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육아
아이를 재우다가 집을 뛰쳐나왔다.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지 않으면 온몸의 세포들이 자유분방하게 터져나갈 것 같았다. 까놓고 말해 돌아버리기 직전- 아이가 백일을 맞을 즈음이었다.
모유수유와 밤수가 이어지면서 새벽녘 늘 비슷한 시간에 허벅지부터 배와 옆구리를 타고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검사를 해도 딱히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스트레스성 혹은 면역력 저하로 인한 증상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완벽히 추스르지도 못한 몸으로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은 정신과 시간의 방에 있는 기분이었다. 반나절은 지난 듯한데 고작 한 시간 남짓, 그렇게 남편의 퇴근시간만 기다리다 보면 그가 질투날 정도로 사회생활이 그리워졌다. 그땐 밥먹고 커피마시는 시간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었으니까.
당시 아이 수면교육을 막 시작한 때였는데, 남편과 몇일을 상의하고 잘 시간을 포기하며 공부한 후 어렵게 결심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등 대고 누워자기 싫으니 날 안으라는 표현을 격렬한 울음으로 대신할 때마다 내가 아이를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정신도 밑바닥을 헤매이던 어느날, 또다시 시작된 자지러지는 울음을 끝내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아이를 떠넘긴 채 집을 나온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어둑해지는 강변을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참을 걸어도 문제의 답은 안 나오는데 대체 왜인지 이 미칠 것 같은 상황과 감정을 글로 쓰고 싶었다. 흰종이에 글씨가 써지는 상상만으로도 조금 안정이 됐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이유에서든 이렇게 글을 놓았던 적은 없었다. 임신하면서 일은 쉬었지만 글은 계속 쓰고 싶어서 아이낳기 직전까지 학원에 다니며 시나리오 공부를 했다.
엄마 이전의 내가 좋아하고 어쩌면 잘하던 것, 왜 그걸 백일 넘게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지? 너무 힘들어서 그랬지 뭘. 글 쓸 시간은커녕 눈 붙일 시간도 부족한데. 그래도 이제는 쓰자, 어떻게든 쓰자.
그렇게 인스타를 시작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정식으로 쓸 시간과 여유는 없으니 아이 잘 때 옆에 누워 접근성 좋은 플랫폼에 짧은 글이라도 남기자는 이유로 인스타를 택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그곳엔 내 글이 안 어울렸다. 난 무슨 사진을 올릴지는 중요치 않은데 반드시 사진을 먼저 골라야 하고, 글의 양은 늘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 덜어내야 했다. 지인이 인스타에 조금 긴 글을 썼더니 일기쓰냐는 면박을 받았다기에 뜨끔했다. 인스타는 잘못이 없다, 인스타 알못의 선택 미스일 뿐. 조금 의기소침해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브런치를 추천했다.
아, 브런치.. 예전에 한번 작가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그때 자존심 좀 상했었는데. 췟.
자존심은 상하지만 이미 홀린 듯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 나 진짜 글이 쓰고 싶구나,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가.. 감사.)
‘발행’이라는 단어는 ‘공유’에서는 못 느꼈던 두근거림을 주고, ‘좋아요’와 ‘라이킷’은 결국 같은 말이지만 어쩐지 ‘라이킷’은 내 글을 도닥여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그걸 눌러주는 다른 작가분들에겐 그저 고맙다. 또한 그분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나에게 큰 힘이자 자극이 된다.
아이 낮잠시간이나 육퇴 후 브런치를 기웃거리며 글을 읽고, 무슨 글이든 조잘거려보는 건 이것이 나를 온전한 나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육아엔 답이 없어서 나는 때때로 그날밤처럼 좌절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빈틈 많은 내 글처럼 나는 역시 완벽한 엄마는 될 수 없을 거다. 대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나다운 엄마가 될 순 있겠지.
아이 라이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