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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로우 Nov 16. 2021

시험 후유증

지난주에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가 성적표가 나왔다. 성적표가 나오면  당사자들보다 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적을 기반으로 한 자녀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할 엄마들은  삼삼 오오 모인다. 학교의 집필 평가 즈음에는 주변 찻집들은 아주머니들 모임으로 시끌시끌해진다


   어제  엄마도 여러 모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내가 중학생 때는 그런 모임의 제의 전화가 와도 엄마는 직장 핑계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오늘은 아침에 병과를 내겠다고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내가 받은 성적이 흉몽이었으면 좋겠다고 한걸 보면 아프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방과 후  나는 땅바닥만 쳐다보고 걷고 있어서 준서가 옆에 와서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 우석아 ~ 저기 너희 엄마랑 울 엄마랑 함께 계신다. 저리 오라고 손짓하시는데? " 준서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집으로 가는 길목 찻집에 5명의 아주머니들이 앉아계셨다. 준서 엄마가 마침 우리를 본 듯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던 엄마는 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가서야 나를 발견했다.


  엄마는 반가운 척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 어~ 너희들 왔구나. 여 ~ 여기 앉아 빵 먹고 가~ " 하며 지갑을  들고  일어섰다. 꼭 어려운 사람을 대접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준서야 ~ 뭐 먹을래?"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준서가 고른 크로켓 네 개를 시켜 얼른 계산을 했다.  ' 뭐야? 난 기름이 많아 그 빵 안 좋아하는데? ' 찡그리며 엄마를 쳐다봤더니 '잠자코 아무거나 먹어'라는 의미의 표정이 나를 압도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싫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엄마를 쏘아보는데 준서 엄마랑 눈이 마주쳐 버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구석자리에 앉았다.


   ' 준서 엄마 만나기가 왜 이리 힘들어요~ 많이 바쁘시죠. 하긴 직장일 하랴 준서 1등 만드시랴 ~ 완전 슈퍼맘이시라니까 ~' 멀리서 희수 엄마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누구 말도 잘 듣지도 믿지도 않는 희수 엄마지만 1등 한 준서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줌마들은 적어도 준서 다니는 학원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공세를 하고 있었다. 그 말들을 쌓아져 만리장성이 될듯싶었다.


  그 말소리가 벌떼가 날아가는 소리처럼 귓가가  윙윙 거리고  정신은 멍해졌다. 분명히 밤에 채기가 생겨 배탈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크로켓을 꾸역꾸역 입으로 넣었다.


  아주머니들은 준서가 다니는 학원이 어딘지에 대한 답은 얻은 듯이 어느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나니 학업 스케줄 관리의 고통이 시작됐다며 언제쯤 이 고통에서 해방될지 모르겠다는 푸념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 준서 엄마에게  준서의 1등  비결이 뭐냐고  농담조로 질문했다. '운이 좋았어요 ~ '라든지 '비결일 것이 뭐 있나요 ~'라는 상투적인 대답이 아니었다. 준서 엄마는 진지하게 대답하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준서를 좋아하지만 질투가 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 녀석이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됐는지는 나도 궁금했다. 나는 입안 한 가득 크로켓을 조금씩 씹어가며 귀를 기울였다.



  "한글을 막 때고 글을 읽게 했어요. 그때에는 문자와 발음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에요. 그래서 저는 문자 '꽃을' 은 글로 쓰고 읽기는 '꼬츨'로 발음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영어 단어의 철자와 발음기호가 다른 것처럼  아이에게 문자와 그 문자의 발음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일 년 내내  글로 쓰인 문자를 틀리지 않고 바르게 발음하고 띄어쓰기 대로 글 읽기 연습만 했어요."


" 3학년이면 글은 다 읽죠 ~ 당연히.. " 하며 희수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쳤다. 그 대답에 준서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글을 틀리고 더듬거리면서 읽는 수준이 아니라 글자의 발음뿐만 아니라 단어의 장음 단음까지 신경 쓰고 띄어 읽기 등을 틀리지 않고 바르게 소리 내어 읽는 음독 훈련을 하다가  점점 빠르고 바르게 읽도록 하는 훈련으로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 준서는 지금까지도 하루에 2분씩 발음을 위해 입 운동을 해요."


 가갸거겨 고교 구규 그기, 나냐너녀노뇨누뉴느니....


  일반적으로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을 배우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학습내용의 개념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으면 뭔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학습 성취 부진은 의외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읽기가 능숙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읽지 않고 대충 문제를 풀어요. 읽기 능력이 능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런 학생들은 항상 틀리고 나서 아차 하는 거죠. 그것은 학습된 게으름처럼 이미 틀린 생각이 자리 잡아 습관이 되어버린 거예요.


째로는 그 틀린 생각을 교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거죠.

무엇보다도 무엇이 틀린 생각인지 자기 자신은 알지도 못해요. 문제를 틀리고 시험 점수가 나와도 어떤 틀린 생각으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유도 모른 체 좌절만 합니다.


그 이야기들은 마치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듯이 글 읽는 것을 단계별로 훈련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글을 읽는 것이 훈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처음 한글을 배우고 단어의 의 읽을 수만 있게 되면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스스로 책 읽기를 기대한다. 발음 교정, 띄어 읽기, 속도조절, 호흡조절과 같은 글 읽기에 기본이 되는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능력들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착각을 가졌던 나는 문장  줄을 틀리지 않고 읽으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책 많이 읽어라'라는 말을 안 들어 본 사람을 세상에게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 일 것이다. 책 읽기의 강조는 세계 모두가 인정하는 잔소리 순위 1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세계 1위도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나는 책 한 권은커녕 문장 하나라도 틀리게 읽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항상 그 진리 앞에 수갑을 찬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오늘부터는  한 문단은커녕 한 문장도  정확하게 읽지 못한다는 죄책감까지 생겨버렸다.


 " 4학년 때부터 중3까지 6년 정도 어휘책 한 권을 10번 정도 공부시켰어요. 매년 1 회독씩 하다가 중학생 때는 6개월에 1 회독으로 작년까지 한 개의 책을 10권을 사서 반복했어요. 그 책을 통해 유의어, 반의어, 관용어, 상 위어/하위어, 한자어, 사자성어, 속담, 어문규정 등 어휘의 분류와 관계를 알고 의미를 배우게 했죠. 6학년 때 3번째 반복할 때쯤 되니까 6학년이 읽어야 되는 필수 문학작품을 바쁠 때는 일주일에 한 권 그리고 한가한 방학 때는 하루에 한 권도 읽더라고요.

글을 틀리지 않고 읽는 연습을 한 데다 어휘의 의미도 분류되어 이해된 상태니 어떤 책이라도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 준서 어머니의 이야기는 논리 정연했다.

글자를 읽을 수 있을 때부터 아이들은 책은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서 읽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책 읽기의 진리를 거역한 대역죄인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살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논리였다. 준서 엄마의 이야기가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부터 여러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겹치며 재각각 동의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 크로켓은 어느새 다 먹은 준서가 먼저 일어나 나가자는 눈짓을 안 했으면 나는 그 모임에 대화들 속에서 못 빠져나왔을 것이다. 준서는 입을 닦은 남은 티슈로 탁자 위를 닦아내고 빈그릇을 반납했다. 그리고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인사하고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 우석아! 너도 크로켓을 좋아하는구나~ 덕분에 너무 잘 먹었다. 우린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 "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도 준서와 비슷했으면 좋겠지만 난 기름기 많은 것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 어~ 그래 너랑 나랑은 닮은 부분이 많네. 크로켓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지. "라고 하는 나의 대답은 정말로 준서를 선망하는 나의 잠재의식이 한 대답이었다.

그날 밤 난 여지없이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들락이며 밤새 선잠을 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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