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아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햄릿, 영화 <오필리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인, 햄릿.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이탈리아에서 유입되어 맞은 새로운 문화인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여 영국 사회가 격변하던 때,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던 에섹스 백작이 왕위 계승문제로 반란자가 되는 상황을 보고 구상했다.
이 작품에서 왕자 햄릿은 아버지를 죽음을 둘러싼 클로디어스의 음모에 그 원수를 갚고, 국가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갈등하고 고뇌한다. 하지만, 그 모두 비극으로 치닫는데. 극은 자신의 형과 그의 아들인 햄릿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려는 클로디어스의 욕망과, 선왕이 죽은 지 두 달도 안 돼 클로디어스와 결혼을 한 어머니에 대한 햄릿의 분노와 사랑을 담았다. 또한, 여기에 햄릿과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사랑까지 덧붙였다. 이 모든 서사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삶과 죽음 사이의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 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 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_ 『햄릿』 3막 1장
햄릿의 비극은 가짜와 진짜, 광기와 열정, 이성과 감성, 허구와 실재 등의 상반된 개념들을 대립시켜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주인공인 햄릿이라는 인물은 클로디어스를 주저 없이 찔러 죽이려고 극단적인 행동의 실천을 서슴지 않는 동시에,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인간이 가진 모든 능력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오필리아는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인 인물에 가깝다. 그녀는 본인이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는 대신, 주변인들의 말에 휘둘리며 햄릿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다. 또한, 아버지가 햄릿으로부터 억울하게 살해당한 다음 그 충격으로 미쳐 물가를 배회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자살이라 부를 수도 없고, 사고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녀의 이 최후를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는 그림에 담았다.
"그러는 동안 물을 빨아들여 무거워진 옷이 가련한 사람을 아름다운 가락의 노래로부터 떨어지게 하여 흙투성이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햄릿』 4막 7장 167행
연못에 빠져 허공을 응시하는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죽음을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박제한 밀레이의 이 그림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이었던, 라파엘 전파는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우는 예술을 표방하여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주로 그렸는데 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 그림, 오필리아다. 이외 라파엘 전파에 속했던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햄릿에게도,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후 광기에 젖어, 꽃을 꺾으며 산으로 뛰노는 요정과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밀레이는 꽃이 가득한 연못가에 누워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오필리아를 그렸다. 죽은 오필리아를 둘러싼 자연물들은 하나하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오필리아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데, 먼저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제비꽃은 충절을, 쐐기풀은 고통을, 데이지는 순수, 양귀비는 영원한 죽음을 상징한다.
내가 이 그림을 가장 먼저 알게 된 계기는, 2005년 발매된 박정현의 앨범 속, '달'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다. 뮤직비디오에서 박정현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광기에 젖어 녹음이 우거진 숲 속을 뛰어다니다가 물속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이 뮤직비디오의 모티브가 바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였던 것이었다. 이성적인 반응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보이지 않는 창백한 얼굴로 어두운 청록빛 물속으로 잠식된 오필리아의 이미지와 함께 그녀의 심정을 대변한 노랫말의 가사가 강렬하게 남는 뮤직비디오였다.
영화, 오필리아 역시도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밀레이의 그림을 그대로 옮긴 듯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햄릿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전개되었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햄릿의 사랑하는 여인이지만 조연에 지나지 않던 오필리아의 시선에서 그녀의 최후가 사고인지, 자실인지 애매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에 주목해 새로운 서사를 전개한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겠죠? 수많은 이들이 전했으니까요. 오래전, 내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었죠. 난 그 누구보다 천국과 지옥을 자주 경험했어요. 그리고 늘 고집을 꺾지 않았고, 내 마음을 따르며 솔직했죠. 그리고 드디어,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왔군요."_영화 <오필리아> 중에서
클레어 맥카시 감독의 영화 <오필리아>에서 오필리아는 더 이상 무기력한 서사의 장치로 사용되어 물속에 가라앉아 사라져 버리는 침묵의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영화의 시작부터 본인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주체적으로 햄릿을 사랑하고, 클로디어스의 음모를 파 해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왕실의 인물들을 관찰해나간다. 그녀는 왕실에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며, 혼란스러운 정세에도 신념을 잃지 않는다.
영화에서 오필리아는 실연과 피로 점철된 이야기로, 길을 잃거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미치지 않는다. 독약을 마시고 연못 속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살아난 오필리아는, 거트루드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자르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다시 만난 햄릿과 죽음과 삶, 복수와 사랑의 기로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자신만의 역사와 서사를 품고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녀는 다시 관객들을 향해 속삭인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겠죠? 광기로 끝난 이야기를요. 실연과 피로 점철된 잃어버린 왕국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에요. 난 길을 잃지 않았어요. 복수심에 불타 미치지도 않았죠. 그 대신에 희망을 품게 됐어요. 언젠가 내 이야기를 하겠다는 희망을요. 내 사랑, 그대도 언젠가는 그대의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 _영화 <오필리아> 중에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이 명대사처럼, 극적인 삶의 기로에서 자신이 선택한 삶에 지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가는 오필리아를 통해, 원작에서 못다 한 아쉬움을 회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풀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