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운 생활
브런치 알림이 휴대폰 화면 상단을 스치고 지난다.
‘겨울 냄새 품은 어묵탕’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하루 평균 스무 명 남짓 들어올까 말까 한 내 브런치가 조회수 천이라니, 잘못 봤나.
얼마 안돼 조회수 2000, 3000, 4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연이어 뜨고 나서야 상황 파악을 해본다. daum 홈에 브런치 글이 떠서 조회수가 급 폭발했다던 다른 작가님 글을 본 기억이 그제야 난다. 의도치 않은 선행학습을 따라 daum으로 가보니...
이어 한 작가님이 브런치 홈에서 내 글을 봤다며 축하 댓글을 달아주셔서 이 역시 확인해보니,
그렇게 급작스럽게 늘어난 조회수의 원인을 파악하고 약간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열심히 캡처해둔 나를 돌아보니 꽤 설렜던 것도 같다.
이후 저 글과 나의 브런치는 조회수 7000 돌파 알림을 끝으로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유명 작가분들은 어렵지 않게 넘나드는 숫자이겠으나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같은 브린이에겐 꽤나 놀라운 기록이었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그는 당장이라도 내 앞에 유명세가 대기하고 있는 마냥 들떠 기뻐했다. (남편은 내가 글을 잘 쓴다며 내 글을 정말 많이 아껴준다. 평소 글을 많이 안 읽는 편이다. 쿨럭) 그런데 그 순간, 내 속 깊숙이 잠자고 있던 까칠하고 공격적인 방송작가가 소환됐다.
‘조회수 그게 뭐. 그거 한번 잘 나왔다고 앞으로도 잘된단 보장있나. 계속 제대로 된 걸 내놓지 않으면 한번 반짝하고 마는 거지. 잊히기가 얼마나 쉬운데.’
방송은 성질 급한 내게 꽤나 잘 맞는 일이었다.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바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시험성적 같은 ‘시청률’로써. 시청률만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방송 다음날 아침엔 반드시 숫자를 마주해야 했다. 그것은 나를 기쁘게 했다가 좌절하게도 만들고 욕심나게 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군가 봐야 존재 의미가 있는 방송을 만드는 한, 시청률에 있어선 좀처럼 쿨해질 수가 없었다.
“시청률 같다.”
“뭐가?”
“브런치 조회수. 시청률이랑 비슷한 거 같다고.”
누구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유유자적 나 좋은 대로 브런치 글을 쓰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조회수’라는 숫자를 마주하니 그때의 기분이 든 것일까.
TV 시청률과 브런치 조회수, 둘의 공통점이 머릿속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공통점 1. 어떤 아이템이 터질지 모른다
물론 전략적으로 되겠다 싶은 걸 방송으로 만들고 그 예상이 적중해 높은 시청률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이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나영석PD의 대표작 ‘삼시세끼’는 기획회의 때부터 대부분의 스태프가 반대한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주구장창 세끼 밥만 만들어먹는 걸 누가 보겠냐는 이유였다. 심지어 촬영과 편집 후에도 이렇게 잘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다. 하지만 대박이 터졌고 평균 10%가 넘는 시청률과 고정 시청자층을 보유하며 매 시즌 사랑받고 있다.
내 경우엔 연예인이 반려견 키우는 프로그램을 만들 당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시청률이 터져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이 됐고, 이후 비슷한 반려견 관련 프로그램이 줄줄이 런칭됐었다. 이처럼 반드시 될 거라 확신한 아이템이 꼭 잘 되는 것도, 의심을 가졌던 아이템이 꼭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잘되는 아이템엔 시대의 니즈를 잘 읽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스 넘치는 사회생활과 자극적인 컨텐츠로부터 도망쳐 힐링하고픈 마음,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삼시세끼와 반려견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거기에 비하긴 부끄럽지만 내 글도 추운 겨울, 겨울에 생각나는 음식, 집밥의 보편화라는 현 상황에 맞는 글이었기 때문에 홈에 걸렸고 많은 사람들이 본 게 아닐까 싶다. 사실 그걸 노리고 쓴 것도 아니었고 그런 조회수를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지만. (방송작가 10여 년차에 전략없이 글을 쓴다는 건 그닥 자랑이 아니지 싶다.)
브런치에도 전략적으로 되는 글을 쓰는 똑똑한 경우도 꽤 있지만 별 의도없이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은 글로 출간을 제안받는다거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우도 많은 걸 보면 어떤 아이템이 터질지는 모르는 거고, 모든 글에는 대박 가능성이 있다.
공통점 2. 대박집 따라한다고 다 대박나진 않는다.
방송일을 하면서 싫었던 것 중 하나가 ‘따라 만드는 것’이었다. 흔히 ‘우라까이 한다’고 하는데 (쓰지 말아야할 일본식 표현이지만 방송가에서 많이 쓰인다) 적당히 바꿔서 다시 만든다, 결국 적당히 베낀다는 뜻이다. 하늘 아래 완벽히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을 면죄부 삼아 요리가 된다 싶으면 요리 프로그램을, 낚시가 뜨면 낚시 프로그램을, 트로트가 대박나면 트로트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이 온다. (최근 트로트가 잘 되니 너무 심하게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싶더니만, 결국 포맷 표절 소송으로 번졌다. 이 사건이 방송가 인식 개선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런 의문도 든다. 베낀다고 소송 건 방송사, 당신들은 정녕 떳떳한가)
물론 현재 시청자들이 좋아하고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리지널의 장점을 극대화해 더 나은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으니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다만 남이 잘된 걸 보고 그저 베끼듯 따라한 프로그램이 과연 얼마큼의 재미와 진정성을 지닐 수 있을지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상상 이상으로 영리하고 냉정한 요즘 시청자들을 그런 수준의 프로그램으로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브런치에서도 다른 작가의 좋은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을 순 있겠지만 그 속에 내 것이 없다면 그 글은 진짜일까. 내공이 다른데 그저 따라한다고 다 대박나는 것도 아니고, 설사 대박에 편승할 순 있더라도 그건 떳떳이 내보일 수 있는 내 것이 아닐 것이다.
공통점 3. 또 터트리고 싶다. 그러나..
어찌 보면 도박과 같다. 한번 잭팟을 터뜨리면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높은 시청률로 노력을 보상받고 내 감이 맞았구나 확인하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다. 자연스레 다시 이 맛을 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데, 시청률은 한번 터뜨리는 것보다 계속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제작진은 늘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한다. 그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다만 누군가는 또 터뜨리고 싶은 욕심을 제대로 녹여내 퀄리티 높은 웰메이드 프로그램을 만들고, 누군가는 중심을 잃고 자극만을 쫓는 데서 차이를 보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참가자를 괴롭히는 데 혈안이 된마냥 갈수록 더 지독한 미션을 던지고, 리얼리티를 앞세운 관찰프로그램은 흥미를 끌만한 아이템을 거짓으로 연출하기도 하며, 출연자를 존중하고 보호하기보단 악마의 편집으로 이슈를 만들고 소위 어그로를 끄는 데 급급한 것이 후자의 경우다. 나는 떳떳하냐고? 위의 경우는 내 경험이기도 하다. 이 일을 좋아하면서도 종종 회의감을 느낀 이유기도 하고.
방송이 됐든 브런치가 됐든 더 잘 만들고 잘 써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 이를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길을 잃는 순간, 시청자도 독자도 가차없이 떠날 게 분명하다.
‘조회수’가 쏘아올린 공 덕에 내가 좋아하는 일과 양분이 된 경험과 함께한 사람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껴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시청률과 조회수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꽤 즐거웠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한 공통점 하나를 찾아냈다.
높은 시청률 한 번이 프로그램의 탄탄대로를 보장하진 않듯 평소와 다른 높은 조회수가 내 브런치의 가치까지 높여주는 건 아닌지라 매우 쿨한 척했지만, 시청률이든 조회수든 터지면 어쨌거나 기분은 좋다는 거. 이제 그 힘으로 쓰고 싶은 걸 또 맘껏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