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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Aug 25. 2020

시간의 미답지에 닿다

영화 <테넷>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중 가장 난해하고, 크게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렵기로 소문난 감독의 전작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와 비교해도 확실히 불친절하고 어렵다. 이쯤 되니 인셉션은 굉장히 직관적으로 느껴질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테넷>은 확실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이는 감독의 전작들과 놓고 봤을 때도 그렇고, 시간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도 그렇다. 그동안 숱하게 다뤘던 시간 소재의 영화 속에서 아직 닿지 못한 미답의 영역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개봉부터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선 <테넷>, 몇 가지 주제를 통해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본 콘텐츠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영화 <테넷> 포스터



인버전, 새로운 시간의 흐름


<테넷>은 '인버전'이라는 기술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자와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인버전(Inversion)은 사전적 의미로 차례나 위치를 서로 뒤바꾸는 '도치'를 뜻하며, 놀란 감독은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미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설명만 보면 무슨 소리인가 싶은데, 소화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영화를 감상하는데 정확한 물리학의 원리나 구조의 이해까지는 필요없다. 보다 보면 영화 속에서 인버전이 어떤 기술이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인버전이라는 새로운 시간의 흐름 덕분에 <테넷>에서는 다른 시간 소재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엄청난 연출을 즐길 수 있다. 정말 어떻게 촬영했나 싶을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 <테넷> 스틸컷


다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개념이 응용되면서 과부하(?)가 올 수 있다. 과부하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빠른 전개다. 컷도 많고, 정보도 많고, 정보가 전달되는 흐름도 무척 빠르다. 워낙 빠르게 진행이 되다 보니 따라가기에 바쁘다. 그래서 관람할 때는 당면한 정보를 당장 해석하려고 하기보다는, 최대한 몰입해서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작품이다.



훌륭한 열연과 아쉬운 캐릭터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주도자' 역할은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맡았다. 미국의 국민 배우 중 하나인 덴젤 워싱턴의 아들이며, 스파이크 리의 범죄 영화 <블랙클랜스맨>의 주연에 이어 <테넷>에도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대세 배우의 흐름을 타고 있다.


영화 <테넷> 스틸컷


우선,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라 몸을 굉장히 잘 쓰고, 아버지가 가졌던 이미지를 그대로 물려받아 지적인 분위기도 풍긴다. 특히, 이번 작품이 놀란의 역대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액션을 자랑하는데 이는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기여가 크다. 특유의 흥도 있고, 대사 처리도 좋아서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액션 배우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최근 완전히 다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도 좋았다. '닐'이라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절제된 연기로 영화 전체의 조력자 역할을 쏠쏠하게 해낸다. 악역 '사토르' 역할을 맡은 케네스 브래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나오는 장면마다 높은 흡입력을 보였다.


영화 <테넷> 스틸컷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데비키, 에런 테일러존슨, 클레멘스 포시, 그리고 놀란 사단의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케인 등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배우들이 보여주는 캐릭터의 룩(look)에 관한 부분이다.


각 캐릭터의 배경은 최소한으로 표현한다. 주인공부터 이름이 없고, 자세한 내면의 묘사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렇다 보니 인물이 사건에 개입하는 동기부터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미 인버전과 같은 개념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해서 과감하게 쳐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을 모르고 봐도 영화를 즐기는데 문제는 없지만, 캐릭터가 다소 소모적이라 아쉬운 감이 있다.



<테넷>과 놀란의 전작들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모든 작품을 감상한 팬으로서, 전작들과 이번 작품을 함께 놓고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테넷>은 전작들과 궤를 함께 하면서도, 큰 차이점을 보여준다. 관계성이 짙은 전작으로는 <메멘토>와 <인셉션>을 뽑을 수 있다.


영화 <테넷> 스틸컷


실제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한 인터뷰에서 <테넷>과 <인셉션>은 사돈지간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두 작품은 이야기를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비슷하다. 사건을 전개해가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 점이 동일하고, 이러한 개념을 활용한 세력 간의 다툼이 유사하다. 무엇보다 상상을 시각화하는 혁신적인 연출은 두 작품이 절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동일한 장점이다. <메멘토>와는 플롯의 배치에서 유사점이 있는데, 더 자세한 얘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여기까지만 언급한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띈 차이점은 액션의 퀄리티다. 놀란 감독이 지속적으로 지적받아왔던 약점이 바로 액션 연출이었다. 특히,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눈에 띄게 부각되었는데, <테넷>에서는 작정이라도 한 듯이 엄청난 액션을 선보인다. 앞서 얘기한 대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확실히 하드캐리 했고, 인버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더해져 그동안 보지 못한 액션 연출이 쉴새 없이 펼쳐진다.


새로운 놀란의 음악 파트너, 루드비히 고란손


또 한 가지 차이점은 음악이다. 그동안 놀란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와 작업을 많이 했다. 음악적으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인터스텔라>의 사운드 트랙이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한스 짐머는 올해 말 개봉 예정인 영화 <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스 짐머의 추천으로 <테넷>의 음악을 맡은 게 바로 '루드비히 고란손'이다.


루드비히 고란손은 스웨덴의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힙합 프로듀서로, 2019년 아카데미에서 <블랜 팬서>를 통해 음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번 <테넷>에서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다이내믹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로 영화를 가득 채웠다. 영화 내내 깔리는 강렬한 전자음이 긴장감을 더해주고, SF 장르의 매력을 부각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전작들과의 차이점이 <테넷>을 더욱 좋은 영화로 만들었다고 본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 될 <테넷>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감상을 작성해봤다. 맨 처음 얘기한 대로 <테넷>은 굉장히 난해하고,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다. 놀란의 팬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느끼기에도 분명 어렵고,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테넷>은 분명히 높게 평가할 구석이 많은 영화다. 거대한 상상을 서사화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번 영화가 놀란 감독이 앞으로 보여줄 새로운 작품 세계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메멘토>로부터 어느덧 20년, 지난 시간 동안 구축해온 상상과 기술을 아낌없이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테넷>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테넷> 포스터



테넷 (TENET , 2020)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 로버트 패틴슨, 엘리자베스 데비키 등


[감상노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도서, 인터뷰,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이에 대한 감상을 기록합니다.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contents-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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