낚시 같은 느낌.



가장 친하게 지내는 짝꿍이랑 둘이서 온 것도 너무 좋은데, 넣으면 바로 나오는 블루길 덕분에 손맛도 쉴 틈 없이 보고, 거기에 황금색으로 물든 물 위로 일렁이는 물결이라니!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겐 값비싼 호텔보다 더 안락하고 편안함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하루 십만 원 안팎의 좌대에서 오랜만에 남편과 나는 해방감을 맛봤고, 손맛도 즐길 수 있었다. 아... 우리의 해방 일지는 이렇게 시작되는 가봐. 



근사한 호텔, 와인 한 잔, 포근하고 고급스러운 침대 위에서 몸을 내던지고 푹 쉬는 호캉스도 좋은데. 이상하게 나는 남편과의 지금 이 순간이 진정한 우리의 호캉스라는 생각에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웃음, 기침은 숨길 수 없다는데, 배시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도 연신 좋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 물론 무조건 다 좋을 순 없다.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어종인 베스. 베스의 입질은 1도 없었던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낚시는 잡으려고 하는 걸 못 잡기도 하고, 예상 밖의 수확을 얻기도 한다. 남편과 낚시를 하면서 느낀 건 나의 욕심을 조금은 내려두는 일이었다. 이날도 그랬다. 아무렴 어때. 못 잡으면 어때. 대회를 나간 것도 아니고, 그저 흘러가는 물결을 따라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 보는 거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노을에 빛이 반짝반짝거리던 물결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졸릴 듯 편안하고 나른해지는 기분... 가끔 이렇게 낚시를 하면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필요하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더니,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원하던 베스는 1도 못 잡았지만, 남편과 둘이서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어두워진 하늘을 밝힌 건 예당호의 출렁다리였다. 분수쇼가 시작되더니 화려한 불빛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면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엄마랑 처음 보러 왔을 땐 낮이었고, 무척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낑낑 거리며 지나갔던 기억이 났다. 아등바등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전체를 보니 출렁다리가 달리 보였다. 


같은 것도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도, 관계도 그런 거라고... 혼자 구시렁거리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잠들어있던 남편이 살포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일 축하 노래와 레터링 케이크가 세팅되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00 씨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반칙이다. 남편과 가끔 너무 감동적일 때 반칙이란 표현을 쓰곤 하는데, 이날은 정말 반칙이었다. 선물로 좌대 낚시를 하러 온 것만 해도 행복했는데, 생일 케이크에 멋진 야경까지 더해지니 '낭만'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잊지 못할 베스의 0마리 굴욕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 블루길의 습격(?)도, 멀리서 바라보는 멋진 야경도... 탁 트인 좌대에서 가만히 앉아 물멍을 할 수 있는 시간마저 모든 것들이 이날은 내게 선물로 다가왔다. 



아침부터 가열차게 잡혀주는 블루길... 귀엽게 생겨서 맛있기까지 하다니!

남편과 기절하듯 잠든 다음날 아침. 우린 그냥 체크아웃하기 아쉬워 체크아웃하는 시간에 딱 맞춰서 더 잡아보기로 했다. 아침이었지만 역시... 블루길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냥 넣어도 잡히고 살짝 당겨만 줬을 뿐인데 마구 잡히는 블루길을 추가로 더 잡아버렸다. 토종어종이었다면 놔줬겠지만, 생태교란종에게 자비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스박스엔 블루길로 가득 채워졌다. 만선의 꿈을 꾸며 배 위로 승선하는 어부들의 마음이 이럴까? 물론 백 퍼센트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두둑하게 잡힌 어망 속 블루길을 보며 매운탕과 구이를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 생각에 다시 후다닥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배를 타고 나와 차에 올랐다. 전날 찍어둔 사진들을 하나둘씩 꺼내보며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생일의 순간을 되새겼다. 남편과 난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보러 가는 길,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번 생일은... 정말이지 완벽했어!


그래... 역시, 우리의 생일엔 낚시여행이지!



* 저희가 찾아간 예당호 좌대낚시터가 궁금하시면 '예당 무지개좌대'를 검색해보세요! 즐거운 낚시하세요'◡'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아기자기한 것을 사랑하는 핑크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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