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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Jan 01. 2023

바닥까지 내려가야 알 수 있는 것

인생도, 낚시도 바닥을 치고 올라오나 봐요



인생에서 바닥을 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어떤 일을 해도 풀리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그런 것들이 반복된다면 우울에 빠져든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바닥을 친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를 안고 있다. 동시에 이 바닥을 치고 다시 한번 높은 곳으로 도약을 꿈꾸는 희망을 내포한다. 그럼 낚시는 어떨까?


내가 사랑하는 계절, 겨울. 이 눈부시게 시리고 추운 날씨엔 얼음낚시가 재격인데! 오랜만에 남편과 얼음낚시를 떠났다. 얼음낚시에서 중요한 건 바닥을 치는 일이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물고기가 제일 많이 잡히는 부근에 멈춰서 조금씩 조금씩 물 위로 올라오는 것. 잘 잡히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구간도 있다. 인생도 어쩜 이 얼음낚시와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남편과 단둘이 갔던 빙어낚시는 대략 3년 전. 그리고 잠깐 아이를 맡겨놓고 다녀온 건 2년 전. 시댁 식구들과 다 같이 가느라 정신없이 잡았던 건 1년 전이다. 가족이 모두 모여하는 것이 재미있긴 했지만, 남편과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거나 하는 여유는 없었다.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은 시간도 필요한데, 아이와 함께 함으로써 둘의 시간은 사치다 생각하며 지내고 있기에 이 시간이 너무 그리웠다.


남편은 올해는 가족과 보내는 것도 좋지만 둘만의 시간을 좀 더 가져보자고 하더니, 덜컥 시즌 초 얼음낚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12월 23일, 극 시즌 초에 우린 낚시를 하러 떠났다.(* 빙어낚시는 12월 중순 이후부터 시작됨. 23일이면 극 초반임)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붙은 우리의 아지트(?)


우리의 아지트, 시댁 바로 근처에 있는 이곳은 늘 겨울이면 떠올리는 곳이다. 처음 남편과 빙어낚시를 시작하고 세 번째로 갔던 곳인데,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난다. 남편 친구들과의 첫 빙어낚시 장소이기도 했고, 남편 친구분과 호흡을 맞춰가며 빙어를 낚았던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빙어낚시를 떠올리면 외롭게 하는 낚시라기보다 사람들과 즐기고 웃고 떠들며 추위와 싸워가며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 덕분이고, 남편 친구분들의 배려 덕분이겠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때 남편이 텐트를 치러 먼저 들고 내려갔다. 혼자 간 남편이 힘들까 봐 나 역시 빠르게 준비해 같이 내려갔다. 전이면 텐트를 다 친 후에 내려갔을 텐데 이젠 척척. 남편이 텐트를 고정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 나는 안에 들어갈 짐을 들고 내려와 정리를 한다. 처음 낚시를 취미로 삼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본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남편이 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혼자 낑낑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서둘러 도와서 얼른 준비를 끝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행동으로 발현되어 남편의 옆자리를 비우지 않게 채워주고 싶었다. 그렇게 같이 텐트를 치니 금방 끝났다.



넣자 마자 소식이 와야 하는데... 왜?


안에 들어가 남편과 앉아있을 매트를 깔고(매트 깔지 않으면 얼음의 한기를 그대로 느껴야 되기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 남편이 만든 수제 도구들을 나란히 꺼내놓고, 빙어 낚을 채비를 하나씩 하나씩 준비한다. 남편이 빙어 덕이를 꺼내면 낚싯줄을 쫙 펼쳐서 덕이를 끼울 수 있게 서포트한다. 작은 바늘 하나에 덕이를 하나씩 하나씩 끼우고 꼬리 부분을 쪽가위로 잘라주면 끝! 이제 실전만이 남았다.


빙어낚시를 할 때 보통 낚싯대를 수동으로 하는데, 어떤 경우엔 자동으로 하거나 또는 반자동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린 모두 다 해봤다. 번거롭고 귀찮지만, 낮은 수심으로 갈 땐 수동으로 하는 편이다. 아기자기한 빙어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 수 있어서 선호한다. 까앙까앙~ 릴이 감기며 내는 그 소리가 잦아들면 그 끝엔 낚싯바늘에 걸려 파르르 떨고 있는 빙어를 볼 수 있다. 톡톡 파르르 파르르 톡톡 파르르 파르르 일정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빙어의 손맛은 추위를 잊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은 빙어낚시를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텐트 안에서 남편이 보링비트로 신나게 구멍을 뚫었다. 다행히 얼음이 30센티가 넘었다. 두껍게 얼어붙어 단단한 얼음 위에서라면 빙어낚시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이번엔 처음부터 잘 잡힐 것 같은. 왠지 이번엔 첫 낚시가 굉장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설렘을 뒤로하고 남편은 이번에 새롭게 구입한 빙어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낚싯대 보관이 편리하게 되어있는 신상인데, 초릿대가 굉장히 낭창낭창한 것이 특징이었다. 항상 낚시를 내가 먼저 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남편. 그런 남편과 함께 하는 낚시는 육아와 살림으로 지쳐있던 나를 힐링시켜 준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소식이 없지?


남편이 육아하느라 늘 뒷전이 되어버린 나를 되찾으라며, 낚싯대를 내밀었다. 낭창낭창하게 움직이는 초릿대가 왠지 믿음직해 보였다. 낚싯줄 끝에 매달린 추 2개가 어서 빨리 넣어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 넣어보자! 드디어... 빙어를 잡는구나. 1년 동안 기다린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촐싹거리는 초릿대를 얼음구멍 쪽으로 가져갔다. 두툼하게 얼은 얼음의 두께를 보고 추위를 실감하며, 추를 내리기 시작했다. 낚시에서 바닥을 치는 행위는 본격적으로 즐기겠다는 신호이다. 그렇게 나는 빙어 낚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무거운 추가 툭 하고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자 다시 살짝 릴을 돌려 낚싯줄을 위로 올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토록 기다리던 빙어의 기특한 입질이 시작되겠지. 그럼 난 바닥을 치고 탁 들어 올리며 빙어의 입질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답게 릴을 감아올릴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빙어낚시는 시작될 것이다... 는 개뿔?! 보통 빙어낚시는 한 번 넣으면 거의 첫 챔질에 올라오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없다. 반응이 없다. 완벽한 채비에 완벽한 얼음두께인데, 완벽하게 빙어만 없었다. 


내가 바닥을 안 찍어서 그런가? 제대로 바닥을 치지 않아서? 의아했지만 다시 한번 더 바닥을 쳐봤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높이를 조절해보고 기다렸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빙어는 입질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아... 느낌이 온다. 이건 폭망... 아니 진짜 완전 망했다. 빙어 시즌 초입이라 아직 빙어들이 오지 않았나 보다. 애써 현실을 외면해버려야 했다.


- 여보, 없어. 입질 하나도 없어. 바닥까지 내려갔는데 아예 없어. 어떻게 하지?

- 그럴 리가. 이렇게 완벽한데!?

- 아놔... 첫 끗발이...

- 다시 한번 바닥을 쳐봐.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남편과 나는 잠시 버퍼링 상태가 되었다. 뭐지?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시즌 초입이긴 했지만 우리의 아지트는 배신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현실은 뒤통수를 호되게 맞았다. 남편은 보링비트를 들고 텐트에서 나가 구멍을 7개 더 뚫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한다.


- '아... 바닥을 쳤는데, 진짜 바닥이네. 빙어 어디 갔니. 딱 기다려라, 0마리 회복하러 온다.'


그러니까, 우리의 올해 첫 빙어시즌 낚시는 꽝... 이라는 거. 조황은 바닥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음 주말에 다시 아지트에서 빙어낚시를 할 이유가 생겼다. 역시, 바닥을 쳐야 더 높이 뛸 수 있어.


* 지역마다 다르고, 포인트마다 다릅니다! 잘 잡히는 곳은 시즌 초에도 잘 잡힌답니다. 저희가 자주 가는 아지트는 아직 소식이 없지만, 곧 왕창 잡았다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볼래요! 2월까지 아자아자^^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경력의 글쟁이. 그리고 블로그, 브런치 운영하면서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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