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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Aug 01. 2021

이념을 넘어선 집념의 탈출극

영화 <모가디슈> 리뷰


'텐트폴 영화(tentpole movie)'라는 말이 있다. 영화 제작에 유명 감독과 배우,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흥행이 확실한 상업 영화를 의미한다. 캠핑을 좀 다녀보신 분이라면 익숙할만한, 텐트를 세울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기둥인 텐트폴에서 유래한 말이 맞다. 다시 말해, 한 영화사의 수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지지대 같은 영화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이런 텐트폴 영화는 소위 '극장 성수기'로 불리는 여름 시즌에 개봉을 많이 한다.


작년이나 올해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로 인해 이러한 텐트폴 영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이 와중에 과감히 개봉을 결정한 영화가 있다. 무려 제작비 240억 원을 투자한 대작 영화, <모가디슈>다. 누구라도 수백억 원을 들인 영화를 이 시국에 개봉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이것은 무모함이었을까, 자신감이었을까?


*본 콘텐츠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신파 대신 오로지 탈출과 생존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우리나라와 북한의 대사관 공관원들이 함께 모가디슈를 탈출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간략한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적대적 관계인 남과 북이 같은 위기에 빠지고, 갈등을 겪으며, 결국 하나가 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여러분의 머리에도 스쳐 지나가는 클리셰로 가득한 남북한 소재의 영화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북한 소재의 영화에서 접하기 쉬운 특유의 국뽕과 신파를 찾을 수 없다.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읊지도 않고, 억지 감동을 쥐어짜지도 않는다.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탈출'과 '생존'에만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속도감이 빨라 몰입하기에 좋고, 군더더기 없이 만듦새가 매끈하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밸런스가 훌륭한 캐릭터 구축과 묘사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 영화는 캐릭터 구축과 묘사가 매우 흥미롭다. 극 흐름의 가장 큰 주축이 되는 소말리아 한국 대사 한신성(김윤석 扮)과 안기부 출신 한국 대사관 참사관 강대진(조인성 扮)의 밸런스가 일품이다.


한신성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은 아니다. 주인공 치고는 대단한 목표 없이 현실에 안주하길 원하고, 자신의 부하이지만 안기부 출신인 강대진에게 혹시나 꼬투리를 잡힐까 조심하는 소심하면서 평범한 캐릭터에 가깝다. 이처럼 한신성에게는 다양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캐릭터에게는 이야기의 전체를 꿰뚫는 '양심'과 '인간성'이 있기에 극이 진행될수록 더욱더 빛나 보이고, 존재감이 커지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한신성이 이야기의 전체를 감싸 안는 캐릭터라면, 강대진은 이야기 속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캐릭터 자체가 웃기다기보다는 조인성 배우 특유의 능글능글한 연기가 더해져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다고 웃기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고, 여러 변곡점에서 과감한 행동을 통해 기회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신성과 강대진,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캐릭터의 밸런스가 영화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율하며 엔딩까지 잘 이끌고 간다. 여기에 묵직한 존재감을 뽐낸 소말리아 북한 대사 림용수(허준호 扮), 긴장감과 갈등을 불어넣은 북한 대사관 참사관 태준기(구교환 扮), 필자의 웃음 버튼 한국 대사관 서기관 공수철 (정만식 扮)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이 영화의 재미를 가득 채운다.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의 전환점이 될까?


영화 <모가디슈>는 류승완 감독의 14번째 연출작이자 4년 만의 신작이다. 류승완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이래 '충무로의 액션 키드'라고 불릴 정도로, 액션 영화에서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감독이다. <군함도>, <베테랑>, <베를린>, <짝패>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은 <부당거래>다.


<모가디슈> 감독 류승완


사실, 영화 <모가디슈>는 개봉 전부터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바로 전에 제작했던 작품 <군함도>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기대 이하의 스토리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에 관한 문제로 평가가 매우 안 좋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데뷔작부터 2년마다 부지런히 작품을 만들던 사람이 <군함도> 논란을 겪은 후 차기작을 제작하기까지 4년이 걸렸을까.


다행히 이번 영화 <모가디슈>는 전작인 <군함도>에서 비판받았던 부분들을 대부분 개선시켰다. <군함도>뿐만 아니라 <베를린>에서 지적받았던 북한 캐릭터들의 대사에 대한 비판도 개선하기 위해, 이번 작품에서는 북한 캐릭터들의 대사에 맞춰 자막을 추가했다.


이처럼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단점을 보완하면서 영화 <모가디슈>는 높은 완성도를 갖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단점 보완에 치중한 나머지 '류승완 감독 작품'이라고 하면 기대할 수 있는 특유의 개성은 다소 희미해진 감이 있다. 아마, 이번 영화가 류승완 감독 필모그래피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모가디슈>는 여러 방면에서 완성도 높은 영화다. 과잉이 없고, 선을 안 넘으면서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리만 느낄 수 있는 먹먹한 감동도 있다. 정말 얼마 만에 과도한 신파 없이, 진한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난 건지 모르겠다.


앞서 이 시국에 수백억 원의 작품을 개봉하는 것은 무모함인지, 자신감인지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감상까지 적은 지금 느끼기에는 무모함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자 자부심이 분명하다. 이 정도의 막대한 자본과 노고가 깃든 멋진 영화를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개봉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모가디슈 (Escape from Mogadishu, 2021)

감독: 류승완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등


[감상노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도서, 인터뷰,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이에 대한 감상을 기록합니다.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contents-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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