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의 낚시취미생활 <오늘의 낚시>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날엔 밖에 있는 것보단 창밖 너머의 풍경을 감상하는 비멍(비 보면서 멍 때리는) 시간을 더 선호한다. 토도독 토도독 일정하게 창문을 두드리며 내리는 빗방울이 유리창을 따라 데굴데굴 톡 하고 터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보다 더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게 비 내리는 날은, 바라보는 것만 좋아할 뿐 밖으로 나가기 싫은 날이다. 신발도 바지도 땀에 절은 머리마저 비 때문에 더 축축하게 느껴지는 그 기분 나쁨이 싫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비 내리는 날엔 그냥…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낭만적인 일이라고 여기던 내게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남편과 올여름은 유난히도 힘들고 지친 시간이다.(현재형인 이유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라서) 잘 틀어지던 에어컨이 갑자기 고장 나더니,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폭염과 폭우로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었을뿐더러. 아이는 잘 다니던 어린이집을 못 가고 아기들이 이맘때쯤 한 번씩 통과의례처럼 걸린다는 수족구에 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집이 아닌 친정에서 한달살이를 이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부모님과 친동생의 케어 덕분에 아이와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와 아이는 때아닌 따로 살기를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이의 재접근기로 인해 나의 자유는 거의 없었으며(화장실 문 닫으면 호통치고… 난리가 난다) 아이 공간이 따로 있는 집과 달리 친정은 넓으니 아이를 주시하지 않으면 부딪히거나 생채기가 난다거나… 이로 인해 나의 스트레스는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게다가 가정보육도 보름 가까이하고, 폭우로 인해 나갈 수 조차 없는 현실에 답답했다.(폭우로 인한 피해복구가 조속히 이뤄지길 바랍니다..ㅠㅠ)
- 물놀이다운 물놀이를 하고 싶어.
답답한 마음에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남편은 고민하다가 시댁으로 가자고 했다. 매번 가는 시댁이 뭐가 새로울까 싶겠지만, 때론 익숙한 곳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일단 나는 집이 아닌 어디론가 나가고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 여행지도 많지만, 그곳에 가면 오롯이 남편과 나만이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니 그런 위험부담은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남편의 마음이) 어쨌든 콧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남편이 전날 챙겨놓은 짐들을 싹 차에다 내려둔 뒤 아이를 데리고 차에 갔다.
빠진 건 없는지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나도 남편 차로 향했다. 그냥 차에 탄 순간부터는 기분이 나아졌지만, 이내 다시 수그러들었다.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었던 시댁은 휴가철과 맞물려 5시간이나 소요됐다. 차에 타면서 아이도 남편과 나도 모두 다운됐다. 고속도로를 60킬로미터로 나아갈 때의 느긋함은 지루함으로 변질되었고, 반복해서 들리던 아이의 동요 소리는 지친 나에게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밖에 나왔다는 즐거움은 잠시였고, 지루한 여정이 언제 끝날까 하는 조급함만 남았다. 차에 오래 타느라 피곤한 아이와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렇게 시댁에 도착!
시댁에 도착한 뒤에도 쉬이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서 뒹굴뒹굴. 아이랑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결국 비구름은 시댁이 있는 문경까지 내려왔다. 기어이 서울에서 퍼붓던 비는 시댁이 있는 동네에도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보는 것이 낭만적인 일이며, 비를 맞는 건 썩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우리… 피라미 잡으러 가지 않을래?
- 이 비에 무슨 피라미? 비 맞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무슨 낚시야…
남편의 제안에 날카롭게 반응을 하자 한 번 더 남편이 졸랐다. 일단 나가보자고. 나가서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다시 오고, 아니면 낚시를 한 번 해보자고.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지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장 좋아하던 낚시를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니 놓게 되었다. 둘이서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 하지 못하고, 남편과 나는 각자 육아와 일을 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낚시할 때처럼 서로를 돌보는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었다. 두려웠다.
아이를 낳고 나면 육아에, 일상에 치여서 서로에게 지치지 않을까. 나는 아이를 전담하고, 남편은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일에 매진하느라고 말이다. 으레 아이가 있는 가정에선 하나의 단계인 것처럼 되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인데. 스트레스를 확 날려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육아를 병행하며 낚시를 다니기엔 아직 아이가 어리니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됐다. 그렇게 우리의 낚시 라이프는 희미해진 것 같았는데. 자주 가던 카페와 커뮤니티에는 시즌마다 다양하게 사람들의 소식이 올라왔지만 그걸 바라보며 자꾸만 씁쓸함을 집어삼켰다. 그랬던 우리였다.
마침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나가보기로 했다. 낮잠을 보통 2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자주는 우리 아이. 잘 때만큼은 엄마 아빠를 찾지 않는 낮잠시간에 나가는 것이 적기였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이불 그네로 한참 태워줬다. 드. 디. 어. 코-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이보다 더 천사일 수 없을 거라며, 남편과 나는 아이를 토닥여주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부탁했다. (마침 시누이도 졸리던 찰나였다.)
시댁 근처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우린 종종 가볍게 낚시를 즐기곤 했다. 꺽지, 피라미 정도인 곳이라 다양한 어종을 만나긴 어렵지만, 낚시 초보도 하기 좋은 스팟이긴 하다. 남편은 비가 오는 날에도 낚시를 할 수 있다고 가자면서도 내심 걱정했다. 집 근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 잡힐지 안 잡힐지는 미지수였다. 비가 내리는 날엔 물의 흐름이 많아져 물살이 세지는데 그럴 때 낚시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비 맞으면서 낚시하는 건 별로인데,라고 생각하는 주의라 고민했지만... 아이가 잠든 이 황금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긴 싫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 좋아, 얼른 가자!
남편이 말한 다리 위로 갔다. 비는 옅게 내리고 있어서 생각보다 맞을만했다. 하지만 옅게 내리는 만큼 축축한 습도와 물가 주변으로 날파리가 날아다녀서 무척 귀찮을 것 같았다. 비 내리는데 낚시하기 귀찮은데… 잡히기나 할까? 반신반의하는 나를 다독이며 남편은 피라미 채비를 마쳤다. 귀찮아하는 것처럼 미적거렸지만, 실은 설렜다. 핑크 낚싯대를 오랜만에 잡으니 미소가 입가에 옅게 퍼졌다.
- 그래, 까짓 거 그냥 잡아보자. 일단 던져나보고 생각하자.
어디, 인생이라는 게 정답이 정해져 있었던가. 획일화된 정답이 없기 때문에 삶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것이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니까. 그래 던져볼게. 남편이 본인의 낚싯대를 정비하는 사이 바로 캐스팅을 했다. 휘리릭. 피라미를 잡기 위한 떡밥이 가득 들어있는 통을 잡고 던졌는데, 어?! 이거다! 내가 좋아하는 손맛! 일반적인 피라미들의 파르르 탁탁하는 간드러진 입질과는 조금 다르게 묵직했지만, 이 느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거세게 내려가는 물살을 거슬러 묵직하게 파르르 움직이며 딸려오는 피라미를 건졌다. 낚싯대 끝이 잔뜩 구부러지고 들어 올리는데 희한하게 묵직했다. 뭐지? 피라미 맞아?
첫 수는 세 마리였다. 피라미 낚시할 때 남편과 나는 주로 도깨비 채비를 하는데, 이 도깨비 채비는 바늘이 7개가 달려있다. (그래서 많이 잡힐 땐 5마리 이상 잡히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2-3마리 이상 잡히는 경우도 많다.) 처음부터 3마리라고? 그것도 이렇게 빵(두께, 크기)이 큰 것이? 비가 와서 찝찝하고 땀이 자꾸 나서 짜증 날 법도 한데, 처음부터 바로 잡히기 시작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이 끊임없이 넣으면 잡혔다.
남편은 나와 똑같이 캐스팅을 하는데 계속 잡히지 않았다. 왜, 난 안 잡히고 당신만 많이 잡지? 비법이 뭔가요? 오랜만의 낚시라 신난 남편은 살짝 시무룩했다. 반면 계속 넣으면 잡히는 바람에 정신없이 캐스팅 - 잡아 올림을 반복하는 나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비 오고, 땀범벅에, 씻지 못해서 찝찝한 모습이라 행색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기분만큼은 너무나도 상쾌했다.
초록 초록한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 그 나무를 따라 늘어선 길 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비도 옅게 내리고 물 냄새와 꿉꿉하고 끈적한 비바람이 땀을 더 많이 나오게 만들었지만, 그건 전혀 낚시하는데 방해되지 않았다. 낚싯대를 잡고 도깨비 채비를 물에 퐁당 담그고 박자에 맞춰 탁탁 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콱 물어 파르르 떠는 피라미들이 연속으로 잡히는 이 환희의 순간을 누가 방해할까!
- 지금 눈이 반짝반짝 막 빛나.
낚시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보던 남편은 결국 채비가 걸리고 말았다.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더니 이내 채비를 모두 정리해버렸다. 그는 이제 아내의 서포터가 되겠다며 서있었다. 자기가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더 행복한 것 같다며, 한 발자국 양보해주고는 잡는 족족 열심히 피라미를 빼주었다. 오랜만에 김태공과 서포터의 조합이었다. 잡고, 빼고. 잡고, 빼고. 낚싯바늘에 걸린 건 피라미만이 아니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무언가는, 자꾸만 웃게 만들었다. 비 맞으며 하는 피라미 낚시는 정체되어있던 나를 위로했다. 히죽히죽, 얼굴에 자꾸만 웃음꽃이 피었다. 남편은 피라미를 계속해서 잡아 올리는 모습이 그 어떤 날보다 신나 보인다고 했다. 오히려 웃고 있던 나를 보며 더 좋아했다. 계속 퍼지던 웃음은 피라미와 어우러져 살아있는 음악이 되었다. 이 음악에 흠뻑 취해 열심히 피라미낚시에 푹 빠져있었다.
- 거봐 잘하잖아. 잘하고 있다고, 지금도 충분히 너무나 열심히 잘하고 있다니까.
투박하지만 소탈하고 따스한 위로가 달큼한 과육을 한껏 베어 문 것처럼 몸 안 곳곳에 향기롭게 퍼졌다. 이 행복은 투덜투덜거리던 것마저 잊어버리게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하루 감지 못한 머리는 흘러내린 땀에 범벅이 되어 엉겨 붙었고, 아기 먹이고 재우고 하다 보니 목 늘어나고 색 바랜 티셔츠는 축축했다. 몰골은 정말이지... 낚시하면서 찍었던 사진 중에선 최악이었다. 하지만 우린 초심을 찾았다. 남편이 찍어준 사진 속, 영상 속의 나는 한껏 신나 있었다. 장난감을 처음 선물 받은 아이의 눈빛이 이랬을까, 좋아하는 캐릭터 한정판 굿즈 샀을 때의 눈빛이 이럴까. 땀과 빗물로 얼룩진 모습이었지만 내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딱 한 시간, 한여름밤의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우린 잡은 물고기를 들고 돌아왔다. (잡은 물고기는 늘 그렇듯 시어머니의 매운탕 재료가 되었다.)
- 이거야! 이거... 내가 너무너무 그리워했던 거, 잊을 수 없는 손맛
육아를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잘 키우고 있는 게 맞을까. 이대로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 제대로 하고 있는 건 맞는 걸까. 자기 합리화에 빠져 아이를 위험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나를 점점 수렁에 밀어 넣었다. 그런 생각이 짙어질 무렵 떠난 이번 낚시는 나를 다시 끌어올렸다. 그간의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들은 두툼한 피라미를 낚는 동시에 사라졌다.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가장 좋아하는 걸 잃어버리지 않는 것. 좋아하는 걸 조금이라도 꼭 해보는 것.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시간이었지만 잠에서 막 깨어난 아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며 꼭 껴안았다. 사랑해, 아들!
그러니까... 난 낚시할 때 참 행복하다. 소박하지만 기특한 피라미의 입질을 사랑한다.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에 치여 놓고 있었던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우리만의 서사를 좋아한다. 우리의 취미생활로 인해, 아들과의 일상도 왠지 더 즐거워지기를. 비 오는 날, 피라미 낚시로 낚아본 찐 행복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졌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아기자기한 것을 사랑하는 핑크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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