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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 Jul 14. 2019

#3: 아―내사. 절로 절로 살고 싶소.

진도 화가 나절로 선생

화가 나절로 선생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산다. 폐교된 상만초교를 개조해 학교엔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고, 학교 옆엔 작은 집을 지어 작업실을 꾸몄다. 나절로 미술관을 한번에 찾기란 쉽지 않다. 상만리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길가에서 쑥 들어가야 있는데, 표지판은 잘 눈에 띄지 않고 애써 찾아야만 입구가 겨우 보인다.  


나절로는 이름이 아닌 호(號)다. 본명은 이상은이다.

"내 방에는 시계가 없소.
내 방에는 거울이 없소.
내 방에는 달력이 없소.
시계가 없어 초조함을 모르오.
거울이 없어 늙어가는 줄 모르오.
달력이 없어 세월 가는 줄 모르오.
아―내사. 절로 절로 살고 싶소."

이 시를 19세 때 썼다. 당시 소설가 이병주가 우연히 이 시를 읽고 "정말 자네가 쓴 게 맞나? 앞으로 자네 호는 '나절로'라고 하게."라고 해서 나절로가 됐다.

평일에 찾아간 나절로 미술관은 문이 잠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담쟁이 덩쿨로 뒤덮인 미술관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겨울이었지만 소박한 정취가 느껴졌다. 그러다 잠시 작업실에서 나온 나절로 선생을 마주쳤다. "어찌 오셨소." "그림 보러 왔습니다." "차 한 잔 하고 가지요."


학교 건물 바로 옆에는 나절로 선생이 직접 지은 토담집이 하나 있다. 집 앞에 작은 연못도 있다. 이곳에 잠시 앉아 있으면 선생이 직접 원두커피를 내려다 준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비어있는 방 하나는 작고한 이청준 소설가가 말년에 가끔 들러 묵었던 곳이란다.

나절로 선생은 미술을 정식으로 공부한 미술학도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후회한다고 했다. "틀에 박힌 걸 배우다 보면 틀에 박힌 것밖에 그리질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은 지금 왼손으로 그린다. 일부러 서툴게 그린다. 선생의 작품은 주로 돌가루를 갈아서 만든 것들이다. 돌을 가져다 재료로 만들고, 그걸 석판에 채색한다. 때로는 돌가루 대신 커피가루, 분필가루로도 그린다. 이 '모자란 그림'들이 나절로 미술관에 전시돼있다.

"이제 그림을 보러 갈까요." 느긋한 걸음으로 미술관으로 향한다. 미술관은 과거 7개 반을 3개의 공간으로 재구성해 각 실을 꾸몄다.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고, 각 실 한 가운데는 누구나 편히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소파와 탁자를 놓았다. 정해진 관람 시간도 없고, 커피를 들고 미술관을 돌아다닌다고 주의 주는 이도 이 곳엔 없다.

작품에 그려져있는 것은 꽃과 나무, 여자와 어린아이 등이다. 세련되지 않고 투박하다. 나절로 선생은 직접 몸으로 검증하지 않은 붓질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쓸 수 있는 한 줌의 언어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절로 미술관은 나절로 선생을 꼭 닯았다. 어디에도 얽히고 싶지 않아하는 자유로운 성품, 그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말하겠다는 담백한 풍경. 선생의 배웅을 뒤로 하고 미술관을 나선다. 한 바퀴 걷고 나오니 추운 겨울은 이제 다 지나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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