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유미 Jan 01. 2020

절박한 한 해를 그리며

2020년 작업 목표에 대해 생각하다

2019년에는 별일이 다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첫 소설집 <피구왕 서영>을 썼고,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썼고, 또 장편소설을 쓰는 중이다. 언제나 창작으로 가득 채운 일상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달콤한 꿈이 깨면 현실이 기다리고, 그 현실 속에서 나는 창작을 하는 대신 임금노동을 하느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는 중이다. 지난 1년 6개월간은 창작이라는 공중에 떠 있는 꿈을 어떻게든 현실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려 버둥거린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창작이 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대답은 “(아직은) 아니오.”이다. 


6개월은 처음으로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맛에 푹 빠져 그냥 지나갔고, 그 후 1년은 다행히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기회가 찾아왔다. 모든 기회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불안할 때면 채용공고를 뒤지며 몇 군데 회사에 지원을 해보기도 했고, 심지어 인터뷰를 보기까지 했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티가 나지 않을 리가.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까지 준비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렇지만 이 일은 하고 싶지 않아.”라는 속내가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됐어요. 운이 좋았어요.”

한때 순진하게 그런 요행을 기대했던 적이 있다. 이제 그런 말은 믿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뿐더러 대개 더 나쁜 쪽으로 변화한다. 이제는 어떤 일이든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건강이 그렇고, 일도 그렇고, 생활의 안정 또한 그렇다. 누군가는 “네 나이가 어때서!” “그건 다 핑계야!”라고 말하지만, (안타깝지만) 한국의 취업시장이, 고용 환경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그러니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고, 창작을 내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2020년에는 창작을 내심 잠깐의 일탈이나 도피로 여겼던 기만을 버리고 더 절박해지고 싶다. “이건 결국 내 현실이 될 수 없을 거고, 백일몽이야.”라는 주문은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이 무서워서 걸었던 자기 암시다. 사실은 그 어떤 일보다 이야기를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다른 어떤 일도 아닌 이 일을 통해 내가 발 붙인 현실이란 토대를 탄탄하게 만들고 싶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도 되었다. (언제까지 가고 싶지도 않은 회사 채용공고나 뒤지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고!) 창작에 ‘취미생활’이라는 단어로 거리를 두거나, 기회가 와서 ‘한번 해본다’는 식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는 나 자신을 속이는 비겁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나를 속이기도 했던 지난 시간을 반성합니다. 하지만 두 권의 소설집을 쓰는 동안에는 그 당시 털어놓을 수 있는 최대치의 진심을 보여 드렸으니 결과물에 후회는 없습니다!)


좋든 싫든 책을 내는 순간 이미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으니 발을 뺄 도리는 없고, 더 진지한 마음으로 창작을 꿈이 아닌 내 현실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2020년은 온전히 보내야겠다. 2020년에는 여러 개의 일을 벌이는 대신 작년부터 시작했던 긴 이야기 하나를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뜯어고치며 마무리하는 데에 일단 모든 기력을 집중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조직에서 나와 혼자 일을 하면서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훑은 에세이도 쓰고 싶다. 이건 지금이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이야기일 테니까.


이렇게 딱 두 개의 창작 목표를 이루는 데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부업으로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청탁 원고도 기꺼이 수락해서 쓰고, 친구들과 진행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도 마무리하고…… (뭐지? 딱 두 개라면서 또 늘어나고 있다. 항상 한 번에 하나의 공만 쥐는 걸 못해서 큰 일이다.) 


어쨌든 2020년 작업 목표는 오로지 딱 두 개! 이 두 가지 작업물에 더 진지하고, 더 절박한 태도로 임할 것. 과정이 절박해야 결과가 만족스럽다. 때때로 불안하더라도 불안을 자양분 삼아 더 절박한 태도로 창작하고 싶다. 일단은 이 정도 목표인데, 과연 2020년의 내가 2019년의 나를 원망하게 될지,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겠지. 그래도 언제나 야망 넘치던 과거의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편이니 또 하게 되지 않을까? 절박하게 내달릴 2020년을 위해, 오늘은 이만 자러 갑니다. 




제 서랍 속 일기장 같은 글을 조용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조용히, 묵묵히 응원 해주신 덕에 즐겁게 읽고 쓰며 한 해를 살아 냈습니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2020년은 적어도 하나 정도는 더 2019년 보다 나아진 점이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책 준비중ing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