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가르침, 죽음의 가르침
늙고 병들어 죽어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까지 살면서 세 구의 시체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첫 번째 시체는 어머니, 두 번째 시체는 외할머니, 세 번째 시체는 생년월일이 같은 친한 친구였다. 시체를 보는 것은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죽음이 시체를 통해 선연하게 그 민낯을 드러내고 그것을 직면할 때 지금껏 외면해 왔던 삶과 죽음에 대한 현실이, 마주해야 할 진실이 비로소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스승님이 계셨던 명상센터에서는 시체를 공수해 와 명상주제로 삼아 수행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죽음은 중환자실에서, 양로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쉬쉬하며 일어난다. 우리는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오래오래 살 거라는, 사실은 진짜 현실과는 정반대 되는 믿음을 온갖 매체들로부터 주입받으며 애써 죽음을 외면한다. 더 이상 젊지도, 건강하지도, 오래 살지도 못하게 되는 것을 마치 끔찍한 불행인양 여긴다. 내게는 결코 닥쳐서는 안 되는 비현실인양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울수록, 그리고 자신이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일수록 죽음에 임박해서 고통이 더욱 심하다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이 말씀하시는데 헉하고 양심이 찔렸다. 맞아, 나도 인스타에 올릴 잘 나온 내 사진을 보며 그래 아직은 내가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다며 씩 웃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평소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만트라처럼 20년간 외며 사시다 97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죽음은 그렇게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임종 3일 전에 찾아가 뵈었을 때도 내가 온 것을 알고는 희미하게 눈을 뜨고 간신히 내뱉은 마지막 말씀이 ".. 왔나.. 밥 먹고 오너라.." 였으니 말이다.
반면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젊고 건강했고 아름다웠다. 친구의 마지막 말은 "죽기 싫어."였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였기에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이 친구는 마지막 1년간 사주 공부를 하였는데 태어난 시만 다르고 생년월일이 다른 내 사주와 자신의 사주를 비교하곤 했다. 자주 "너는 태어난 시가 너를 살렸다"며 위험이 닥칠 때마다 알아서 기도하고 수행하고 정진하는 기운이 있는 것이 아픈 친구와의 다른 점이었단다. 그래서 사주스승들이 "네 친구만 좇았다니며 친구 하는 것만 따라 하면 너는 산다"라고 얘기를 해서 내 옆에서 오래 머물려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암통증과 욕창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속세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100일간 산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유독 이 친구의 죽음이 많이 떠올랐다.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이 몸 마음 또한 그와 같이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아니 앗차 하며 마음 챙김을 잊는 순간 죽음이 호시탐탐 내 뒤를 좇아오다 이때다 싶어 그 거대한 낫을 가차 없이 휘두르겠구나. "라는 생각에 쭈뼛하며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여길수록 그 생각이 나중에 결국 찾아올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알았다.
거울을 보다 발견한 흰머리를 저도 모르게 눈살 찌푸리며 뽑으려 할 때, "아 또 고통의 씨앗을 심으려 했구나. 이 흰머리가 이렇게 알아차림 공부를 시켜주는구나." 하는 숙고가 일어났다. 늙어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 중임을 가르쳐주는 흰머리에게 짜증 대신 감사의 말을 건네야겠다며.
중환자실에서 어머니가 내게 생생하게 죽음을 처음 가르쳐주었던 이래로 되려 모른 체 왔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할머니의 죽음으로 친구의 죽음으로 다시 직면한다. 이번에는 죽음에 대한 스승님의 안내와 함께. 우리는 늚음과 병듦과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100일간 수없이 듣고 되뇌고 숙고하면서.
< 끊임없이 반조해야 할 다섯 가지 >
1. 나는 늙기 마련이고 늚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2. 나는 병들기 마련이고 병듦을 극복하지 못했다.
3. 나는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4.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들은 변하고 헤어지기 마련이다.
5. 업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좋은 업을 짓건 나쁜 업을 짓건 나는 내가 지은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끊임없이 돌이켜 살펴보면 젊음과 건강과 삶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마음으로 몸으로 행동으로 행하는 나쁜 행위와 탐욕을 제거하거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죽음공부를 할 때,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인 경우가 많다.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하는 죽음을 지금 여기 현재에 생생히 받아들일 때 삶이 비로소 삶으로서 완성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만약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다면, 가까운 이의 시체와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그 죽음과 시체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겨주는 귀하디 귀한 선물에 감사드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