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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Oct 14. 2020

그 카페에는 천사가 있다

동네의 작은 카페

아니, 이런 미카엘 천사 같은 분이 다 계신가.

카푸치노를 마시며 나는 속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아주 작은 카페가 있다. 큰 건물이나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도 아니고 주택가의 작은 놀이터 앞에 있는 카페인데 항상 카페 사장님은 9시도 안 돼 문을 열고 '첼로'라는 이름과 딱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으신다.

지나갈 때마다 그 앞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스쳐 지나가면 아침부터 피아노 선율 같은 따스하고도 산뜻함을 느끼게 된다.


집에서 갈아먹는 원두도 별 감흥이 없다 느껴질 때, 어제처럼 찬바람이 부는 서늘한 아침에는 카푸치노가 먹고 싶어 진다.


군대 갈 아들이 있다는 카페 사장님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 온화하고 공손하시다.

언제 가든 나는 거의 첫 손님이다. 아침일찍부터 잔잔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씀드리면 천천히,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90도 인사를 하시는 분이다.

쿠폰 도장도 알아서 찍게 맡겨놓으시고, 항상 웃는 얼굴로 응대해주시는. 카페 이름처럼 분위기 미인이다.



사장님은 언제나 작은 간식거리를 함께 얹어주신다.



몇 번 카페에 앉아있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이분은 독서모임을 하는 분이고, 대화할 때 들어보면 여러 각도의 입장에서 사람의 생각을 살피는 분이라는 거다.

카페가 작아서 거의 손님은 나 혼자이거나 그분을 만나러 온 동네 친구이신데, 엿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곁귀로 들어보면 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 중에는, 어느 정도 애를 키워 놓은 동네 아줌마라면 별 볼 일 없다,라고 아주 쉽게 일반화하고 무시하는 관점이 있기도 한데 품위 있는 사람 앞에 그런 편견은 참 하찮게 스러지고 만다.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가끔 지적장애를 가진 손님이 오시는데, 다른 손님과 다름없이 친절하고 깍듯하게 대하시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웃음으로 대해 카페에 물건을 납품 배달하시는 분들도 이 카페만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도 오시고, 누구누구 얘기하면 다 통할 정도로 동네 사람들을 잘 알고 있고 한 분 한 분 참 예의 바르게 모신다.




그래도 이 분이 만만하지만은 않은 천사인 건,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공손히 단호히 하시기 때문이다.


한 번은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오셔서 카페에 조용히 앉아있던 장애를 가진 듯한 그 손님께

"너는 여기 앉아서 커피 마시지 말고 가아. 너 같은 애가 올 곳이 아니여"라고 했다.


그 순간 프런트에서 지켜보던 사장님이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여기는 조용히 쉬는 곳이니 그렇게 목소리 크게 말씀하시는 분이 올 곳이 아닙니다."


하, 안 그래도 그분 목소리가 너무 커서 거슬렸는데 이렇게 칼 같이 한방에 정리해주시는 미카엘*같은 천사가 계신가.

돌아보지 않고 카푸치노를 마시며 나는 속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한 번은 부동산인지 보험설계사인지, 자산관리사로 보이는 분이 와서 코로나로 어려운 경제상황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카페 사장님께 물었다.

"요즘 힘드시죠? 장사가 안 돼서."

카페 사장님이

"저만 힘든가요, 다 같이 힘들죠."

라고 했더니 그 자산관리사가

"그래도 이 와중에도 잘 되는데도 있잖아요. 그럼 좀 그렇지 않아요?"

라고 했더니

"내 일이 아니지만 잘 되는 데가 그래도 있으면 전체 경제로는 좋은 거죠."

라고 하셨다.

이 말에 뭔가 움찔한 자산관리사분이

"에이, 그래도 솔직히 내가 어려우면 좀 그런 게 사실이잖아요."

했더니

카페 사장님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물론 나도 그 안에 들면 좋지만 아니어도 크게 보면 좋게 돌아가는 거니까 좋아요."

라고 하셨다. (사실 실제 사장님이 쓰신 표현은 더 고급스럽고 명쾌했는데. 기억력의 한계인가 표현력의 한계인가)


이런 대화를 처음 이끈 그 자산관리사(?)분의 의도가 도대체 뭔지 나도 알 수 없었지만(경제적으로 힘들면 이 상품을 해보시라고 권하려던 걸까), 천사 같은 카페 사장님도 굽히지 않을 때는 굽히지 않는다.

뜻과 다름에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맞춰주며 웃고 넘어가는 비굴한 순간이 나는 있는데.



한 번쯤 천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안다.

만만하지 않은 천사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결국 천사가 아니고 나는 인간이라는 한계를 절감하며 모든 애증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살지 않는가.


굽히지 않아야 할 때를 알고, 단호히 말해야 할 때를 알고 친절을 삶으로 나누는 방법을 알고

온화한 피아노 선율 같은 기품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작은 머그컵에 소담하게 담긴 라떼,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꼭 사장님을 닮았다.


언젠가 사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날 사장님이 계산을 잘못하신 것 같아서 내가 500원을 더 드리며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다. 원래는 6500원인데 내가 6천 원만 냈던 것이다. 그랬더니 당신은 사람들에게 돈이 많다 적다 말하기가 불편하고 그러고 싶지 않아서 주는 대로 받을 때도 많다고.

그런데 여기서는 돈을 덜 받아도 나중에 '그땐 덜 받더니 왜 이번엔 더 받냐'는 반응도 받게 되고,

천국에는 돈이란 게 없을 테니 죽어서 천국에 가면 거기서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그러면 카페를 하면서도 돈 받기 불편한 사람으로서 본인은 돈 문제없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커피를 마음껏 대접할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하..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천사 인증.



테이블 네 개,

여행과 순례자에 대한 책 몇 권,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와 3000원짜리 카푸치노.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쿠폰 도장.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풀 같은 사람들이 머무는

작은 카페 그 안에

성인聖人이 있다.









*미카엘: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 중 악과 싸우는 전사 천사. 성 미카엘 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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