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비 Aug 18. 2022

언젠가 날아오를 아기새를 위해

하나씩 독립하는 나이, 여덟 살.

나는 예민하다. 


감각적으로 많은 자극을 받는 것을 꺼리며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일을 하거나 살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수많은 자극과 돌발상황이 생기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연하게도 갑작스레 발현된 게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예민한 아이였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상했다. 우리 아이는 우리처럼 예민한 아이로 태어날 거라고.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아기새는 천천히 자랐다. 갑작스러운 변화나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에 늘 어려움을 겪었다. 그걸 알았기에 육아 경험치를 차근차근 쌓으며 대처방법도 많이 생각하고 시도했다. 미지근한 것부터 서서히 뜨거운 것을 만지게 해서(물론 너무 뜨겁지 않게) 위험한 것을 알게 하거나 친정 강아지와 눈인사를 하고 멀리 떨어져서 산책을 하다가 만질 수 있게 되고 한 침대에 잘 수 있게 되는, 느린 사건 전개를 말이다.

말귀를 알아듣게 된 이후로는 이벤트(ex. 입학식 졸업식, 여행, 집에 손님이 오는 것 까지도)가 발생하기 전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함께 상상하고 해야 하는 일, 그때 느낄 아이의 예상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정작 이벤트가 시작되면 당황하고 긴장한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일이 잦았다.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도 첫날부터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는 우리 아이가 유일했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던 날엔 그러려니 했지만 학교까지 이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았고, 그렇게 우리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제일 처음으로 이름을 기억한 어린이가 되었다. 엄마인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지만 1학년만 여러 해 맡으신 담임 선생님은 매년 한 명 정도는 있는 일이라며 웃으셨다. 몇 백 명 중 그 한 명이 우리 아이니까 그렇죠... 하...


학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라서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준비물을 챙기고 가방을 싸고 학교에 오가는 것이나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까지, 어린이 혼자 해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결심했다. 육아의 최대 목적이라는 독립, 초등학교 입학으로부터 시작해보기로.






이번에도 나는 천천히 접근하기로 했다.


1. 화장실 문제


소변은 혼자 해결하는 법을 진작에 깨달았지만 대변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깔끔한 뒤처리가 힘들기도 하고 변기와 화장실에 단둘이 남는다는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엄마랑만 있을 때(=아빠 없을 때) 화장실에 가야 했었던 아기새는, 스스로 하는 대변 처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바로 시작했다. 휴지를 몇 장 뜯어서 잘 접어 처리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다음날부터 아기새는 한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은 엄마 아빠를 찾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고 있다.




2. 등하교 문제


집에서 학교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를 한 학기 내내 반복했다. 추운 초봄부터 시작해서 장마를 거쳐 한여름 무더위가 이어지기까지 나는 아침과 오후 꼬박꼬박 아기새를 배웅하고 마중했다. 등하굣길을 오가는 넉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끔 물었다. 길은 알겠지? 하고. 아기새는 300미터 남짓한 길을 오가는 게 무서운 건 아니었다. 엄마가 곁에 없을 때 혹시 마주칠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거였다.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쉬가 마려우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실제로 나랑 그 길을 오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전에 가방에 휴대폰이 있음을 계속 상기시켰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면 되고, 엄마가 받아서 당장 뛰어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방학을 앞두고 결정적인 이벤트가 생겼다. 방과 후 수업이 방학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학교 가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그리고 학교에 있는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엄마가 이 무더운 날씨에 한 시간 반 간격으로 그 길을 네 번이나 오가야 한다는 사실을 끝없이 어필했다. 실제로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엄청 더운 날들이 이어졌고, 학교에서부터 집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무더운지 피부로 와닿고 있었기에 아이는 엄마가 많이 덥고 힘들겠구나 하는 점을 공감했다.

그리하여 방학을 2주 앞둔 시점부터 방학 대비 등하교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 번째 주는 횡단보도까지 데려다 주기. 횡단보도는 학교 가는 길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아기새가 혼자 길을 건널 때의 그 벅차던 감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재미있다. 다른 아이들에 섞여 길을 건너고, 모퉁이를 돌아서 엄마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던 아기새. 그리고 그날 하굣길에 엄마를 보고 환히 웃으며 씩씩하게 길을 건너오던 모습까지. 만약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는 아기새가 뛰거나 장난을 쳤다면 나는 여기서 훈련(?)을 멈추고 계속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를 택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좌우를 보며 천천히 손을 들고 건너는 아이는 아기새가 유일했다는 것이 이 훈련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둘째 주는 아파트 정문까지였다. 아기새는 그마저도 무사히 해냈고, 그 주가 끝나기 하루 전날, 목요일부터 집에서 혼자 나가서 혼자 돌아왔다. 물론 그 2주 동안 동 출입구와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연습도 했다. 자신감도 붙어서 방학 때부턴 혼자서 다니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선언하는 아기새를 보며 뿌듯해졌다. 반대로 집에 혼자 있는 것은 가능할까. 갑작스레 '엄마가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는 동안 혼자서 집에 있을 수 있겠냐'며 물었는데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하기에 집에 혼자 있기까지 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말이다.




3. 혼자서 잠자기


아기새는 아가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랑 커다란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빠는 아기새 방의 싱글 침대로 밀려났었다. 아기새를 재우고 나와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엄마~ 하고 찾는 아기새 때문에 다시 방으로 불려 들어가는 일은 흔했다. 아빠는 침대를 잃었고, 엄마는 자유를 잃은 이 상황을 얼른 타계하고 싶었다.

가장 무서운 어둠을 제거하기 위해 아가 때 수유등 대신 사용하던 브라운 등을 꺼냈다. 적당한 밝기로 세팅하고 중간에 마실 물 한 컵, 그리고 아기새의 동물 친구들 인형을 정리하면 잘 준비 완료다. 처음에는 중간에 나와 엄마 아빠의 안부를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점차 줄어들고 아예 안 나오고 금방 잠드는 일도 생겼다. 

온전히 밤 자유시간이 생긴 엄마는 행복하지만 아빠의 바람(부부 침실에서 잠들기)은 아직 요원하다.

이제 이걸 자기 방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일단 여기에서 만족하고자 한다.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실 때까지는(아기새의 방엔 에어컨이 없다).




4. 혼자서 편의점 가기


과자가 먹고 싶은 아기새는 혼자서 편의점 가기도 도전했다.

편의점은 아파트 정문 옆에 위치해서 학교 가는 것보다도 훨씬 가까웠지만 낯선 어른을 상대해야 한다는 장애물이 컸다. 먼저 엄마와 둘이 편의점에 가서 먹고 싶은 과자를 골랐고, 아기새는 직접 본인 손으로 카드를 들고 계산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엔 혼자 올 수 있겠어?' 하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단다. 며칠 후에 먹고 싶은 과자가 생긴 아기새는, 무섭다는 이유로 편의점에 가길 주저했다.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지. 예민하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니까.

그러더니 어제는 '내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과자 사 올래' 라며 다짐을 하더라. 중간에 또 철회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서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 내일 아침에 엄마가 카드 줄게." 하고 대답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카드를 찾는 아이의 가방에 잔액이 많이 남지 않은 체크카드를 넣어줬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를 보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웃음이 났다.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왔다. 편의점과 마트까지 돌았는데 원하는 과자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 있는 어른한테 물어봤냐고 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입은 삐쭉삐쭉,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엄마가 도와주는 수밖에. 노력이 가상하여 인터넷으로 원하는 과자를 주문해줬다. 시도했고 실제로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공이니까. 

언젠가는 원하는 과자 한 개면 엄마의 심부름도 해주지 않을까.





이걸 다 해결하고 보니 앞으로 남은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스스로 씻기, 버스 타기, 밥 차려먹기, 뭐 이 정도일까. 이런 건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천천히 진행해도 문제없으니 당장 걱정은 많이 덜게 되었다.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 하는 도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1.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것

2. 다른 이의 불편을 공감할 것


이 두 가지였고, 다행히 공감능력이 뛰어난 덕인지 필요가 잘 맞아떨어진 덕인지 어렵지 않게 홀로 서는 연습을 시작해서 차근차근 해내고 있는 아기새를 응원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새긴다. 육아는 아이를 독립시키기 위해 한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