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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비 Jan 17. 2022

네 멋대로 해라

게으른 엄마의 교육 철학


나는 그리 교육에 열성적인 편도 아니고, 특히 미취학 아동은 놀아야 한다는 철칙을 가진 아주 게으른 엄마다. 내가 적용한 방법은 우리 아이가 예민하지만 순한 기질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래 내용은 이 부분을 충분히 감안하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원칙 #1.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활용한 놀이와 교육의 접목


아기새(아이의 애칭)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자동차, 그리고 게임이다.

책에 흥미를 붙여주기 위해 구입한 것이 자동차와 관련된 팝업북이었고, 세계지도를 익히는 것도 자동차를 활용한 방법이었다.


팝업북은 자동차 발명 이후의 발전 역사와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책인데, 자세하면서도 팝업 특유의 관심 유발이 먹혀서 글자를 익히기 전부터 꽤 오래 봤다. 팝업북이라 아닐 것 같지만 텍스트량이 상당해서 덕분에 한글을 떼기 전까지 읽어주느라 목이 아팠었다.

그다음은 자동차 브랜드와 국가를 접목시킨 세계지도였다. 이건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벽에 붙이는 세계지도에 엄마의 DIY가 조금 들어간 작업이었다. 


1.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를 엑셀에 정리, 해당 브랜드 로고 이미지를 검색해서 매칭 시킨다. 

2. 프린트하여 코팅지로 코팅한다.

3. 코팅된 종이 뒷면에 양면 스티커를 붙여 스티커를 만든다.

4. 아이와 함께 지도에 스티커를 붙여본다.


실제 아이 방에 붙인 세계지도와 DIY 스티커. 처음 만든 스티커 크기가 너무 커서 작게 줄여 다시 만들었는데 떼는 걸 극구 반대한 아이 덕분에 스티커가 두 개씩 붙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놀이 및 활동은 세계 국기와 나라별 간단한 정보가 모인 책을 보는 것이었다. 유치원에서 대륙과 대양에 대해 배우는 시점에 맞춰서 책을 구입했다. 어느 대륙엔 어떤 나라들이 있고 그 나라 국기는 어떻게 생겼고, 세계 지도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어떤 것들이 유명한 지 등을 함께 얘기했다. 색 순서만 다르거나 좌우 상하만 다른 헷갈리는 국기만 보고도 어느 나라인지 기가 막히게 맞추는 아이들만의 신비한 능력에 감탄했다.



그러니까 아이의 관심에 따라 옮겨간 공부 or 놀이는 이랬다.

자동차 -> 세계지도 -> 국가



다른 예로는 아이의 독특한 한글 떼기를 들 수 있다. 아기새에게 한글을 떼게 한 것은 게임이었다. 책도, 한글 공부나 학원도 아니었다. 한글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 외에 집에서 따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이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우고 온 것에 대해선 복습이나 예습을 하는 대신 가끔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주는 게 내가 하는 전부였고, 그 외 시간에는 놀게 했다. 그러면서 즐긴 것 중 하나가 바로 레이싱 게임이었는데, 자동차와 게임이라는 아이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즐기면서 부가적으로 한글까지 깨치게 하는 효과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한글을 한 글자씩 느리게 읽는 것에 짜증을 내더니, 언젠가부터는 꽤 긴 문장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읽는 속도도 향상되었다. 지금은 동화책 한 권 정도는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공부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원칙 #2. 책은 상이지 벌이 아니다.


아이에게 책을 억지로 읽게 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8시에 자면 네가 좋아하는 책 한 권 읽어줄게" 하며 상품으로 내걸었다. 이렇게 하자 "8시 넘어서 자면 책 못 읽는다 했지? 오늘은 책을 안 읽고 그냥 잘 거야"라는 말에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책은 아이가 한 권, 엄마가 한 권 골라서 두 권을 읽었다. 한 권만 읽고 싶을 땐 함께 상의해서 책을 골랐다. 아이의 재미와 엄마의 의도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다행히 요즘 나는 밀리의 서재를 통해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서 이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이에게 엄마는 책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 같다.






원칙 #3. 교정해야 할 것과 존중해야 할 것의 구분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냐는 노래가 있었다. 그때는 맞아, 맞아하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아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는 건 아니지만 젓가락질을 잘하는 것은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상에서 밥을 먹을 때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반찬을 흘리거나(특히 콩자반이나 멸치 등) 함께 먹는 메인디쉬를 옮겨 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다른 사람을 한참이나 기다리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남편과의 대화에서 도출한 결론이다. 이렇게나 불편하고 민폐니 우리 아이는 젓가락질 연습을 잘 시키자라고 굳게 다짐하던 남편. 밥상에서의 예절과 젓가락질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다. 

편식은 그러려니 하고 있다. 어렴풋 기억이 나는 어린 시절 억지로 당근과 콩을 먹었던 트라우마가 남아서, 아직도 콩과 당근은 되도록 입에 대지 않는 어른으로 자란 덕분이다. 내 아이에겐 강요하지 말아야지, 크면 먹게 되겠지, 안 먹어도 그만이지 않은가 하는 마음가짐으로. 

같은 맥락에서 취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중해주고자 한다.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만화, 인형, 그 밖에 기타 어떤 것을 좋아하든지 법에 저촉되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무언가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존중하고 지원해주고 싶다. 아직도 게임한다고, 단 걸 좋아한다고 구박받는 철없는 엄마의 한풀이이기도 하다. 언젠가 유치원 학부모 참여 수업에서의 일이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두 가지 선물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하나는 소리가 나고 불이 들어오는 장난감 칼이었고, 다른 하나는 분홍색 보석이 박힌 가방과 예쁜 캐릭터 스티커였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칼을, 여자 아이들은 가방과 스티커를 선택했다. 아기새는 당당하게 가방과 스티커를 선택했다. 아기새는 그 후로 얼마 간 그 가방을 몸에서 떼지 않고 메고 다녔다. 편견 없이 키웠다며 엄마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사실 난 별로 한 게 없다. 


그 당시 아기새의 실내 복장



아직도 아기 때부터 좋아하던 토끼 모양 애착 인형을 끌어안고 자고, 분홍색 토끼 베개를 베고 자지만 아기새는 씩씩하게 레이싱 게임과 격투 게임을 즐기고 레고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냥, 아이가 좋아하면 갖게 해 주고 '다 커서 그런 걸', '남자가 그런 걸' 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과거 엄마가 나에게 했던 식의 제한을 두지 않은 것뿐이다. 좋아하는 것에는 나이, 성별, 그 어떤 것도 관계없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그렇게 자라주고 있다. 복슬복슬한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멋진 형아로.






원칙 #4. 규칙과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규칙과 약속은 꼭 지킨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한 약속은 아주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고서는 꼭 지키고, 못 지키게 됐을 경우에는 아이에게 사과하고 충분하게 설명하여 양해를 구한다. 그리고 한 번 정한 규칙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철석같이 지키게 하면서 엄마 아빠가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저녁 8시 이후에는 간식을 먹지 않는다 라는 규칙이 있다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규칙을 지켜야 아이도 의구심을 가지지 않고 규칙을 지킬 수 있다. 아이에게 하루 한 권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면, 어른도 하루에 한 번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엄마는 휴대폰, TV만 보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그걸 순순히 따를 아이는 없을 것이다. 아이도 작지만 사람이고 보는 눈과 생각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가르치고 싶은 것.


삶에는 국어, 영어, 수학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경제 상식이나 노동법, 인문학적 소양 등이 기본 과목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선 국영수를 어느 정도 갖춰야 가능한 것도 맞지만. 예체능 취미도 한 가지 가졌으면 좋겠지만 하고 싶은 게 아직은 없는 모양. 언젠가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요즘은 다시 시들해졌다. 아직 제 몸 사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만 6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언젠가 생길지 모르는 아이의 취미생활을 지원해주기 위한 마음의 준비는 확실히 해야지.



그래 봤자 아직 만 6년이 조금 지나, 곧 초등학생이 되는 어린이를 키우는 예비 학부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상상하고 다짐했던 것들이 있었고 고맙게도 아이는 그걸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하는 사람으로 자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 앞서 옳고 그름에 대해 한 번은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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