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 eden Jan 25. 2021

나의 첫 단편 시나리오 (2)

작가로운 생활

# 앞서 읽기 - 나의 첫 단편 시나리오 (1)




17. 지은의 집 앞, 골목 (낮)    

빌라를 뛰쳐나오듯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와 아이의 집 건물로 들어가는 지은.   

 

18. 아이의 집. 현관문 밖 (낮)    

지은, 아이 집 현관문을 바라보고 서있다. 이내 결심한 듯 꽉 쥔 주먹으로 문을 두드린다.

잠시 후, 미동 없던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고 문 사이로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약간의 놀람과 반가움이 뒤섞인 얼굴이다.  

 

지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다가)

          나랑 아이스크림 먹을래?    


19. 슈퍼 앞 (낮)    

슈퍼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지은과 아이.

별말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의자 밑으로 달랑대는 아이의 다리에는 군데군데 멍자국이 보인다.

지은이 막대 아이스크림을 깨무는데 그 조각이 미끄러져 땅에 떨어진다.    


아이   아깝다.

지은   그러게.    


땅에 떨어져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조각에 시선이 꽂힌 두 사람.    


아이   아이스크림이 물감 같아요. 예쁘다.

지은   그러네.    


말을 마치고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 두 사람.

지은이 하늘을 보는데 해가 쨍하게 비춘다. 눈을 질끈 감는 지은.    


20. 지은의 집. 침실 (낮)    

눈을 번쩍 뜨는 지은.

땀에 젖어 침대 위에 누워있다.

아이 집 창문에는 커튼이 처져있고, 고래 모양의 종이 예닐곱 개가 붙어있다.    


21. 동. 욕실 (낮)    

쏟아지는 물줄기에 얼굴을 들이미는 지은. 가슴팍에서 목걸이가 달랑거린다.

몸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배꼽 아래, 세로 10센티가량의 흉터 보인다.

지은은 김 서린 거울 위에 손가락으로 고래 윤곽을 그린다.

차오르는 수증기로 거울 위 그림이 이내 흐릿해지고, 거울에 비치는 지은의 실루엣도 흐릿하다.

두 손으로 머리카락부터 목까지 세차게 쓸어내리는 지은. 그 순간, 욕실 바닥에 떨어진 목걸이가 물살에 휩쓸려 하수구로 빨려 들어간다.

급하게 샤워기를 끄고 바닥에 엎드려 하수구를 들여다보는 지은. 오른손을 넣어 휘저어보다가 손을 조금 더 밀어 넣는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집중하는 사이, 어느새 하수구 속으로 손목까지 빨려 들어가 있다.

잠시 후, 낙심한 듯 한숨을 내쉬는 지은. 손을 빼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손이 빠지지 않는다. 몇 번 더 시도해보지만 그대로다. 주변을 다급하게 훑는 지은.


22. 몽타주. 지은의 집 (낮)    

/ (현관) 슬리퍼 하나가 놓인 현관

/ (베란다) 10개가량의 쓰레기봉투

/ (옷방) 쌓여있는 세제, 휴지, 샴푸, 생수

/ (침실) 침대 위에 놓인 지은의 휴대폰. 진동이 울리다가 끊어진다. 휴대폰 화면에 ‘김우석PD 부재중 전화 9통’, 시간 11시 6분 떠있다.    


23. 지은의 집. 욕실 (낮)    

하수구에 손이 끼인 채, 무릎을 꿇고 웅크린 지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지은   (체념한 듯) 우석 피디 난리 치겠네..    


지은, 떨궜던 고개를 든다.    


지은   여기요.. (조금 더 큰 소리로) 여기요..

          (숨 들이마시고 더 큰 소리로) 누구 없어요?!    


- 인서트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혹등고래. 큰 몸집만큼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24. 동. 욕실 (낮)    

하수구에 끼인 오른팔을 베개 삼아 베고 엎드려있는 지은. 욕실 쪽창문으로 드는 햇볕이 지은의 등 위로 쏟아진다.

지친 듯 몇 차례 눈을 껌뻑이는 지은, 스르륵 눈을 감는다.  

  

25. 과거. 어린 지은의 집 (밤)    

불 꺼진 방 안을 밝히는 TV.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 영상 위로 남자성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어린 지은이 오래된 화장대 앞에 앉아 립스틱 뚜껑을 연다. 손잡이 부분을 돌리자 위로 올라오는 빨간 립스틱.

지은, 들뜬 표정으로 립스틱을 바라본다.    


남자성우   ..인간 밀집지역 가까이에 자주 출현하는

(V.O)         혹등고래는 인간과 가장 친숙한 고래 중

                  하나입니다. 보통 두세 마리,

                  혹은 더 큰 무리를 이뤄 활동하는데..    


지은 옆으로 다가와 앉는 엄마. 얼굴은 흐릿해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지은 손에서 립스틱을 가져가자, 지은이 엄마 얼굴을 본다.

지은의 뺨을 쓰다듬는 엄마.    


엄마(O.S)   아빠랑 할머니 말씀 잘 들어. 알았지?

지은            (말없이 엄마를 바라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엄마. 지은이 눈으로 엄마를 좇는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화장대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는 지은.

화장대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보지만 텅 비어있다.

제일 아래 서랍이 열리고, 구석에 목걸이 하나가 보인다. 작은 십자가 펜던트 목걸이다.

지은이 목걸이를 꺼내 바라보다가, TV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든다.

TV 속, 어미와 새끼 혹등고래가 함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TV 불빛을 받아 빛나는 지은의 눈동자.

TV에서는 새끼 혹등고래를 등으로 올려주는 어미 혹등고래의 모습 보인다.

불 꺼진 방 안, TV를 향해 꼼짝 않고 앉은 지은의 뒷모습. 그 위로-

    

남자성우   ..어미 혹등고래는 수개월 간 굶주린 채

 (V.O)        새끼에게 매일 500리터의

                  젖을 먹입니다.

                  또한 10분에 한 번씩 새끼를 등에 올려

                  물 위에서 산소를 마시게 하죠.

                  이런 지극한 보살핌 속에

                  새끼 혹등고래는..    


어린 지은의 모습 위로-

‘탕, 탕, 탕’ 문 두드리는 소리.    


26. 지은의 집. 욕실 (낮)    

지은, 눈을 감고 있다.

다시 한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지은이 부스스 눈을 뜬다.    


집주인(V.O)   아가씨! 301호 아가씨 집에 없어?

                       (문 두드리는)

지은               (맥없는 목소리) 여기요..

집주인(V.O)   (문 두드리며) 301호 아가씨!

지은               (힘껏 소리치는) 도와주세요!    


27. 동. 거실 (낮)    

열린 현관문을 빠져나가는 구조대원의 뒷모습.

집주인이 현관에 팔짱을 끼고 서서 욕실 쪽을 흘겨보고 있다.

큰 수건을 두른 지은, 맥이 빠진 모양새로 욕실에서 나온다.     


집주인   아가씨 나 아니었음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그..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 고독사!

               그거 할 뻔한 거 구해준 거야, 내가~

지은       감사합니다..

집주인   (현관 밖 가리키며) 저게 계속 쌓여있다고,    


활짝 열린 현관문 밖에 흩어진 수십 개의 전단지들.    


집주인   안에 뭔 일 난 거 아니냐고 앞집이

               연락 안 했으면 진짜 일이 나도 났지!

               사람 죽은 집은 잘 나가지도 않어~

              (집안 곳곳을 흘깃거리며)

               집값이 얼마나 떨어지는데..     


지은, 말없이 고개 떨구고 서있다.

집주인, 지은 표정 살피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현관 나선다.

혼자 남은 지은. 그 자리에 선 채로 현관 밖, 바닥에 널린 전단지를 응시한다.    


28. 동. 침실 (낮)    

창틀에 걸려있는 종이 고래 4마리가 불어온 바람에 앞뒤로 날린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는 지은. 마우스를 쥐고 잠시 머뭇대다 ‘딸깍’ 클릭한다.

지은은 의자에 파묻히듯 몸을 뒤로 젖히며 크게 숨을 내쉰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책상 위 커피잔을 들고 방을 나가는 지은.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린다. 화면에 뜨는 문자 알림.    


‘예약하신 여정입니다.

승객명: HAN/JIEUNMS

출발지: 서울(INCHEON INTL)’    


휴대폰 옆 컴퓨터 모니터 속에는 새끼 혹등고래와 어미 혹등고래가 바다 위로 올라와 물을 뿜어내는 장면이 떠있다.    


29. 동. 침실 (밤)    

불 꺼진 지은의 집.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와 깨끗이 치워진 책상.

멀리서 들리던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빨갛고 파란 경광등 불빛이 침실 창밖으로 번쩍거린다. 종이 고래들도 빨갛고 파란 불빛 속에 있다.    


30. 지은의 집 앞 (낮)    

하늘은 파랗고, 이팝나무의 꽃은 모두 졌다.

아이 세 명이 깔깔대며 골목을 뛰어간다.

밖에서 보이는 지은의 집 창문엔 종이 고래가 걸려있다.

바람이 한 차례 세차게 불자, 종이 고래 한 마리가 창밖으로 떨어져 나온다.

바람에 떠밀려 맞은편, 아이 집 창문까지 날아가는 종이 고래. 그 너머 보이는 아이 집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와 있고, 창에 붙었던 하얀 종이들은 흔적도 없다.

아이 집 창문 앞을 떠돌던 종이 고래가 다시 한번 바람에 떠밀려 하늘로 올라간다. 파란 하늘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검은 종이 고래. 실제인지 환상인지, 그 뒤를 작은 종이 고래가 쫓아 날아온다.

바람을 타고 함께 날아가 버리는 두 마리의 종이 고래, 이내 멀어져 보이지 않는다.


- fin. -

작가의 이전글 나의 첫 단편 시나리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