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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Oct 29. 2020

내가 즉흥적인 육아를 하는 이유

아이의 도시

한글을 모르는 다섯 살 아들은 노선도의 버스 번호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묻는다.


엄마 이건 어디로 가는 거야?

그건 구로역, 신도림역으로 가는 거래.

그래? 그럼 오늘은 이걸 탈래.





나는 즉흥적인 육아를 하는 편이다. 어제 간 곳을 오늘 또 가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어제 한 패턴대로 오늘도 하는 건 재미없다. 세 시, 아들이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우리에게는 새롭게 시작된 그날의 여행이 시작된다.


라파엘, 오늘은 어디를 갈까?


우리 가족은 어디든 떠나기를 좋아한다. 라파엘은 가끔 집에만 있고 싶어 할 때도 있지만 밖에서 놀면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 라파엘이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자리는 버스정류장과 몇 걸음 떨어져 있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라파엘은 생각해보다가 결정한다. 오늘은 집으로 갈지, 개구리 공원으로 갈지, 놀이터로 갈지, 버스를 탈지 또는 새로운 또 다른 장소를 말할지, 아니면 일단 걸으면서 필 꽂히는 곳을 찾아볼지.


우리 집 앞 정류장에는 4대의 버스가 선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그 자리에서 시내버스를 탄다. 어떤 버스인지는 라파엘 마음이다. 어디를 가는 건지 알고 탈 때도 있고 버스 숫자가 마음에 들어서 탈 때도 있다.

정류장도 여러 개 있으니 보기는 많다.


오늘로 49개월이 된 라파엘은 아직 한글을 모른다. 한글을 아는 만큼 한글에 집중하느라 쓸 에너지를 눈, 코, 귀로 다가오는 많은 감각과 경험을 맞아주는 데 쓰기를 바라서 아직은 특별히 가르치지 않는다.

알아서 깨치거나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그냥 놔두고 있다.

한글을 모르니 얽매일 것도 없다. 버스 노선도에서 자기가 보기에 모양이 신기하거나 눈길이 가는 정류장 이름이나 버스 번호를 가리키며 나에게 묻는다. 이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내가 또 말해주면 그건 뭐하는 데냐, 어떤 장소냐고 물어본다.

몇 가지를 묻던 아들은 마음을 정한다.


"오늘은 이걸 타겠어!"



오늘의 노선을 만끽하는 중

    


그렇게 해서 라파엘은 신도림역도 가보고 옆 동네도 가보고 멀리도 가 봤다. 그렇게 가봤던 곳들 중에 기억에 남은 곳이 있으면 이름이 어려워 지명을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은 6638번 버스 타고 갔던 데 또 가자 엄마"한다.


집중의 등짝


라파엘이 특히 좋아하는 곳은 신도림역이다. 신도림역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백화점이 있고 엄마 책을 파는 서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신도림역 앞에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나무의자가 있고 예쁜 장미 덩굴이 감싸고 있는 산책로가 있다. 빨간 열매 까만 열매를 맺는 나무들도 있고 끝까지 올라가기 전에는 주변 빌딩이 보이지 않는 높은 풀 언덕도 있다. 라파엘과 가기 전에는 그렇게 수십 수백 번을 지나다니면서도 이런 언덕이 신도림역 입구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저 열매를 어떻게 딸 수 있을까 고민 중. 결국 따지 못하지만.



라파엘과 나는 신도림역 앞에 있는 나무들의 위치와 특징을 잘 알고 있다. 이 나무는 손이 닿을 만한 높이인지, 잎은 어떤 색인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어떻게 생긴 주머니에 둘러싸여 있는지 자세히 안다. 때로는 주변이 너무 깔끔해서 구하기도 힘든 나뭇가지를 어렵게 찾아 열매를 떨어뜨려보기도 한다. 주운 열매를 집에 잔뜩 싸 들고 와서 언젠가 만날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기 전에 주러 간다고 모아 놓기도 한다.


다음에는 신도림역, 구로역이 아니라 아무데서나 내려보기로 했다.







도시는 오묘하다.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사는 아이를 아스팔트 키즈라고 한다던데, 도시에는 아스팔트라는 표현으로는 다 채우지 못하는 생명의 공간들이 있다. 비록 그것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아니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며 사람들은 그저 배경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라도, 그것들은 문득문득 사람의 눈에 들어와 쉼을 주고 생명의 활기를 주고 신비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아이의 눈이라면 그런 '익숙함 속의 낯섦'은 더 잘 발견된다. 어른들이 매일 가는 곳이 아이에게는 새로운 여행지이고, 어른들이 매일 정해진 루틴대로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이에게는 새로운 탐험과 몰입의 시간이 된다.


사람이 흙바닥 위에 아스팔트를 깔고 흙집보다는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며 반듯한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차로든 발로든 지나다닐 때의 돌부리가 불편하고 먼지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멘트로 지은 집은 단단하고 일단 지어놓으면 당분간은 손댈 필요가 없다. 바람과 햇살과 세월이 남기고 가는 흔적을 거스를 수 있다. 깔끔하고 편리하다.


우리가 깔끔하고 편리하다고 인식하는 것들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속성이 있다. 아스팔트 도로는 어제도 오늘도 똑같고, 차가 지나가도 거의 닳지 않는다. 그 위에서 아이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를 볼 기회를 잃었고, 지붕 위를 흐른 빗방울이 떨어져서 흙바닥에 둥글게 패이는 물자국도 볼 기회를 잃었다.


딱딱하고 반듯한 빌딩과 아이들이 하루 동안 보내야 하는 시간표는 비슷하게 생겼다. 많은 아이가 유아기부터 다양한 공부 거리, 심지어 놀거리까지 정해진 시간 동안 접하고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차를 타고 움직인다. 라파엘이 가는 유치원이라는 일과 시간도 하나의 틀이지만 그래서 나는 그 외의 것들을 미리 정해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도시의 공간이든 아이들의 시간이든 여유가 있는 만큼 사람은 발견할 수 있다.


신도림역 나무벤치. 라파엘은 자기만의 평화를 즐기는 중


다섯 살 아이에게 도시는 몇 분만 있어도 수 백명의 사람이 지나가는 환승역과, 아늑하고 맛있는 식당 수백 곳과 엄청 높이 솟아서 달님을 자주 가리는 빌딩이 있는 곳이다.

동시에 이렇게 오랜 시간 누워있으면서 햇살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벤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는 이 곳에 오래도록 앉아 화사하던 하늘이 점점 분홍색, 보라색이 되는 걸 보았다. 아까는 일찍 뜬 낮달이 허옇게 보였는데, 이제는 깊어진 어둠을 배경으로 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는 자연의 장면을 만났다.


도시에는 이미 정해진 구역과 갇힌 공간이 많다.

아이의 시간만은 자유롭기를, 아이의 도시는 넓고 깊은 하늘과 바람과 달빛을 품고 있기를. 아이의 도시라는 공간은 변화무쌍하고 다채롭기를. 그래서 아스팔트에서도 꽃을 피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즉흥적인 육아를 한다.

 














표지 사진 pixabay @ Tambira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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