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ce Feb 27. 2024

오랜 간병의 풍경

한동안 나는 자주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어린아이 같이 자주 목놓아 울었고, 이제 더는 못 하겠다며 엄마와 동생에게 떼썼다.
그냥 이야기를 하면 자꾸 듣지 않으니 생떼를 쓰게 됐다.

그때마다 둘은 난감해했고, 때론 피했고, 안타까운 듯 보였다. 얼마 전 간병인을 두고 자유를 얻은 나는 대구에 가서 다시금 동생에게 아빠를 어떻게 돌볼지 방법을 강구하자고 말했다. 어렵게 꺼낸 말에 세 번이나 못 들은 척 다른 소리를 해서 "야!" 하고 불러서 다시 대화했다.

어려운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동생은 잠시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그 후엔, 마치 어색하지 않기로 약속한 사이처럼 서로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고 무의식 중에 서로를 달래려 애쓴다.

(그런 묘한 기분과 상황이 흐른다)
늦게까지 함께 술자리를 가졌고, 다음 날이 됐다. 동생이 담배를 끄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나는 간병, 돌봄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바뀌는 건 없기에... 적어도 아직은.......


-
그날엔 또 다른 도 있었다. 이모부를 만났고,

애초에 와상환자를 집에 왜 모시고 왔냐는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나는 당황했다.

 "그러니까 그게.. 제가요... 처음에는... 효도하려 했는데요. 6개월만 집에 모시고 바로 다시 대구 쪽 병원으로  모셔서 동생에게 맡겼는데요... cre, vre감염이 되셨어요....."

그리곤 눈치 빠른 막내이모가 내가 할 변명을 이어줬다.


장기요양이 어쩌니 저쩌니... 이 장황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나.

그리고 왜 또 반복하나.
 더 이상 변명을 하거나 과정을 설명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 이모부는 해도 들으실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저 아프기만하고, 시간에 맡겨 사그라들길 기다린다.

(게다가 목소리도 크시고, 얼얼해진다)


-
내 주치의가 있는 병원에 들렀다.

진료실에 앉아마자  "힘들어서 왔어요."하고는

갑 티슈 몇 장 안 남은 걸 다 뽑아 쓰며 속시원히 울었다. 그러면서  "간병의 짐을 덜어보려 노력했지만 바뀔 수 없고, 다들 각자의 이유로 부담스러워하는데 자꾸 이야기 꺼내는 제가 이제는 나쁜 사람 같아요. 제가 더 버텨주기를 바라는데 그걸 바라는데, 이 돌봄이 공공연하게 저의 일인 양 되어 버린걸 자꾸 바꾸려 하니 어려운 것 같아요. 차라리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는

펑펑 울었다. "경단녀로 계속 가는 것도 두렵고,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두렵지만 그건 미래에 맡겨두고 그냥 아버지를 제가 돌아가실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구나. 그걸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구체적인 속마음도 다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다소 당황하셨고, 나의 가족들과 또 현실에

화도 보이셨는데, 안타까움에서였으리라. 

늘 잘 되길 바라셨으니까.
아주 현실적인 솔루션을 주셨고, 힘든 문제고 듣기 싫은 문제지만 그래도 가족과 계속 대화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뜻대로 안 되더라도 타협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진료실을 나오며 속이 펑 뚫린 듯 평안한 기분을 느꼈다. 이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필요하다.

-

우선은 간병하는 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애쓰지 않기로 하니 오히려 잡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가 곧 돌아오시면 또 타이트하게 살고,

내 시간을 맘대로 못 쓰겠지. 현실을 받아들여도

내 시간을 마음대로 못 쓰는  여전히 두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