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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 Jul 22. 2019

#4: 3등급 한우만 골라 파는 남자

충남 아산 변동훈 씨

변동훈 네이처오다 대표가 운영하는 축산물 쇼핑몰엔 1등급 한우가 없다. 등급 기준으론 거의 '탈락' 수준인 3등급만 판다. 1등급 '투뿔(1++)' 한우를 가장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가 이 '3등급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안티(anti) 마블링'을 알리기 위해서다. 마블링은 한우 등급을 매길 때 절대적인 기준. 이 마블링 때문에 많은 농가들이 소의 본래 먹이인 풀이 아니라 고열량의 곡물사료를 과하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저지방 한우'다. 변 대표가 파는 한우는 마블링이 많지 않다. 대신 넓은 공간에서, 좋은 사료를 먹고, 건강하게 자란 소다.

이렇게 키운 유기농 한우는 한국식 분류 기준에선 대부분 3등급을 받는다. 하지만 오히려 지방이 적당하게 분포해 육질이 곱고 연하다(등심 기준)는 게 변 대표의 설명이다. 유기농 한우 사골과 반골고리, 마구리, 잡뼈를 고아 만든 곰탕도 판다. 기름기가 적어 국물이 담백하고 구수하다. 그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며 "쇼핑몰 매출도 2013년 오픈 첫해 500만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작년엔 3억원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유기농 소고기를 드셨나요? 생명과 자연을 살리셨습니다!"


3등급 판정을 받은 유기농 한우만 판다는 게 특이합니다.
사실 결혼 전까진 농사나 축산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전공은 경영학. 마케팅 석사까지 마쳤고요.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서울보다는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습니다. 마침 장인께서 충남 아산에서 친환경 농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8년 전 처가가 있는 아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게 관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서울 분이 지방에 자리잡으신다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예. 내려와서 조금씩 농사를 지었는데요. 제 농업의 역사를 말하지면 꽤 깁니다(웃음). 실패의 역사이기도 해서요. 처음엔 마 20평부터 시작해서 작년엔 유기농 고구마 900평 농사를 지었습니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는 일손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서울 청년들을 상대로 '고구마 원정대'를 모집하기도 했지요.

'고구마 원정대'라니 재미있네요. 농사는 성공적이었나요.
쉽지가 않더라고요. 고구마 농사는 태평농법이라는 것을 활용했는데, 사실 고구마 줄기보다 잡초 줄기가 더 많았습니다. 유기농으로 짓다 보니 제초제를 쓰지 않았거든요. 비닐도 6개월이면 녹아서 분해되는 바이오 비닐을 사용했더니 잡초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잡초가 고구마 밭을 뒤덮는 사태가 벌어졌어요.(웃음)


'마블링'에 의심 품었던 서울 청년


유기농 축산엔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된 건가요.
농사를 짓다보니 친환경 비료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습니다. 원래 퇴비로는 가축 분뇨가 최고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기농 축산 쪽도 살펴보게 됐습니다. 농사 부산물(볏짚 콩부산물 풀사료)를 한우에 먹이고 그 분뇨를 발효시켜 논밭에 퇴비로 다시 돌려주는 방식이지요. 마침 장인어른이 계시는 아산에 이런 유기농 축산을 하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자연 순환적인 농법이네요.
하지만 지금 많은 축산 농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소를 최대한 살찌우기 위해 옥수수 사료만 잔뜩 먹이는 곳들이 많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가둬 놓고요. 그렇게 자란 소는 건강하지 않고, 항생제도 필연적으로 줘야 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소를 살찌우려는 이유가 있을텐데요.
마블링 위주의 등급제가 많은 농가들을 그렇게 내몰고 있었습니다. 지방이 많아야 좋은 등급을 받으니까요. 잘못 만들어져 있는 기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동물에 모두 이로운 생산-소비 환경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안티마블링'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의외의 결과'


잘못 만들어져 있는 기준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지방이 많은 소고기가 좋은 소고기라는 기준은 대체 누가 정했을까요.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기름진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이중 기름진 맛이 '좋은' 맛이라는 판정 기준의 근거가 모호합니다.

마블링이 많아야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느낌 역시 어쩌면 학습된 결과일 수도 있어요. 저희가 방송사와 함께 블라인드 테스트를 여러 차례 진행해본 적이 있습니다. 시식 평가단에게 소고기의 등급을 공개하지 않은 채 '맛'으로만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맛의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3등급을 받은 유기농 소고기가 더 맛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예상 밖의 결과입니다.
한번 눈 감고 드셔 보시면 알 거예요. 3등급을 받은 유기농 소의 등심은 결 조직이 그물망 형태로 이뤄져 육질이 곱고 연합니다. 지방도 과하지 않고 적당하게 분포해 있습니다. 국거리로 쓸 수 있는 양지나 사태는 지방량이 적어 육질이 질길 수 있지만, 장시간 끓이면 국물 맛이 담백하고 구수해집니다.


"안티마블링은 '먹지 말자'가 아닌 '알고 먹자'는 운동"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오셨나요.
가장 중요한 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겁니다. 마블링이 무조건 안 좋다고, 그래서 먹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저지방 중심의 유기농 한우를 선택할 수 있는 시장 역시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이를 알리는 강연 활동도 많이 했고요. 유기농 축산 쇼핑몰도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농가들 입장에선 지금 '마블링' 체제가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지금 체제는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들도 모두 다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정상적으로 키우면 소는 24개월이면 잡습니다. 하지만 마블링을 만드려면 30개월 이상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육비가 많이 듭니다. 만약 1등급을 받는데 '실패'하게 된다면 큰 손해를 보게 되고요. 그 리스크가 또 한우 가격에 반영됩니다. 생산자는 불안에 떨고, 소비자들은 덜 건강한 소를 더 비싼 돈을 주고 사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거지요.

'마블링' 중심 등급제 때문에 한우 가격이 비싸다는 말씀인가요.
마블링 위주로 먹다 보니 특정 부위 선호 현상이 심해졌고요. 나머지는 '비인기 부위'가 돼버렸습니다. 비인기 부위의 낮은 가격을 만회하기 위해 인기부위 가격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인기 부위 재고가 누적되면서 생기는 보관비, 유지비, 장기 보관 물량 폐기 처분비 같은 유통비 부담 역시 가격에 더해집니다. 대중을 위해 사회적 자원을 써가며 육성돼온 한우 산업이 사실상 사치재 산업이 돼버린 겁니다.

"세 딸이 건강한 식재료를 먹고 자라는 세상이 목표"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지금은 1등급 중에서도 원플러스, 투플러스 등급이 있는데 이를 없애고 간략하게 만들어야합니다. 등급에 따른 가격 격차가 줄어들 겁니다. 농부들은 등급 판정에 따라 수매가가 크게 좌우된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고, 소비자들은 더 싼 값에 한우를 먹게 됩니다. 등급 뿐만이 아니라 월령과 육량 등 다른 기준도 추가적으로 표기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을 넓혀주자는 측면이지요.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요.
사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싶을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맨 처음에 쇼핑몰 시작할 때 연 매출이 500만원이었어요. 작년엔 매출이 3억원까지 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알리다 보면 사람들도 저지방 중심의 유기농 한우에 대한 가치를 더 인정해주게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목표가 뭔가요.


글쎄요. 제 목표를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웃음). 아무래도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는 세상, 다음 세대인 제 세 딸들이 건강한 한우, 건강한 식재료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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